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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시즌 2’ 마이데이터 생태계, 뭐가 바뀌었나

은행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새 옷을 갈아입었다. 지난 6월 전면 개편된 ‘마이데이터 2.0’이 본격 시행되면서, 개인 금융정보 통합 조회는 물론 비활동성 계좌 해지 등 편리하고 정교한 금융생활 관리가 가능해졌다. 다만 대대적인 개편에도 불구하고, 마이데이터 생태계의 본격적인 부흥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마이데이터 1.0 ‘흥행 실패’…이유는금융권에 따르면 2022년 1월 국내에 도입된 마이데이터는 지난 6월 19일 2.0 시대를 맞이했다. 마이데이터는 개인의 동의 하에 여러 금융회사에 흩어진 정보를 한 곳에 모아주고, 이를 맞춤형 정보와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출시 약 3년만에 새 단장한 것은 복잡한 연동 구조와 비효율적인 동의 절차 등으로 사용자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마이데이터 1.0 체계에서 이용자는 자신의 금융정보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보기 위해 각 금융회사 및 상품별로 일일이 동의하고 연결해야 했다. 연결할 수 있는 금융회사 또한 50곳으로 제한적이었다. 디지털 취약계층의 접근성도 문제였다. 서비스가 주로 온라인과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에서만 제공돼 고령층 등 디지털 금융 취약계층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마이데이터 1.0은 실제로 데이터를 모아서 보여주는 수준에 머무르며, 심화된 개인 맞춤형 서비스 제공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사업자별 서비스 차별화도 미흡했다.마이데이터 2.0 어떻게 달라졌나2025년 6월 마이데이터 2.0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복잡한 절차를 단순화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점이다. 기존에 사용자는 금융회사별 상품을 일일이 선택해 연결해야 하는 불편함이 컸다. 이제는 업권만 선택하면 모든 금융자산이 한 번에 일괄 조회된다. 최대 50개 금융기관까지 선택할 수 있었던 부분도 2.0부터는 모든 금융기관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눈에 띄는 부분은 금융결제원의 ‘어카운트인포’(계좌정보통합관리서비스)가 민간으로 개방됐다는 점이다. 휴면계좌·휴면보험금 등 정보가 제공돼 이용자의 휴면자산을 한꺼번에 조회할 수 있게 됐고, 100만원 이하의 1년 이상 사용되지 않는 소액 비활동성 계좌의 경우 마이데이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직접 이체·해지가 가능하다. 매년 반복하던 마이데이터 가입 유효 기간 연장도 개선해 최대 5년까지 설정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 또한 6개월 이상 미접속한 이용자의 정기적 정보전송은 중단되고, 1년 이상 미접속 시에는 개인정보가 삭제되는 등 이용자 정보보호 조치도 강화됐다. 서비스 접근성도 확대됐다. 2.0 시행으로 은행 영업점 등 오프라인 채널에서도 고령층·디지털 취약계층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생태계 부흥 과제…“금융·비금융 데이터 결합해야”마이데이터 서비스 고도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생태계 부흥을 위한 과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의 마이데이터 산업은 제도적 안정성을 갖춰가고 있지만 향후 수익의 불투명성, 2024년도부터 시행된 과금제 등으로 전업 마이데이터사들은 경영상 어려움에 놓였다. 마이데이터 사업자는 정보를 요청할 때마다 호출 비용이 발생한다. 사용자 수가 많아질수록 호출량도 함께 늘어나 사업자는 오히려 고정비 부담이 커진다. 이 같은 ‘과금 역설’ 현상에, 실제로 2024년~2025년 중 전업 마이데이터 7곳이 폐업을 신고했다. 정보 호출 과금 체계 현실화, 중소 사업자 지원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각 사업자들은 시장 구조 재편 속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지속해서 개발해야 한다. 특히 금융 데이터에 유통과 같은 비금융 데이터를 결합한 신규 서비스 출시가 관건이다.백연주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가치가 높은 비금융 데이터를 발굴해 금융·비금융 데이터 간 결합을 높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또한 백 연구위원은 “잠재력 있는 데이터의 발굴, 구조조정을 통한 시장 효율성의 증진 등이 향후 마이데이터 시장의 과제”라면서 “본격적으로 마이데이터 과금이 시행되면서 시장의 구조조정도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재설계가 필요하며 마이데이터 회사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비즈니스 구조의 재검토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2025.08.04 12:01

3분 소요
마이데이터 2.0 시대…금융권, 맞춤형 서비스 속속

은행

잠든 돈을 깨우고, 흩어진 자산을 한눈에 본다.마이데이터 2.0 시대가 열린다. 일상 속 금융이 달라지고 있다. 핀테크부터 보험·카드·은행 등 각 업권의 금융사들이 고도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핀테크, 연결성·편의성 강화금융권에 따르면 2022년 1월 시작된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지난 6월부터 ‘2.0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6월 19일부터 사업자 27곳이 마이데이터 2.0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간 마이데이터 서비스 이용자 수도 2022년 1월말 1400만명에서 올해 5월말 1억6531만명(중복가입 포함)으로 크게 늘었다. 마이데이터는 개인의 동의하에 여러 금융회사에 분산된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주고, 이를 맞춤형 정보와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마이데이터 2.0 시행에 맞춰 각 금융사들은 맞춤형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우선 핀테크 업체 토스는 이용자 편의성과 서비스 안정성을 강화했다. 토스 앱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면 마이데이터 2.0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토스는 가입 단계에서 자산 조회 및 연결을 위한 절차를 간소화했다. 마이데이터로 휴면 예금과 휴면 보험금을 조회한 뒤, 잔고를 이전하거나 해지하는 절차 또한 토스 앱에서 바로 가능하다. 토스는 휴면 예금과 휴면 보험금 잔고를 서민금융진흥원에 기부할 수 있는 서비스도 선보인다.마이데이터 전문 핀테크 뱅크샐러드의 경우 숨은 계좌 및 보험금을 가장 쉽고 빠르게 찾아주는 ‘2025 숨은 내 돈 찾기’ 서비스를 출시했다. 마이데이터 2.0 시행에 따라 선보이는 첫 서비스다. 특히 보험의 경우, 이를 ‘보험진단’ 서비스와 연결해 보험 내역을 기반으로 보험금을 돌려받거나 최적의 금융 혜택을 소개 받을 수 있는 맞춤 상담이 지원된다. 보험·카드사도 ‘숨은 자산’ 찾기 앞장보험·카드사도 마이데이터 2.0 기반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교보생명도 최근 ‘숨은 금융자산 찾기’ 서비스를 선보였다. 