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남 반도체 선택일까 선물일까]⑤
이준기 광주·전남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직격 인터뷰
풍부한 전력망·부지 확장성…패키징 허브·인재 육성 기지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철저한 오해입니다.”
호남으로의 인재 유입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과 지역 차별 논란을 향해 던진 이준기 광주·전남 반도체공동연구소장(전남대학교 국제처장)의 첫마디는 단호했다. 정부가 서남권 국가 반도체 육성 프로젝트를 발표한 직후 인력 확보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지난 6월 29일 전남대 광주캠퍼스에서 만난 이 소장은 호남의 미래 가치를 역사적 팩트로 정면 돌파했다.
삼성전자 메모리 개발자 출신으로 12년간 현장을 누빈 뒤 전남대 신소재공학부에서 교편을 잡아 온 그는 이번 프로젝트가 대한민국 반도체 생태계의 사활이 걸린 ‘필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기흥·온양의 역사, 호남서 재현
“43년 전 용인 기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빼고는 전부 반대했습니다. 서울 구로공단에 땅이 많은데 왜 그렇게 먼 데로 가느냐며 다들 미쳤다고 했죠. 온양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지을 때도 똑같은 소리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지금 기흥과 온양 모두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반도체 메카로 잘만 돌아갑니다. 위치 때문에 인재가 안 와서 사업을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이 소장은 미국의 마이크론이 감자밭으로 유명한 아이다호에 터를 잡고도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사례를 들며, 첨단 산업의 성패는 지리적 위치가 아닌 인프라의 깊이가 결정한다고 역설했다. 호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팹(생산 시설)이 유치될 때 발생할 인구학적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는 계산이다.
이 소장은 “반도체 팹이 들어선다고 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인력 1만명을 기점으로 고용 유발 효과에 따라 최소 5만~6만명의 젊은 인구가 유입될 것”이라며 “가족 단위 이주까지 고려하면 지역 사회에 최대 20만명의 인구가 늘어나는 셈인데 젊은 인재들이 굳이 수도권으로 나가지 않고 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엄청난 인구 유입 모멘텀이 된다”고 내다봤다.
광주가 보유한 정주 여건과 생활 인프라는 인재들을 유인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 소장은 “광주는 주거와 여가 인프라가 이미 잘 갖춰진 대도시”라며 “수도권에서 30평형 아파트에 살던 인재들이 여기 내려와서는 50~60평형대 넓은 주거 환경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인프라가 풍부한 호남에는 결국 사람이 모이게 돼 있다”고 자신했다.
넘치는 전력과 부지, 수도권엔 없는 무기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폭증하는 수요에도 전력과 부지의 한계에 다다른 반면 호남권의 전력 경쟁력은 독보적이라는 것이 이 소장의 주장이다.
“현재 호남 지역은 영광원전과 풍부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되는 전력의 약 40% 정도만 자체 소비하고, 나머지 60%는 다른 지역으로 보내거나 죽이고 있습니다. 은퇴 후 전원주택에 태양광 패널을 깔아도 한전에서 더 이상 연결을 안 해줄 정도로 전기가 넘쳐나는 동네입니다. 게다가 호남은 일조량이 전국에서 가장 좋습니다. 오죽하면 제주도 과일보다 여기서 키운 열대과일이 더 맛있고 비싸서 서울 최고급 식당들이 다 사 가겠습니까.”
지역별 차등 요금제가 가능해지면서 전기료 단가 메리트도 극대화할 전망이다. 이 소장은 대형 제조업 유치를 위해 전력 단가를 반값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제조업 중에서도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반도체 공장에 있어 호남이 최적의 입지라고 짚었다.
부지 확장성 측면에서도 호남은 압도적이라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이미 조성이 완료돼 즉각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첨단 3지구 내 100만평 부지가 대기 중이며, 추가로 100만평을 더 확장할 수 있는 토지 확장성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공업용수’ 확보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서남권 신규 반도체 산업단지에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방안을 내놨다. 동복댐의 여유량 및 댐 증고로 30만톤(t), 주암댐과 장흥댐의 미사용 여유량 15만t, 보성강댐의 발전용수 전환 10만t, 나주댐의 대체 공급 절약분 10만t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일일 65만t의 수자원을 책임질 계획이다.
미세 공정 한계 뚫는 ‘적층 패키징’ 특화 기지
“반도체 미세화 공정은 이제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여태까지는 2차원 면적을 좁게 줄이는 전 공정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조그만 칩을 위로 쌓아 올리는 ‘적층 패키징’ 기술이 반도체 패권의 핵심입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처럼 아파트를 짓는 건축 기술과 같습니다. 패키징 시장이 매년 20%씩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유입니다.”
광주·전남 반도체공동연구소는 바로 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의 핵심 전장인 ‘후공정 패키징’ 인력 양성소로 첫발을 디뎠다. 국내에 전 공정 연구소는 산재해 있지만 후공정 패키징 일괄 공정 라인을 갖추고 인재를 키우는 허브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연구소는 7월부터 패키징 인력 양성의 첫 시동을 건다. 본 건물의 완공까지 약 3년의 세월이 소요되는 만큼 인재 공급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첨단 단지 내 100평 규모의 임시 클린룸을 선제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러한 생태계의 허브로 낙점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30년간 지역에 견고하게 안착한 글로벌 후공정 1위 기업 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엠코)가 있다.
30년 전 엠코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곳에 내려온 배경에는 앰코의 전신인 아남 창업주가 강진 출신의 호남인이라는 연고와 애향심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4000여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대형 인프라로 번듯하게 성장해 호남권 반도체 생태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엠코가 패키징 핵심 장비 50여대를 기증해 준 것뿐만 아니라 2~3년이 걸릴 수 있는 공정 라인 세팅 작업을 현역 엔지니어들이 직접 와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현장의 살아있는 노하우를 지닌 고경력 퇴직자 베테랑들이 전문 연구원들과 함께 강사로 참여해 기술 브리지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이 고경력 마스터 매칭 모델로 소규모 반도체 패키징 공정 교육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계획입니다.”
이 소장은 미래 반도체 인재 양성에 대한 포부를 전했다.
“이 시설이 완벽히 들어서면 단언컨대 서울대나 카이스트, 어느 대학 연구소와 비교해도 후공정 패키징 장비 스펙과 교육 환경만큼은 최고일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동등한 대접을 받는 글로벌 반도체 마스터를 육성해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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