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일반
공사비 급등에 시공사 해지까지...갈등 커지는 재건축 현장 [재건축 쩐의 전쟁]②
- 중동 전쟁·고환율 여파에 공사비 재협상 잇따라
지방 사업장까지 갈등 확산…부담 장기화 우려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미국·이란 전쟁 등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로 공사비 고공 행진이 이어지면서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건설사들은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고환율, 물류비 부담 등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에 나서고 있고 조합들은 급격히 불어난 추가 분담금 부담에 반발하는 분위기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계약 해지와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지면서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공사, 공사비 증액 요청에 조합과 대립↑
실제 수도권과 지방 정비사업 현장 곳곳에서는 공사비 재협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조합은 최근 시공사인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비 증액 요청을 받았다. 현대건설은 기존 3.3㎡(평)당 584만원 수준이던 공사비를 959만원으로 높여 달라고 요청했다. 총공사비는 2021년 3834억원에서 6733억원으로 약 2899억원(75.6%) 증가한 규모다.
현대건설 측은 2021년 이후 급변한 건설 환경에 따른 물가 상승과 설계 변경 등이 반영된 결과라는 입장이다. 최근 서울 주요 정비사업 현장의 공사비 수준 등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이어져 온 공사비 갈등이 최근 중동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환율 여파까지 겹치며 다시 심화하는 양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경기 광명시 광명제9R구역 재개발조합도 시공사인 롯데건설로부터 중동 전쟁 장기화 등 대외 변수로 자재 수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 향후 공사비 상승과 공사 기간 연장 협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취지의 공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건설 측은 당장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단계는 아니며 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가 부담 확대와 공기 지연 가능성 등을 사전에 공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갈등이 실제 계약 해지와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대전 동구 가오동1구역 재건축 조합은 최근 시공사인 코오롱글로벌에 공사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조합 측은 코오롱글로벌의 공사비 증액 요구와 운영비 대여 중단 등을 문제 삼았다. 계약 해지 규모는 약 1454억원으로 코오롱글로벌 최근 매출의 3.7% 수준이다. 코오롱글로벌은 법률 검토 후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부산 우동1구역 역시 공사비 갈등이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 사례로 꼽힌다. DL이앤씨는 올해 1월 우동1구역 조합을 상대로 420억원 규모의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애초 DL이앤씨는 3.3㎡당 609만원 수준의 공사비를 제시했지만 이후 공사비가 848만원까지 오르며 조합과 갈등이 커졌고, 조합은 지난해 11월 임시총회를 통해 시공사 선정을 취소했다. 업계에서는 공사비 상승과 사업 조건 조율 과정에서 갈등이 장기화하며 결국 소송전으로 번진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사비 상승은 이미 각종 지표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4.42를 기록하며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8월 130.91을 기록한 이후 7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간 것이다. 국토교통부 조사에서는 레미콘 혼화제가 연초 대비 최대 30%, 단열재는 최대 4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주요 정비사업장의 평당 공사비가 과거 400만~500만원 수준에서 최근에는 800만~1000만원 수준까지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사비 갈등에 사업·공급 지연 우려도
건설 현장에서는 이미 자재 확보 비상이 걸린 상태다. 주요 건설사들은 전쟁 초기 선(先)구매한 자재와 현장 간 물량 조정을 통해 공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동 지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공기 지연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 등 일부 건설사들은 주요 사업장에 공사 기간 연장 및 추가 공사비 가능성을 안내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업계에서는 최근 공사비 상승이 이어지면서 조합원 추가 분담금 부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이미 여러 사업장에서 시공사들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조합원 추가 분담금이 수억원씩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업 추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서울과 수도권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공사비 상승분을 일반 분양가에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일부 사업장에서는 조합원 추가 분담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반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서울 강북권에서도 전용면적 84㎡ 기준 분양가가 17억~18억원 수준까지 오르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업계에서는 공사비 상승 역시 분양가 인상 압력을 키우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상승이 단순 건설사 수익성 악화에 그치지 않고 향후 수도권 주택 공급 감소와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공사비 부담이 커질수록 사업성이 낮은 정비사업장은 사업 자체가 지연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결국 신규 공급 감소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착공까지 수년이 걸리는 장기 사업인 만큼 원자재 가격과 금융비용 변동이 누적될 경우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비사업 과정에서 공사비 갈등이 향후 더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며 “계약 해지나 사업 지연으로 이어질 경우 결국 공급 일정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이는 장기적으로 수도권 주택 공급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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