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도약패키지 선정 기업]⑨ 민경령 스페이스앤빈 대표
나사 민간 참여 프로젝트에 선정…4월 ISS에서 외부 노출 테스트 진행
‘무납’ 엑스레이 방호재 개발 성공…글로벌 수출 이어져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업도약패키지 지원사업’은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겪는 3~7년 사이의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이 사업에 선정된 스타트업 창업가의 생생한 이야기는 후배 창업가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민경령(오른쪽) 스페이스앤빈 대표가 서울 노원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내 창업보육센터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연구원과 제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민규 기자]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그는 전파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에서 실무뿐만 아니라 국제 표준화 단계까지 섭렵한 베테랑 엔지니어였다. 20여 년간 전자파 적합성(EMC)과 전자기 펄스(EMP)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며 기술 표준을 수립하고 정부 기관의 자문을 맡는 등 전문가로서의 길을 탄탄히 걸어왔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보고서 속 기술이 아닌,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인간과 기계를 보호하는 실질적인 솔루션이었다. 2021년 6월, 그는 20년 전문가의 삶을 뒤로하고 소재·부품·장비 전문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했다. “20년 넘게 한 분야에 있다 보니 창업을 통해 내가 만든 기술이 실제 어떻게 쓰이는지 증명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가 독립을 결심한 이유다.
사명인 ‘스페이스앤빈(Space & Bean)’에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콩(Bean)처럼 아주 작은 반도체 소자부터 거대한 우주(Space) 환경까지,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의지다.
그는 창업 초기 EMP 방호 기술에 집중했으나 곧 현실적인 시장 장벽과 마주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핵심 코어 기술은 하나라는 점에 착안해 우주 방사선 차폐와 의료용 방호 소재로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적 피봇(Pivot)을 단행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도약패키지 사업에 선정된 것은 이러한 기술적 잠재력과 비전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인 민경령 스페이스앤빈 대표를 만났다.
스페이스앤빈의 핵심 역량은 전자파와 방사선 등을 방어하는 ‘차폐(Shielding) 소재 개발’이다. 차폐란 전자기기 등에 들어간 부품이 오작동하지 않도록 외부 전자파나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는 기술이다. 기자가 기술을 생소해하자 그는 휴대폰을 특수 차폐 소재로 감싸 보였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권했지만,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차폐 소재가 전파를 완벽히 차단했기 때문이다. 민 대표는 “기기가 외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차폐의 핵심”이라며 웃었다.
핵폭발이나 전자기 폭탄의 강력한 충격으로부터 시설을 보호하는 EMP 방호 또한 차폐 기술의 일종이다. 병원 의료진이 방사선 피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는 방호복에도 이 기술이 적용된다. 우리 일상부터 우주 산업까지 차폐 기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스페이스앤빈은 차폐 기술에 필요한 소재를 혁신하고 있다.
스페이스앤빈은 국내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먼저 주목받는 K-스타트업이다. 라틴어로 ‘방패’를 뜻하는 브랜드 ‘스쿠텀(SCUTUM)’을 통해 ▲우주용 ‘스쿠텀 R’ ▲EMP 방호용 ‘스쿠텀 P’ ▲의료용 ‘스쿠텀 X’ 등 세 가지 라인업을 구축했다.
특히 우주용 브랜드인 ‘스쿠텀 R’의 성과가 눈부시다. 고가의 우주 등급(Space Grade) 부품 대신 저렴하고 성능 좋은 지상의 상용 부품(COTS)을 차폐 소재와 하우징으로 감싸 우주 환경을 견디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뉴스페이스 시대의 핵심인 ‘비용 절감’과 ‘수명 연장’을 동시에 해결하는 솔루션이다. 민 대표는 “알루미늄 바디의 두께를 줄이는 대신 특수 차폐 소재를 적용해 무게는 낮추고 차폐 효과는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도 인정받았다. 나사의 민간 참여 프로젝트(MISSE)에 선정되어 오는 4월 국제우주정거장(ISS) 외부에서 노출 테스트를 진행한다. 민 대표는 “지난해 10월 통관 지연 우려로 시제품을 직접 들고 미국으로 날아가 납기를 맞췄을 만큼 공을 들인 프로젝트”라고 회상했다. 이미 나사의 지상 테스트는 모두 통과한 상태다.
납(Pb) 없는 의료용 앞치마부터 EMP 방호까지
스페이스앤빈의 시선은 우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의료 분야의 ‘스쿠텀 X’는 회사의 든든한 캐시카우가 될 전망이다. 기존 엑스레이 방호복은 납(Pb) 소재를 사용해 무겁고 독성 위험이 있었다. 민 대표는 납과 유사한 성질을 가지면서도 인체에 무해한 비스무트(Bi) 기반 복합 소재를 개발해 무게를 낮추고 안전성을 높였다.
이미 유럽 CE 인증을 획득했으며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 신흥 시장에서 가시적인 수출 성과를 내고 있다. 민 대표는 “해외 경쟁사들이 제품을 카피하려 시도했으나 배합 노하우를 넘지 못해 결국 제휴를 요청해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 병원에 공급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매출 확대를 예고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EMP 방호 솔루션 ‘스쿠텀 P’ 역시 중요한 축이다. 최근 대만 등 해외에서 관련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이 크다.
2026년 위성 발사, 2028년 IPO 목표
민 대표는 단순히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산업의 표준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지난해에는 국방기술품질원과 협력해 소재 제품을 우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표준화)을 수립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우주 환경에서 소재를 신뢰하고 사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현재 스페이스앤빈은 16명의 전문 인력이 함께하고 있다. 민 대표는 성실함과 책임감을 최우선 가치로 꼽으며, 구성원들이 전문성을 쌓고 각자의 역할을 내재화하도록 돕는다 .
스페이스앤빈은 설립 이후 약 30억 원의 누적 투자를 유치했다.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등 국내 대기업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민 대표의 최종 목표는 2028년경 기업공개(IPO)를 통한 본격적인 도약이다. 그는 “초기에는 R&D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상품화를 통해 투자금에만 의존하지 않는 자생력을 갖춘 딥테크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창업도약패키지 선정 기업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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