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은, 수입 가격 하락보다 수출 가격 상승에 주목
IT 제조업 편중 심화로 세수 변동성 확대 우려
비 IT 부문 업황 부진 등 경제 양극화 해소 필요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반도체 파워’가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의 주가보다 반도체 가격 변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얼마나 높게 그리고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에 따라 내수 파급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한 이후 신현송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 수립 시 기업의 주가보다 “반도체 가격 자체를 훨씬 중요하게 보고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가격이 우리 경제의 교역조건(교역조건)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라는 것이다. 반도체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이익 증가와 수주 확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임금 상승 등을 통해 내수를 뒷받침하는 경로로 연결된다. 대부분의 반도체 계약이 기업 간 거래(B2B)로 나타나는 만큼 가격이 현물 시장에 일일이 나타나지 않고 대부분 장기 계약으로 이루어져 파악하기 까다롭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다.
반도체 가격 상승 영향으로 올해 1분기 우리나라 실질국내소득(GDI) 증가율이 13.2%를 기록하며 이례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8%였다. 두 지표간 성장률 격차(9.4%포인트)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0년 이후 최대 폭을 기록했다.
보고서는 이번 GDI 급등의 가장 큰 배경으로 ‘수출물가 상승형’ 개선이라는 점을 꼽았다. 2009년·2015~2016년·2020년 경제 개선기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나 팬데믹(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 미국의 셰일 붐으로 인한 국제유가와 수입물가 하락이 주된 요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상황에서도 반도체 가격이 폭등하면서 교역조건 개선을 견인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국의 실증분석에 따르면 수입가격 하락이 교역조건 개선을 주도했던 과거에는 가계가 이를 ‘일시적인 소득 증가’로 인식하면서 민간 소비로의 전이 효과가 미약했다. 소득이 지속해서 늘 것이라고 전망하지 않다 보니 가계에서는 소비보다 저축에 무게를 두는 비중이 컸다는 것이다.
반면 수출가격이 교역조건 변화를 견인하는 국면에서는 매출 확대에 따른 임금 상승 등으로 소득 파급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지속해서 소득이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이 커지면 민간 소비가 살아난다. 실제로 반도체 기업들의 최근 대규모 성과급 지급 발표 등으로 전체 부문의 명목임금 상승률은 과거 교역조건 개선기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수출가격 상승기에는 기업도 글로벌 수요 확대에 대응해 생산능력을 신속히 확충하려 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투자 확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례적인 반도체 독주와 GDI 급등의 이면에 경제 양극화라는 리스크(위험)는 우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시경제 전반의 변동성을 키우고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국내 전체 제조업 가운데 정보통신(IT) 제조업 생산 비중을 51%까지 끌어올리는 산업구조 편중 심화 현상을 유인했다. IT 제조업이 생산 및 취업유발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산업이고 관련 산업 종사자 수 비중이 2.6%에 불과하다는 점은 일부 대기업 임직원에 성장 과실이 집중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성과급이나 임금 상승 효과가 일부 대기업에 한정되면 경제 전반으로 온기가 확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비IT 부문은 업황 부진과 비용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산업의 쏠림 현상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반도체의 경우 수급 사이클(주기)에 영향을 받는 업종으로 분류되는데, 수요의 증감에 따라 투자와 세수가 큰 폭으로 달라질 수 있어서다.
한은 조사국은 “세수 여건의 반도체 의존도 심화로 향후 재정 여력이 반도체 경기에 따라 크게 변화될 수 있다. 2021~2022년 IT 호조기에 발생했던 초과 세수가 이후 업황 조정 국면에서 세수 결손으로 빠르게 반전된 바 있다”며 “높은 IT 의존도로 경기·재정·금융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위험을 유념하고 중장기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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