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 규제 풍선효과]②
노동 소득 한계가 부른 자산 시장 베팅
서울 아파트 평균 13억원대…코스피 5개월만에 90% 상승
한은 “단기 자금 쏠림 리스크” 경고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투자자들이 고금리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위험자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한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를 단행하거나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투자) 대열에 뛰어드는 것이다. 연 5~9%에 달하는 고금리를 감내하면서 대출을 받아 투자를 확대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노동을 통한 자산 증식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코스피는 5월 26일 종가 기준으로는 처음 8000을 넘어서며 새로운 기록(8047.57)을 썼다. 지난해 말 코스피가 4214.17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5개월만에 90% 넘게 오른 셈이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1万9900원에서 29만9000원으로, SK하이닉스는 65만1000원에서 205만2000원으로 뛰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간사 이종욱 의원이 한국부동산원과 고용노동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3억1145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근로자 월평균 임금(420만5000원)의 312배 수준이다. 단순 환산하면 근로자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약 26년을 모아야 서울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임금을 통해 자산 격차를 메우기는 더 어려워졌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난 4월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민생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현재 우리 경제는 에너지 공급망 불안, 원자재·물류비 상승, 내수 둔화가 겹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위험에 직면해있다”며 “고물가와 저성장이 겹치며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부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 수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 임금이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3년 만에 처음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임금 증가율을 넘어섰다. 미국 노동부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평균 시간당 임금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계절조정 기준 3.6%였지만,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8%를 나타냈다. 명목상 임금이 증가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생활이 팍팍해졌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물가를 끌어올린 영향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과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의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벼락거지’ 신드롬이 서민 가계를 압박하고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주식이나 부동산을 보유해야 밀려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함에 사람들이 투자에 뛰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 수조원 몰린 단일종목 레버리지…개인 투자자 과도한 위험추구 누적
문제는 여윳돈이 아니라 대출 또는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이용해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7일 상장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16종에는 하루 사이에 수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거래대금을 보면 ‘KODEX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 4조원, ‘TIGER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 2조원, ‘KODEX 삼성전자단일종목레버리지’ 1조8000억원에 달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 21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6조4724억원으로 집계됐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하고 갚지 않은 금액을 말한다. 대표적인 ‘빚투’ 지표 중 하나다. 삼성전자 노사가 합의한 다음날인 5월 21일 삼성전자 신용융자 잔고는 4조2751억원, SK하이닉스는 3조437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를 이끌고 있는 대표기업에 투자자들이 빚투로만 7조원을 넣은 셈이다.
부동산 시장도 꿈틀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1분기 차주별 가계부채 통계(잠정)’에 따르면 1분기 기준 차주당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2억2939만원으로 전분기보다 1653만원 늘었다. 특히 30~40대에서 대출 규모가 확대됐다. 30대의 경우 신규 주담대가 2억8990만원으로 전분기 대비 3457만원 늘었고, 40대는 2억4514만원으로 전분기 보다 1203만원 증가했다. 3040 차주들이 빌린 돈은 1분기 신규 주택담보대출 전체의 69.7%에 달했다.
민숙홍 한국은행 가계부채미시통계팀장은 “수도권 규제 지역의 주담대 한도 제한과 전세 매물이 감소하는 주택시장 상황과 맞물려 주택거래가 일부 발생하면서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 취급액이 늘어나 가계대출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대출 Py레버리지 투자가 늘면서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도 치솟고 있다. 5월 22일 기준 VKOSPI는 66.97을 기록했다. 해당 지수가 4월 말 기준 54.34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3.2%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머니무브)과 특히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금 쏠림 현상을 경계하고 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리스크(위험)가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공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통해 “증권사에 예치된 투자자예탁금·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대기성 자금 잔액이 지난 1월 말 기준 209조4000억원으로, 주식시장 상승세가 본격화된 2025년 하반기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며 증권사로의 자금 유입이 주식시장 활성화와 생산적 금융 지원에 기여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잠재 리스크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주식시장으로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금 쏠림이 발생하면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증권사가 자금 조달의 상당 부분을 단기시장성 차입에 의존하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대내외 충격 발생 시 증권사의 유동성 리스크가 증대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 “최근 신용융자 잔액이 30조원을 상회하는 등 개인투자자의 레버리지 활용이 확대된 상황에서는 과도한 위험 추구가 누적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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