해당 서비스를 활용하면 장기미거래 계좌와 휴면 예금뿐만 아니라 ▲찾지 않은 보험금 ▲장기 적립된 카드 포인트 ▲증권 계좌에 남은 예탁금 등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보생명은 2022년 보험 업계 최초로 마이데이터 1.0 기반 서비스를 선보인 데 이어, 이번 마이데이터 2.0 기반의 고도화된 서비스도 업계에서 가장 먼저 출시했다. 이번 서비스 출시에 맞춰 배우 정해인과 함께한 광고도 공개했다. 광고에서는 ‘자산 찾기에 청량감이 필요할 때’라는 문구를 통해, 금융소비자의 답답함을 해소하겠다는 메시지도 담았다.교보생명 관계자는 “마이데이터 2.0을 적용해 연결 가능한 금융사를 대폭 확대하고, 자산 조회 절차도 간소화했다”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신한카드는 고객 동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금융기관 연결 수 제한을 없애 정보 수집 범위를 확대했다. 이를 통해 전 금융기관 계좌를 한눈에 조회할 수 있다. 오픈뱅킹을 활용한 이체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하다. 휴면 예금·보험금도 조회 범위에 포함됐다.또한 소비 분석 기능도 강화됐다. 카드 및 간편결제 내역을 기반으로 주간·월간 소비 리포트를 제공하고, 금융 캘린더를 통해 입출금 일정·자동이체·상품 만기일을 안내한다. 고객 동의 유효기간은 기존 1년에서 5년으로 연장됐다. 장기 미접속 시 데이터 자동 삭제 기능도 도입돼 보안성을 높였다. 은행권, 마이데이터로 수익성 반등 기회마이데이터 시장은 그간 빅테크 중심으로 성장해왔지만, 은행권은 이번 2.0 체계를 수익성 반등의 기회로 삼고 있다. 기존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스마트폰 앱 등 비대면 채널 중심이었지만, 2.0에서는 오프라인 영업점에서도 신청과 조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오프라인 지점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니어 대상 자산관리나 고액 고객 유치, 모바일과 오프라인 연계 상담 시스템 구축 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신한은행은 이번 서비스 도입에 맞춰 이용 고객에게 흩어진 금융정보를 한눈에 파악하고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을 개편했다. 자산관리를 넘어 소비패턴 분석 및 맞춤형 금융 알림 서비스도 제공해 고객 금융 편의성을 한층 강화한다는 복안이다.마이데이터 2.0으로 새 시대가 열리면서, 미래 수익원을 찾기 위한 금융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희재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전통 산업의 성장 한계 속 ▲디지털 전환 ▲맞춤형 서비스 ▲마이데이터 확산 등 ‘데이터 중심 경제’가 본격화되며 데이터는 ‘무형의 새로운 매출원’으로 부각됐다”며 “마이데이터 사업 이후에도 데이터 관련 정책 및 IT 인프라 규제 완화 등 정부 주도의 데이터 기반 강화가 추진됨에 따라 데이터 산업 전반의 활성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2025.08.04 11:00

4분 소요
비주류 테크노크라트가 꿈꾸는 인도네시아의 미래…”세계 무대에 알리는 게 내 역할” [특별 인터뷰]

CEO

“사기인 줄 알았다.”지난해 10월 제8대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가 새 내각을 구성했을 때 주목받는 인사가 있었다.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사기인 줄 알았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정치권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민간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2억8000만 인구의 미래를 책임지는 창조경제부 차관에 임명됐다. 아이린 우마르(Irene Umar) 차관이 주인공이다.그는 1984년생으로, 평생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전문가)다.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을 해본 경험이 전무하다. 모든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는 프레지던트대(President University)에서 경제학을 전공해 수석으로 졸업했고,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서 금융인으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아랍에미리트·인도·싱가포르 등에서 포트폴리오 관리 및 신용 리스크 부문을 담당해 파트너급 이사까지 역임했다. 이후 아시아·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 DNC를 공동 창립하며 투자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또한 블록체인 기반 게이밍 플랫폼 W3GG의 최고경영자(CEO) 겸 공동 창립자였고, 비영리 교육 운동 단체 ‘One Indonesia’를 설립한 사회 운동가였다. 강연을 잘하기로 소문난 연사로 국제 콘퍼런스와 기술 포럼 등에서 그가 강연한 영상이 널리 퍼져 있을 정도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40대 초반의 여성이 인도네시아의 미래와 혁신을 선도하는 중요 부처의 차관에 임명된 것이다. 그가 ‘차세대 리더’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의 임명은 프라보워 대통령의 '홍백(紅白) 내각’(Red and White Cabinet)이 추구하는 가치를 명확히 보여준다. 홍백은 인도네시아 국기를 상징하며, 각 색은 ‘용기’와 ‘순수성’을 뜻한다. 프라보워 행정부 내각의 특징은 ‘통합’이다. 그는 이를 “정치적 배경이나 인맥이 아니라 국가 비전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기준으로 인재를 등용한다는 철학”이라며 “나는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이 없다. 내가 차관에 오른 것은 정치적 연출 없이도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진정한 사례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프라보워 행정부의 상징인 그를 본지가 지난 7월 9일 단독으로 만났다. 아이린 우마르 차관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주관한 제14회 정보보호의 날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차관 임명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차관 자격으로는 한국을 처음 방문했지만, 이전에 개인적인 용무와 업무 때문에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면서 “과거에도 한국 스타트업 행사에 심사위원 및 연사로 초청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를 만나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한국과의 협력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창조경제부 차관 통합 내각의 상징으로 떠올라 Q 스스로를 '비주류 테크노크라트'라고 소개해 왔다. 정치 경험이 없는데 차관으로 임명된 배경은 무엇인가? A. “과거에는 창조경제와 관광이 통합되어 있었는데 프라보워 대통령 행정부는 창조경제부를 독립 부처로 신설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창조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Q 창조경제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A “창조경제부는 부(ministry)와 청(agency)의 역할을 모두 가지고 있다. 부의 역할은 정책을 만드는 것이고, 청은 실행을 하는 곳이다. 창조경제부는 17개 하위 분야를 다룬다. 