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호르무즈發 충격, 에너지 위기 넘어 ‘공급망 붕괴’로 [스페셜리스트 뷰]
- 생산·물류 리스크와 에너지 가격 상승
원자재 공급 불안과 산업·물가 파급
[빙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 작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이 현실화됐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다시 세계 경제의 핵심 리스크로 떠오른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2024년 기준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4분의 1 이상, 글로벌 LNG 교역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대표적인 초크포인트다. 즉, 이번 사태는 중동의 지역 분쟁에 그치지 않고, 세계 에너지와 산업 공급망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충격으로 봐야 한다.
과거와 달리 생산 리스크로 번져
이번 위기가 과거와 다른 점은 단순한 통과 리스크가 아니라 생산 리스크로까지 번졌다는 데 있다. 이란은 정권에 대한 위협을 받을 때마다 호르무즈 봉쇄를 위협해 왔지만 역사적으로 해협이 완전히 폐쇄된 적은 없었고 대부분 위협이나 부분적 교란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박 운항 ▲보험 ▲물류가 동시에 위축되며 통항 차질이 사실상 마비에 가까운 수준으로 심화됐다. 여기에 더해 카타르 LNG 설비 일부가 공격을 받아 생산 차질까지 현실화됐다. 카타르에너지는 전체 LNG 수출능력의 17%에 해당하는 물량이 3~5년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고 한국을 포함한 일부 장기계약 물량에 대해서는 불가항력 가능성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물류 교란을 넘어 공급 자체가 줄어드는 국면으로 전환됐음을 뜻한다. 외교적 긴장이 완화되더라도 생산설비 복구가 지연되면 공급은 즉각 회복되기 어렵고, 에너지 가격도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대체 경로도 충분하지 않다. 사우디와 UAE에는 호르무즈를 우회할 수 있는 송유관이 존재하지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실제 추가로 활용 가능한 우회 여력을 하루 약 260만 배럴로 추정한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전체 물량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다. 더구나 이 우회 인프라는 주로 원유 중심이다. ▲LNG ▲LPG ▲나프타 ▲헬륨 ▲유황과 같은 주요 에너지·산업 원자재는 해상 운송 의존도가 높고 대체 수송 수단이 제한적이거나 사실상 없다. 이번 위기의 핵심 제약은 우회 경로 부족 자체보다, 대체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에 있다. 희망봉 대우회는 항해 기간과 연료비를 크게 늘린다. 후티 세력의 홍해 공격 재개로 수에즈 운하 경유까지 불안해진 상황에서, 우회는 해법이라기보다 비용만 높이고 공급 불확실성은 더 키우는 임시적 대응에 가깝다.
가격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브렌트유는 단기간에 급등하며 장중 119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유가는 외교적 기대와 정책 대응에 따라 단기 변동성을 보이고 있지만, 생산설비 피해가 실제 공급 감소로 이어질 경우 상방 압력은 쉽게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LNG는 이번 사태에서 가장 취약한 품목 가운데 하나다. 원유는 전략비축을 통해 일정 기간 완충이 가능하지만, LNG는 저장과 비축의 기술적·경제적 제약이 커 장기 비축보다 지속적 공급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미 아시아 각국과 유럽의 조달 경쟁이 가세하면서 스팟 시장 가격은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시나리오별로 보면, 단기 공급 충격 국면(S1·수일~3주)에서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105~125달러, LNG 현물 가격은 60~90% 상승하는 수준이 예상된다. 중기 공급 차질 국면(S2·1~3개월)에서는 유가 120~160달러, LNG 100~140% 상승이 가능하며, 구조적 공급 충격 국면(S3·3개월 이상)으로 넘어가면 브렌트유는 150~180달러, LNG는 150~200% 상승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 산업 평균 생산비는 4.2%에서 9.4%까지, 제조업은 5.4%에서 최대 11.8%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서비스업 역시 1.4%에서 3.1% 수준의 비용 상승을 피하기 어렵다.
