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공백 확대, 국내 기업에 열린 CDMO 기회
2030년까지 블록버스터 특허 만료…성장 전략 재편 필요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만료(특허절벽)라는 두 가지 구조적 변화를 맞으며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고 있다. 미국이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을 추진하면서 중국 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퇴출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수년간 이어질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 확대를 이끌며 K-바이오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생물보안법이 연 기회
미국 의회가 최근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미국 정부와 계약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중국 기업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으로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내 입지가 축소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그 공백을 채우며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위탁개발생산(CDMO) 역량을 갖춘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에스티팜 ▲롯데바이오로직스 등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공급망 리스크 분산을 위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면서 국내 기업의 참여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바이오 소재·부품·장비 기업들 역시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시설 확보를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 내 생산 거점은 글로벌 수주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관세나 리쇼어링(해외 생산시설의 본국 회귀) 정책 등 ‘메이드 인 USA’ 기조에 따른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 2025년 12월 미국 뉴저지주 브랜치버그에 위치한 일라이 릴리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약 3억3000만달러(약 4600억원)에 인수했다.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해 관세 및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고, 미국 내 거점을 기반으로 CDMO 사업을 확대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4만5000평 규모의 부지에는 ▲생산시설 ▲물류창고 ▲기술지원동 ▲운영동 등 총 4개 동이 있으며, 원료의약품(DS) 6만6000리터(L) 규모를 생산할 수 있다.
셀트리온은 향후 약 7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생산능력을 13만2000L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완제의약품(DP) 생산시설 구축을 통해 미국 내 엔드투엔드 공급망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같은 해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에 있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자회사 ‘휴먼지놈사이언스’의 생산시설을 약 2억8000만달러(약 4136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곳은 원료의약품 6만L 규모의 공장으로, 임상부터 상업 생산까지 다양한 항체의약품 제조가 가능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송도와 록빌을 잇는 이원화 생산체계를 구축해 글로벌 고객에게 유연하고 안정적인 생산 옵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생물보안법 통과에 대비한 전략적 조치로,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허만료 러시, 바이오시밀러 성장 무대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잇따르면서 바이오시밀러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 올해부터 연매출 1조원을 웃도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들의 특허 만료가 본격화되며, 오는 2030년까지 약 70개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특허 보호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전체적으로는 약 200개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다.특허 보호가 종료되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매출과 수익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경쟁사들이 제네릭이(복제약)나 바이오시밀러를 출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제네릭·바이오시밀러 기업들에는 대규모 시장 진입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서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특허절벽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두 회사는 오랜 기간 바이오시밀러 개발 경험을 축적해왔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왔다.
셀트리온은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출시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다양한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개발·출시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과 특허 만료라는 두 가지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K-바이오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 심화와 생산 거점 확보 경쟁까지 거세지고 있어, 이번 기회를 실질적인 성장으로 연결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인도·일본 등 경쟁국들이 이미 미국 현지 생산시설 확보에 나선 점을 지적하며, 한국 기업들도 연구개발(R&D) 투자와 생산 인프라 확충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산업 지원 ▲규제 완화 ▲인프라 구축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특허절벽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민관이 협력해 전략적 대응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는 지금이 한국 바이오 산업에는 수십 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전략적 기회”라며 “단순 생산기지 역할에 머물지 않고 기술 경쟁력과 포트폴리오를 함께 강화해야 진정한 수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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