패션부터 요리·공예·건축·공연 예술 등의 전통 분야부터 게임·애플리케이션·디지털 콘텐츠·영화·미디어 등 디지털 분야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잠을 못 자고 있다.(웃음) 창조경제부는 제품이 준비됐을 때 개입해 포장이나 브랜딩을 개선하고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Q ‘창조경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나. A “현 내각은 모든 국민이 굶주리지 않고 집을 갖는 등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국민이 국가를 위해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부의 핵심은 인도네시아만의 고유한 ‘문화’를 활용해 음식·의류·게임 등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만들어 인도네시아를 세계 무대에 알리는 것이다.”Q 금융계를 시작으로 투자사 대표, 스타트업 창업 등 민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런데 행정부 각료로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솔직히 공직은 내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일이다.(웃음) 민간 분야에서 매우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었지만, 이 일을 제안 받았을 때 일이라기보다는 소명처럼 느껴졌다. 대통령의 공도 크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리더들을 발탁한 대통령의 결단도 크다. 이는 국가를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Q 입각 전의 다양한 경험이 창조경제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A “내가 민간 분야에서 쌓은 경험은 인도네시아 창조 생태계의 핵심 요구사항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인도네시아에 창조경제를 뿌리내리려면 내가 민간에서 경험했던 금융·투자·경영 분야의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창업가로서 나는 기업가가 겪는 어려움을 몸소 알고 있다. 투자자로서 자본을 유치하고 운용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도 안다. 이제 내 역할은 현장에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효과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배울 것이 많기에 끊임없이 협력해 나갈 것이다.”Q 창조경제부 차관으로서 현재 중점을 두는 정책은 무엇인가. A “가장 중요한 첫 과제는 17개 하위 부문에 대한 생태계 전체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정책은 단절된 상태에서 만들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창작부터 유통, 수익화에 이르는 가치 사슬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엔드투엔드’(end-to-end)로드맵을 구축하고 있다. 게임과 블록체인 같은 고성장 부문에서는 국제 파트너와 교두보를 마련하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17개 하위 부문 모두가 중요하지만,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자(unifier)’가 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놀라운 인재와 기업, 커뮤니티 같은 강력한 구성 요소들을 하나로 모아 함께 전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돕겠다.” 프라보워 정부가 내세운 ‘홍백 내각’(Red and White Cabinet)은 아이린 우마르 차관의 입각을 가능하게 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다양한 정당 출신 지도자와 민간 부문 전문가, 기술 관료를 모았다. 이렇게 실용적인 내각을 구성한 목표는 새 정부의 비전인 ‘황금 인도네시아 2045’(Indonesia Emas 2045)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게 아이린 우마르 차관의 설명이다. 그는 “나만 비정치권 출신 차관이 아니다. 나 외에도 몇몇 분들이 있고 이는 진정으로 국가를 위한 실무 중심의 인사를 한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면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내 복장이나 사용하는 언어가 완전히 다를 텐데 괜찮냐’고 물었다. 그들은 ‘전문가로서 참여하는 것이니 괜찮다’고 존중해줬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관료 사회와 거리가 먼 '비주류' 테크노크라트의 등장은 국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창조경제'에 모든 것을 걸었음을 의미한다. 내수 시장 넘어 글로벌 향하는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아이린 우마르 차관 덕분에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베쿱’(BEKUP·Bekraf for Startup)이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관광창조경제부 시절부터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인도네시아 전역의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핵심 정책이다. 이를 통해 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했고, 참여 스타트업의 42.5%가 매출 증가를 경험했다. 또한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해 '게임시드’(GAMESEED)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인도네시아 게임협회와 손잡고 인재를 양성하고 초기 단계 스튜디오를 지원한다. 아이디어 구상부터 투자 유치용 프로토타입 제작까지 전 과정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2억8000만명의 거대한 내수 시장은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에 축복이자 기회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 거대한 ‘자국 내 실험실‘에서 사업 모델을 연마하고 규모를 키운다. 하지만 최근 창조경제 분야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본 글로벌’(Born Global), 즉 태생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린 우마르 차관은 “조용히 세계 무대를 점령하고 있는 겸손하고 창의적인 회사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도네시아 스튜디오가 100% 제작한 게임 '커피 토크’(Coffee Talk)와 '코랄 아일랜드’(Coral Island)를 꼽을 수 있다. 이 게임들은 스팀(Steam)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수백만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수도 자카르타가 아닌 반둥에 기반을 둔 패션 브랜드 ‘머신56’(Machine56)은 매출의 90%를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다. 아이린 우마르 차관은 “이들은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투자사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아이린 우마르 차관은 현재 투자 환경에 대해 '신중한 낙관론’(cautious optimism)이 지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묻지 마 성장 시대는 끝났다. 