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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시대' 여는 270조 돈 보따리…대한민국 경제 지도 다시 그린다
- 수도권 집중 탈피해 전국 방방곡곡 AI·반도체·배터리 벨트 구축
삼성·SK·현대차 등 10대 그룹, 미래 먹거리로 지방 경제 부활 신호탄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대한민국 자본 흐름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 각지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다. 국내 주요 10대 그룹이 올해부터 향후 5년간 비수도권 지역에 총 27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로 결정하면서, 고사 위기에 처한 지역 경제에 ‘기적의 마중물’이 부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2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10대 그룹은 이재명 대통령이 추진하는 ‘지방 주도 성장’에 맞춰 5년간 270조원을 수도권 외 지방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장인화 포스코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허태수 GS 회장 ▲조원태 한진 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270조 투자 ‘메가 프로젝트’…어디에 얼마나 풀리나
한국경제인협회는 주요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방 투자계획 조사’에서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포스코 ▲한화 ▲HD현대 ▲GS ▲한진 등 10대 그룹이 2030년까지 수도권 외 지역에 총 27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올해에만 지난해 대비 16조원이 증가한 66조원을 지방에 집행하기로 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반도체와 AI 인프라 확산이다. 삼성그룹과 SK그룹은 기존 수도권 중심의 기술 패권을 지방으로 확장하며 ‘기술 초격차’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향후 5년간 국내에 총 450조원을 투입하는 로드맵에 따라 경기 평택 5공장(P5)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울러 충남 아산의 IT용 OLED 라인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데이터 인프라의 남하(南下)다. 전남 해남에 구축되는 ‘국가 AI 컴퓨팅 센터’와 경북 구미의 ‘AI 데이터 센터’는 수도권에 집중됐던 디지털 혈맥을 남부권으로 분산시켜 지역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하는 핵심축이 될 전망이다.
SK그룹은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서 충북 청주를 세계 최고 수준의 거점으로 육성한다. 약 19조원이 투입되는 첨단 패키징 팹 ‘P&T7’이 오는 4월 착공되면 청주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대응의 핵심 기지가 된다. 여기에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의 연계성을 강화해 중부권 전반을 하나의 거대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로 묶어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제조 심장부였던 영남과 호남 지역은 친환경 모빌리티와 에너지 전환의 핵심 거점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울산의 전기차 전용 공장과 화성의 PBV(목적기반차량) 공장을 통해 미래차 생산 체제를 완성하는 한편, 호남권에는 파격적인 에너지 투자를 단행한다. 광주와 전남 일대에 조성되는 1GW 규모의 수전해 플랜트는 단순히 산업 시설을 넘어 대한민국 ‘그린 수소 생태계’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역시 전체 투자액 100조원 중 60%인 60조원을 지방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 집중한다. 충북 오창의 ‘배터리 마더팩토리’는 전 세계 LG 배터리 공장의 표준 모델을 만드는 기술 사령부 역할을 맡게 된다. GS그룹은 전남 여수에 1조4000억원 규모의 LNG 허브 터미널을, 울산에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생산 체제를 구축하며 에너지 전환 시대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이다.
▲철강 ▲조선 ▲방산 등 한국을 먹여 살렸던 전통 산업들도 AI와 친환경 기술을 입고 ‘중공업 2.0’으로 진화 중이다.
포스코그룹은 경북 포항에 약 5조원을 투입해 수소환원제철(HyREX) 시험 설비를 신설한다. 이는 탄소중립 시대 철강 산업의 생존을 결정지을 핵심 기술이다. 동시에 전남 광양의 하이니켈 양극재 공장과 포항의 LFP 양극재 공장을 통해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서도 지방을 중심축으로 세우고 있다.
한화그룹은 영남과 호남을 잇는 거대 방산·우주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경남 거제와 창원을 중심으로 방산 생산 능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전남 고흥과 순천에 우주 발사체 클러스터를 구축해 ‘한국판 스페이스X’의 꿈을 지역에서 키워가고 있다. 아울러 전남 신안에서는 약 2조원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HD현대 역시 전남 영암에 AI 기반 지능형 스마트 조선소를 구축하며 조선업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지역 경제 파급 효과 700조 원…넘어야 할 과제는
이번 10대 그룹의 대규모 지방 투자가 실현될 경우, 한국경제인협회는 향후 5년간 최대 525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221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십만개의 양질의 일자리가 지방에서 창출되면서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할 강력한 처방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정부 역시 기업들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추고 있다. ▲기회발전특구 확대 ▲대대적인 세제 혜택 ▲수도권과 지방 간 에너지 가격 차등 적용(차등 전기요금제 등)을 통해 기업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유인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과제도 남아 있다. 단순한 공장 이전을 넘어 핵심 인재들이 지방에 정주할 수 있는 정주 여건(▲교육 ▲의료 ▲문화)의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지역별 강점 산업에 맞는 맞춤형 규제 혁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투자 의지가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본부장은 “이번에 내놓은 지방 투자 계획이 원활하게 집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가 입지와 인허가 등 규제를 없애는 등 기업 투자를 뒷받침할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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