증권 일반
저평가 기업 겨눈 ‘주가 누르기 방지법’…韓 증시, 다시 올라갈까
- [출렁이는 한국 증시]③
상속·증여 앞둔 저PBR 기업 주주환원 확대 압박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와 부작용 우려 공존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주가 누르기 방지법, 어떻게든 협조 얻어서 속도 내라.”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주식시장 정상화를 강조하며 내놓은 카드는 일명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다. 이 대통령은 7월 15일 이와 관련한 입법 지연을 지적하며 ‘입법 속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본시장 안정성과 정상화를 강조하면서 올해 하반기에는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국회에서는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관련 입법 토론회가 열렸고, 금융당국도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기록한 기업 명단을 공표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주가 관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상장사 120개가 저PBR…정부, 저평가 해소에 집중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취지는 최대주주가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의도적으로 미루며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관행을 막겠다는 데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업들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유도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와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법안 논의의 핵심도 주가가 지나치게 낮은 기업에 대해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만으로 상속·증여세를 계산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현재 상장주식은 평가 기준일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간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증여 재산가액을 산정한다. 이 때문에 최대주주가 상속이나 증여를 앞두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친화 정책을 의도적으로 미루면 주가가 낮게 유지되고, 결과적으로 세 부담도 줄어드는 구조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점을 고치기 위한 대표적인 입법안으로 지난해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개정안은 PBR이 0.8배 미만인 상장주식에 대해 보충적 평가방식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충적 평가방식은 시장가격뿐 아니라 순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함께 반영해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이런 큰 틀을 바탕으로 두고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나오면 연말 국회에서 개정법이 확정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기업 명단 공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 대통령의 언급 이후 7월 29일 ‘저PBR 기업 공표 제도의 세부기준안’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저PBR 기업 리스트를 공표하는 이른바 ‘네임 앤드 셰임’(Name&Shame·공개적 망신주기) 전략인데 오는 11월 2일부터 해당 기업을 공개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낮은 PBR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리스트에 들어가게 될 기업들은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누적 3년간 PBR 하위 25%, 코스닥은 하위 10%다. 이 방침에 따르면 120개사(코스피 130·코스닥 90개사)가 저PBR로 분류될 전망이다.
PB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자산과 비교한 대표적인 밸류에이션 지표다. 일반적으로 1배 미만이면 시장이 기업의 장부상 순자산보다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PBR이 0.8배라면 기업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의 80%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상당수 종목이 PBR 1배 미만에서 거래되고 있는 만큼 이들 기업의 가치가 정상화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정부는 오너 지분율이 높고 향후 승계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의 경우 낮은 PBR을 그대로 유지할 유인이 줄어들어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적극적인 기업설명(IR), 자본 효율성 개선 등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업종별 특성은 변수…일률 적용에선 ‘신중론’
증권가에서는 정책적 방향성에 따라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장기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낮은 주주환원 정책과 불투명한 지배구조,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상충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내 증시가 주요 선진국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아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제도 설계가 지나치게 단순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기업마다 업종과 사업 구조, 성장성, 자산 특성이 다른데 PBR 하나만으로 주가 저평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저평가 원인이 최대주주의 상속·증여 목적에 있는지, 업황 부진이나 실적 악화 등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있는지를 일률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PBR 0.8배 미만 종목 비중이 높은 업종은 유틸리티, 필수소비재, 소재, 경기소비재 등이다. 은행 등 금융 섹터 또한 규제와 낮은 주주환원 정책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처럼 규제 등의 영향에 구조적으로 낮은 PBR을 보이는 업종과 성장성이 둔화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할인받는 기업도 적지 않아, 단순히 PBR 기준만으로 제도를 적용할 경우 정상적인 시장 평가에서 혼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로운 왜곡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약 PBR 0.8배 미만에서는 순자산가치를 반영하고 이를 넘으면 시가를 적용하는 구조가 마련될 경우, 일부 기업이 제도 적용을 피하기 위해 PBR을 0.8배를 약간 웃도는 수준까지만 관리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근본적인 기업가치 개선보다 기준선만 넘기는 방식의 단기적인 주가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실효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낮은 PBR 기업을 하나의 집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낮은 PBR 기업이 아니라 지배구조와 자본정책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 재평가가 가능한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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