투자자들은 이제 확실한 수익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거대한 인구와 젊고 디지털에 친숙한 소비층 덕분에 초기 단계 투자는 여전히 활발하다.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불고 있는 투자 트렌드로는 기존 플랫폼에 금융 서비스를 녹여내는 '임베디드 핀테크(Embedded Fintech)', 소셜 커머스, 그리고 세계 최대 니켈 보유국이라는 강점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 생태계를 꼽았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놨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투자 유치에 가장 유망한 분야로 AI가 꼽힌다. 인도네시아 투자업계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린 우마르 차관은 “일부 투자자들은 AI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투자하기도 한다”며 “투자자로서 투자를 결정할 때는 ‘이 기술이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시장이 있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린 우마르 차관은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모바일 네이티브’(Mobile-Native)라는 단어로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PC 시대를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 시대로 직행한 것을 말한다. 수천만 명에게 스마트폰은 유일한 컴퓨터이자, 은행 계좌를 건너뛰고 처음 만난 금융 도구다. 그는 “이러한 독특한 DNA는 거대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자랑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의 진화를 '세 차례의 물결'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고젝(Gojek) 같은 유니콘으로 대표되는 ‘사람의 이동’이다. 두 번째는 '상품의 이동'이다.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에서 토코피디아(Tokopedia)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이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세 번째는 ‘돈의 이동’으로, 핀테크와 통합 결제 시스템의 붐으로 이어졌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가 QR코드 표준인 ‘QRIS’다. 길거리 노점상부터 대형 소매점까지 모두 스마트폰으로 결제할 수 있는 망 구축을 가능하게 했다.아이린 우마르 차관은 “지금 네 번째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바로 ‘창작자 경제’(Creator Economy)”라면서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소셜 미디어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창작자들이 급증하며 새로운 경제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그에게 인도네시아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협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협업은 단순한 기회가 아니라 필연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류를 통해 콘텐츠 강국이 된 한국의 노하우와 인도네시아의 무궁무진한 스토리, 창의적인 인재가 결합하면 새로운 '하이브리드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도 인도네시아 진출에 대한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한국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KOSME)이 자카르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설립한 것이다. 그는 이 센터 설립에 대해 “두 팔 벌려 환영한다”며 웃었다. 그는 “KOSME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것은 단순히 인도네시아가 큰 시장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의 기술 공동 개발과 글로벌 시장 공동 진출이라는 협력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한국과의 협력은 필연”Q. 인도네시아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스타트업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A.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를 찾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의 ‘문화 번역가’이자 현지 생태계로 가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네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 번째는 ‘초현지화’(Hyper-Localization) 전략이다. 단순한 언어 번역을 넘어 현지 결제 수단·물류·문화적 민감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로 ‘커뮤니티 우선 접근법’을 실행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매우 공동체적인 사회이므로, 고객 목록이 아닌 팬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전해야 한다.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마지막으로, '실제 인도네시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가져와야 한다.”Q 한국과 구체적으로 협력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 A “우리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두 나라의 음식을 융합하는 ‘미식 외교’다. 둘째는 인도네시아를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식재산권(IP) 협업을 희망한다. 예를 들어, 한 인도네시아 브랜드는 일본의 유명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해 한정판 제품을 출시한 적이 있다. 한국의 IP나 영화가 우리와 협업한다면 기차역이나 공항 같은 국가 소유의 플랫폼도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협업을 3주 만에 성사한 경험도 있을 정도로 관료주의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이단아’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불교도·중국계 출신이라는 ‘트리플 소수자’(Triple Minority)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인도네시아 행정부에 입성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는 역할과 성과로 평가받기를 원했다. 이는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 국가가 세계를 향해 보내는 가장 강력한 관용과 통합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이린 우마르 차관의 도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25.08.