에너지 가격 상승, 산업 전반으로 확산
이처럼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단순한 비용 증가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이는 특정 산업에서 시작되는 충격이라기보다 거의 모든 산업에 동시에 작용하는 공통 비용 상승 요인에 가깝다. 다만 강도는 산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정유·전력·가스 같은 에너지 집약 부문에서 충격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이후 화학·철강·비금속 같은 중간재 산업을 거쳐 제조업 전반의 원가 구조로 전이된다. ▲화학 ▲비금속광물 ▲1차금속제품 등은 상대적으로 높은 영향을 받고 서비스업에서는 운송 부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도체와 자동차처럼 직접적인 에너지 의존도는 높지 않은 산업도 핵심 소재 공급 차질과 물류 지연을 통해 상당한 간접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를 감안하면, 단기에는 비싸게 들여오는 문제가 중심이지만 장기화 국면에서는 제때 들여오지 못하는 문제가 더 큰 위험으로 바뀐다. 유가와 LNG 가격이 높은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해상 운임 상승과 운송 지연이 결합되면, 기업이 실제로 부담하는 조달 비용은 통계상 추정치보다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가격 상승과 물류 제약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충격이 비선형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즉, 장기화의 핵심은 단순한 가격 급등이 아니라, 산업활동을 떠받치는 중간재와 물류 흐름의 불안정성이 구조화된다는 데 있다. ▲LNG ▲나프타 ▲에틸렌글리콜 ▲LDPE 같은 품목은 한국의 대중동 수입 비중이 높으면서 동시에 중동의 글로벌 공급 비중도 커, 가격 상승과 물량 제약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프타는 에틸렌·프로필렌·합성수지로 이어지는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출발점이다. 나프타 조달이 흔들릴 경우 원가 상승을 넘어 플라스틱, 포장재, 타이어, 자동차 부품, 전자부품 등으로 충격이 빠르게 확산된다.
또한 특정 품목의 직접 수입 비중이 낮더라도, 중동이 글로벌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면 국제 가격과 제3국 경로를 통해 간접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은 중동산 유황을 대규모로 직접 수입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유황이 황산과 인비료의 핵심 원료라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 변동의 영향을 비껴가기 어렵다.
장기화될 경우 국내 충격은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나
특히 인비료 원료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는, 중동발 원료 차질이 중국의 생산 축소나 수출 통제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한국의 조달 불안과 가격 상승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중국은 과거 요소수 대란 당시 요소 수출을 사실상 막았고, 이후에도 비료와 관련 원료의 통관·수출을 반복적으로 조절해왔다. 유황이 황산과 인비료로 이어지는 경로가 있다면, 무수암모니아는 질소비료로 이어지는 또 다른 핵심 고리다. 문제는 이 무수암모니아 역시 중동의 생산·교역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결국 중동발 공급 충격은 산업 원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비료 가격 급등과 농업 생산비 부담, 식품 물가 상승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미 전쟁 이후 일부 지역에서는 비료 공장 가동 차질과 요소 가격 급등, 공급 지연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충격은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정유·발전·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에너지 집약 업종의 원가 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둘째, 비료·물류·식품으로 이어지는 생활물가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셋째, 일부 업종은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원재료 조달 지연과 생산 차질에 직면할 수 있다. 장기화 국면의 본질은 유가 상승 그 자체보다, 산업활동을 지탱하는 중간재와 물류 흐름의 불안정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시사점은 분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비축유 방출과 대체 공급선 확보를 통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을 버는 조치에 가깝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와 산업 원자재를 분리해 볼 것이 아니라, 나프타·헬륨·암모니아·에틸렌글리콜 등 에너지 연계 산업재까지 포함한 통합 공급망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공급망 전체를 겨냥한 구조적 전략으로 전환해야
특히 나프타 등 비에너지 핵심 소재에 대한 전략 비축이나 최소 재고 체계 도입도 검토할 시점이다. 에너지 전환 역시 자동적인 해법은 아니다. 수소와 암모니아 역시 상당 부분 천연가스 기반 공급망에 연결돼 있는 만큼, 전환 정책과 공급망 다변화는 함께 추진돼야 한다. 위기 이후의 기회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 우회가 장기화될 경우 선복 수요 증가로 조선·해운 산업에는 중기적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사태 진정 이후에는 중동 지역의 에너지·인프라 재건, 방산, 식량안보 관련 투자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를 단기 수주로 끝내지 않고, 장기 산업협력 구조로 연결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더 이상 유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응 역시 가격 관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류·소재·비료·식품까지 잇는 공급망 전체를 겨냥한 구조적 전략으로 전환할 때다.
필자는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이다. 중동 및 이슬람권의 경제·산업 구조와 에너지·공급망을 연구하고 있다. 한-중동 협력포럼, 국회 글로벌 외교안보포럼 등에서 연사로 활동하며 정책·산업 현장에서 협력 전략을 제시해왔다. 최근에는 중동의 에너지 구조 변화와 산업 다각화, 그리고 이 변화가 한국의 산업협력 및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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