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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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늑장 공개→불신”…투자자 보호, 여전히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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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의 반복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더 많은 금액이 보안에 투자돼야 한다. 증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투자의 3대 원칙은 수익성·안전성·환금성이다. 증권사는 고객의 자금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반복된 사고와 늑장 공개로 인해 투자자의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도 사고 배상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제도를 만들어 반복된 사고를 막아야만 한다. 증권사와 금융기관 당국이 함께 투자자를 보호해야만 한다. 한국의 주식투자자는 1500만명 가까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식시장을 육성하고 주가를 5000포인트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종합주가지수는 3200 포인트까지 상승했다. 반복된 사고를 막기 위하여 주식투자가 확대되어야 하고 정부 역시 투자자를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있어야만 주식 투자 인구는 더욱 증가한다. 미국 국민은 70%가 주식에 투자하고 매년 30%씩 수익률이 난다. 미국 국민은 노후 대비를 주식으로 하고 있다. 한국 주가가 상승하고 국민들이 노후대비를 주식에 투자할 정도로 안전하고 성과가 좋아야 된다. 그 이전에 증권사는 사고를 예방하고 국민들의 불신을 없애야 한다.최근 몇 년간 국내 주요 증권사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전산 시스템 장애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거래 지연 ▲체결 오류 ▲시스템 다운과 같은 사고 이후에도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신속한 공지나 명확한 책임 인정을 회피해왔다. 그 결과 투자자들 사이에선 깊은 피로감과 불신이 누적되고 있다.문제는 이러한 전산 사고가 일회성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증권사들은 ‘사과문’ 발표나 ‘자율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소액의 배상을 하는 데 그치고, 근본적인 개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 다수는 소액 투자자나 고령층이다. 이들은 사고 발생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보상 신청 절차조차 알지 못해 사실상 구제받지 못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한국 자본시장의 특성과 거래 구조를 고려하면, 전산 장애는 단순한 운영 차원의 이슈가 아니다. 초단위로 움직이는 시장에서 수초의 지연조차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닌, 투자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돼야 한다. 그럼에도 금융감독 당국의 대응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대부분의 조치는 ‘경고’나 ‘주의’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사후 조사나 구조적 제재 장치는 사실상 부재하다.이러한 현실은 결국 증권사들의 안전투자 기피와 책임 회피를 유인하는 잘못된 구조로 이어진다. 금융기관, 특히 증권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 자산의 안전성과 보안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고 양상은 일부 증권사들이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고객 보호를 후순위로 밀어놓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신뢰 없는 시장엔 투자도 없다"전산 시스템에 대한 투자는 비용이 아닌 ‘신뢰의 기반’이다.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전산 장애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고 시 즉각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투자자 보호는 법적 권리 이전에 시장 전체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자본시장 기본원칙인 수익성·안전성·환금성의 세 가지 축 중 ‘안전성’은 모든 금융기관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요소다.마찬가지로 증권사들도 고객에게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으로서, 자산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장애가 발생한 뒤 사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방 중심의 투자와 시스템 고도화 그리고 반복 사고에 대한 내부 통제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정부와 금융당국도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명확한 기준과 법적 규정 없이 자율 보상에만 맡겨두는 현재의 체계는 무책임한 운영을 묵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고 발생 시 의무 공시제 도입 ▲피해 발생 기준에 따른 단계별 보상 체계 ▲금융당국의 실질적 제재 권한 강화 ▲고령층 등 정보 취약 계층에 대한 별도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또 전산 시스템과 관련한 기술적 감사 및 평가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미국이나 유럽은 일정 규모 이상의 시스템 장애가 발생하면 감독기관의 즉각적인 조사와 민사 책임이 뒤따른다. 사고 경위를 고의로 축소하거나 보고를 누락할 경우 형사적 처벌까지도 가능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내부 시스템 문제’로 둔갑시키며 투자자에게 피해 책임이 전가되는 상황이다.결국 반복되는 전산 사고와 그에 따른 부실한 대응은 시장 신뢰를 침식시킨다. 국내 자본시장 전체의 위상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단순히 몇몇 기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시스템적 리스크이며, 대한민국 금융 산업 전반의 신뢰 구조가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이제는 금융당국과 증권사 모두가 전면적인 태도 전환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기술적 투자를 확대하고, 투자자 보호 제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며, 정보 취약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보완하는 등 다층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투자자의 신뢰는 ‘사과’가 아니라 ‘제도’로 보장돼야 한다.

2025.08.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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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금융사고 터지면…강력 통제와 막대한 보상으로 이어져

증권 일반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대규모 전산 장애나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유사한 패턴이 반복된다. 사고 수습과 피해 보상 논의가 끝나면 감독당국은 강도 높은 제재를 예고하고 책임자 처벌에 집중한다. 하지만 법적 근거의 모호성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 마련으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응에 그친다. 뉴욕·런던·도쿄 등 글로벌 금융 중심지의 대응은 사뭇 다르다. 금융 선진국에서의 내부통제 실패는 단순히 여론의 질타나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처벌 수위는 법적 프레임워크에 따라 명확하게 규정되고, 그 대가는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천문학적인 벌금과 법적 책임으로 돌아온다. 이는 금융사고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글로벌 규제 당국은 복잡한 금융 시스템에서 모든 사고를 완벽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대신 기업과 경영진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합리적인 노력을 다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즉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떻게 하면 사고를 막고,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구조화할 것인가’라는 사전적 리스크 관리 모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미국, ‘실패 비용’ 기업에 전가 미국 규제 모델의 핵심은 ‘실패 비용의 외부화’다. 시스템 실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기업에 천문학적인 벌금으로 되돌려줘 기업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이다. 그 초석은 1934년 증권거래법에 명시된 감독자 책임(Supervisor Liability) 원칙이다. 이 원칙은 위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견고한 감독 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최고경영진까지 책임을 지도록 규정한다. 이러한 철학은 자율규제기구인 금융산업규제기구(FINRA)의 구체적인 규정들(Rule 3110·3120·3130)과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시스템 규정준수 및 무결성 규정(Regulation SCI)을 통해 구체화된다. FINRA는 ▲서면화된 감독 절차 ▲위험 기반의 점검 시스템 ▲CEO의 연간 내부통제 인증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한다. 지난 2020년 3월 주식거래 앱 로빈후드(Robinhood)의 시스템 중단 사태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이다. 2021년 FINRA는 해당 문제에 대해 7000만달러(약 966억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FINRA의 조사는 단순한 서버 다운을 넘어 로빈후드의 사업 모델 전반에 걸친 감독 실패를 겨냥했다. 구체적으로 ▲부적격 투자자에게 위험성 높은 옵션 거래를 허용한 부실 심사 ▲고객 계좌의 현금 잔고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상황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행위 ▲시스템 중단 사태에 대응할 수 없는 형식적인 사업 연속성 계획(BCP) 등이 모두 위반 사항으로 지적됐다.주목할 점은 제재의 내용이다. 약 7000만달러 중 5700만달러는 벌금이었다. 나머지 1260만 달러는 피해를 본 고객에 대한 직접적인 배상으로 명령됐다. 이는 기업에 징벌적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투자자가 복잡한 소송 없이도 직접적인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미국 모델의 강력함을 보여준다.미국 SEC의 최근 행보 역시 이러한 기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SEC는 2023~2024년 걸쳐 임직원들이 개인 스마트폰의 왓츠앱(WhatsApp) 등 승인되지 않은 채널을 통해 업무 관련 소통을 한 오프채널 통신 기록을 보존하지 못한 수십 개의 증권사에 대해 총 6억달러(약 8280억원)가 넘는 막대한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기술적 실패나 정보 보안의 허점이 단순한 기록 보관 규정 위반을 넘어 기업의 공시 의무 및 내부통제와 직결되는 중대한 법적 리스크임을 분명히 했다.영국·일본, 책임 명확화·산업 전반 대응 영국 금융 당국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위 경영진 및 인증 제도(SMCR)라는 칼을 빼 들었다. 이 제도의 목표는 누가 무엇에 대해 책임지는가를 명확하게 문서화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금융사는 책임 기술서와 책임 지도를 통해 모든 핵심 업무에 대한 책임 소재와 보고 체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감독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고위 경영진은 자신의 책임 영역에서 규제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SMCR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2018년 TSB 은행의 IT 시스템 이전 실패 사건이다. 이 사건은 기관에 대한 거액의 벌금(약 890억원)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책임졌던 전직 최고정보책임자(CIO) 카를로스 아바르카에게 개인적으로 8만파운드(약 1억5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편 일본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거액의 징벌적 벌금보다는 행정 지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방침은 2025년 5월 해커들이 온라인 증권 계좌를 탈취해 5000억엔 이상의 불법 거래를 감행한 사건에서 잘 드러났다. 해커들은 피싱 공격으로 탈취한 로그인 정보로 계좌에 접근한 후, 기존 주식을 매도한 자금으로 소형주를 집중 매수해 펌프 앤 덤프 수법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시킨 뒤 이를 매도했다.일본 금융청은 특정 기업을 처벌하기보다는 산업 전체의 방어 수준 강화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즉시 경보를 발령하고 다중 인증(MFA) 도입을 의무화했으며, 서비스 중단까지 검토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또한 증권사들에게 피해 고객 보상을 지시해 주요 증권사 10곳이 보상 방침을 발표했다.

2025.08.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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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 '연 1조원 전산 시스템 투자'하고도…장애는 여전

증권 일반

증권사들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등 고객 플랫폼 안정성을 위해 매년 전산 시스템 투자비용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 장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증권사에만 맡기는 것보다 시스템의 ‘구조적 투명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산운용비 매년 증가…1조원 육박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전산투자비용은 ▲2022년 7800억원 ▲2023년 8500억 원 ▲2024년 9600억원으로 3년 연속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비례해 같은 기간 하루 평균 주식 거래대금은 2022년 약 16조원에서 2024년 23조원 수준으로 늘었다. HTS·MTS 등 디지털 채널에 과부하가 생기면서 증권사들은 ▲서버 이중화 ▲실시간 처리 시스템 확충 ▲프로그램 검증 고도화 등의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와 함께 ▲AI 기반 투자 시스템 ▲실시간 데이터 분석 ▲ESG 기반 리스크 관리 솔루션 도입 등이 맞물리면서 전산 투자 비용은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 특히 ▲챗봇 ▲리서치 자동화 ▲AI 추천 종목 기능 등 AI 기반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면서 전산시스템 투자 비용도 확대되고 있다. 단순 주문 체계뿐만 아니라 고객 맞춤형 리포트과 빅데이터 기반 포트폴리오 기능까지 HTS·MTS에 연동되며 백엔드 시스템의 복잡도가 급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증권사들의 올해 연간 기준 전산운용비가 1조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장애만 없으면 된다’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UI 반응 속도 ▲체결 속도 등도 민원 요인이 된다”며 “특히 최근 수요가 급증한 연금저축·ISA 계좌도 모두 MTS 기반이라 거래 혼잡 시간대는 병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전산운용비 지출 규모는 증권사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주요 증권사 전산투자비는 ▲삼성증권 267억원 ▲미래에셋증권 230억원 ▲KB증권 189억원 ▲신한투자증권 128억원 ▲NH투자증권 95억원 ▲하나증권 84억원 ▲한국투자증권 85억원 ▲토스증권 70억원 ▲키움증권 301억원으로 집계됐다.특히 키움증권은 1분기만에 300억원 이상을 전산에 투입해 경쟁사 대비 1분기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25년 4월 초 이틀간 대규모 장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1만8000건이 넘는 민원이 발생했다. 전산시스템 투자에 대한 실효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TF 구성하고 투자 늘리지만…투자자 반응은 냉담전산시스템 투자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자 일부 증권사들은 후속 TF 구성 및 중장기 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올 1분기 전산 민원이 폭증하자 ‘해외주식 서비스 안정화 TF’를 가동했다. 2026년까지 200억원 규모의 정보기술(IT) 인프라 투자 계획을 수립했다. 토스증권도 올해 1000억원 이상의 IT 예산을 배정하고, 내부통제 및 자동화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앞서 NH투자증권은 2023년 해외주식 주문 오류 이후 전산 백업체계를 강화했다. KB증권도 2024년 코스닥 호가정보 지연 사태를 계기로 MTS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 중이다. 하지만 많은 증권사들이 사고가 난 후에야 임시적인 대응을 하고 선제적인 리스크 대응 설계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투자자 대응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실제 한 대형 커뮤니티에는 “몇 번을 재설치해도 체결 오류가 뜬다” “주가가 떨어지는 동안 화면만 멈춰 있었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특히 MTS 장애는 실시간 반응 속도에 민감한 2030세대에게 더 치명적이다. 일부 투자자는 “3초 지연으로 100만 원 손실 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시스템이 일시적 트래픽 폭증을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도 강도 높은 경고를 내놓았다. 올해 1분기 전산 관련 민원이 수천 건에 달하자, 금감원은 “장애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구조적 개선이 여전히 미흡하다”면서 “전산사고는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직접 침해하는 사안인 만큼, 사후 수습보다 사전 점검과 예방 체계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증가하는 전산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증권사의 ‘내부 통제’로 둘 것이 아니라, 예방 시스템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예컨대 ‘전산 안정성 인증제’나 ‘사고 발생 시 의무 리포트제’ 등을 도입해 복구 프로세스를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점검을 받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투자자와 시장이 동시에 감시하고 확인하는 제도가 있어야만 증권사의 전산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민원 대응 이전에 시스템의 ‘구조적 투명성’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업계 관계자는 “결국 전산 시스템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닌 투자자 보호와 직결된 신뢰의 문제”라며 “예산을 얼마나 썼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투자자가 얼마나 안정적 거래 환경을 체감하고 있느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천억원이 투입되고도 여전히 반복되는 장애는 투자자 불안과 플랫폼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예산이 아니라, 보다 정교한 설계와 선제적 대응, 그리고 시장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 신뢰 회복 방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5.08.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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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 오류, 또?”…‘주당 1건꼴’ 연간 100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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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는 개인투자자에게 단순한 거래 수단이 아니다. 시세 확인부터 주문 체결, 잔고 관리 등까지 모든 투자 행위의 중심이 된다. 만약 주문이 지연되고, 잔고가 0원으로 표시되며, 체결 알림이 수 분 뒤에 도착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특히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나 단타 종목처럼 초단위로 시세가 급변하는 종목에서는, 단 몇 초만의 전산 장애에도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잔고 오류 ▲주문 누락 ▲접속 장애는 더 이상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투자자 자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리스크라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런 장애가 반복되고 있다. 증권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5월까지 증권업권 전산장애는 총 475건이나 발생했다. ▲2020년 66건 ▲2021년 85건 ▲2022년 78건 ▲2023년 100건 ▲2024년 100건으로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누적 장애 시간은 무려 2만6498시간(약 3년)에 달했다. 소비자 피해 보상과 시스템 복구 비용 등으로 발생한 직접 피해액은 262억8293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단일 사고 기준으로는 2020년 키움증권 시스템 오류가 47억원의 손실을 남기며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뒤를 이어 미래에셋증권(2021년), 한국투자증권(2022년)도 각각 수십억 원대 손실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해마다 증가하는 전산사고…민원건수도 증가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올 상반기에만 46건의 전산사고가 발생했다. 주요 증권사 별로 보면 3월 키움증권이 특정 종목의 실시간 체결 정보 표출이 10분 이상 지연되어 투자자의 불만이 폭발한 바 있다. 4월에는 미래에셋증권이 SOR 오류로 11건의 민원이, 5월에는 NH투자증권에서 잔고 데이터 오류로 수천 건 이상의 민원이 접수됐다. 이어 6월 6일 메리츠증권 이용자들은 미국 주식 거래 지연 사태를 겪었고, 6월 9일에는 토스증권이 대체거래소 넥스트트레이드(NXT) 애프터마켓 시간대에 약 14분간 접속 장애를 일으켰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하반기까지 포함하면 2024년도 전산사고 건수를 초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원도 1년간 매 분기 8건 이상”…신한·미래·유안타 최다전산 오류에 대한 투자자 불만은 해마다 누적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4년 1분기부터 2025년 2분기까지 60개 증권사에 접수된 전산장애 민원은 총 185건에 달한다. 가장 많은 민원이 접수된 곳은 신한투자증권으로 총 39건이다. 2024년 3분기 10건, 2025년 1분기 11건, 2분기 8건 등 최근 1년 동안 매 분기 8건 이상 민원이 발생했다.미래에셋증권은 총 26건의 전산장애 민원이 발생했다. 특히 2025년 2분기에만 21건이 집중됐다. 유안타증권은 총 25건, 이 중 15건은 2024년 4분기에 몰렸다. 이 외에도 ▲하나증권(16건) ▲메리츠증권(15건) ▲삼성증권(12건) ▲유진투자증권(12건) ▲토스증권(11건) ▲KB증권(9건) ▲NH투자증권(5건) 등도 전산장애 민원이 다수 발생했다.협회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민원도 존재한다. 키움증권의 경우 2025년 4월 초 단 이틀간 발생한 시스템 장애로 약 1만8000여건에 달하는 민원을 자체 접수했으나, 해당 수치가 금융투자협회 민원 공시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HTS·MTS 시세 지연과 주문 체결 오류가 동시에 발생하며 역대급 민원 폭증이 발생했다. 하지만 공시 기준의 한계로 인해 실제 피해 규모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투협 관계자는 “민원 공시 제출 마감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증권사별로 시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제출 기준과 관련한 내부 규정은 담당 부서에서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업계 관계자들은 전산장애의 근본 원인으로 ▲시스템 노후화 ▲테스트 부족을 꼽으며 “거래량이 급증하는 경우 트래픽을 감당할 서버 자원이 부족하고, 정기적 모니터링보다는 외주 점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규 기능을 도입하면서 충분한 검증 없이 운영에 들어가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쉽게 말하면 개발 인력 부족과 비용 절감 기조가 맞물려 발생하는 것이다. 심지어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증권사도 예외가 아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기반 시스템을 도입한 신한투자증권도 전산장애를 겪은 것이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AWS 자체 장애는 없었으나 외부 요인이나 사용자 환경 문제로 발생한 지연까지 민원으로 집계된다”고 해명했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장애가 발생해 사용자들의 피해가 발생해도 대부분의 보상은 수수료 면제나 포인트 적립에 그치는 것이다. 전산장애로 사용자의 피해가 발생해도 증권사가 징계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듣기 어렵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매년 수십 건의 전산사고가 보고되지만 실제 징계나 과징금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10% 미만”이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산 사고의 피해액을 명확히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라며 “예컨대 투자자가 주문을 넣지 못한 상황에서 그 거래가 실제로 성사됐을지, 손해가 발생했는지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은 불편함에 머무르고, 명확한 금전적 피해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보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징계나 시정명령은 원칙적으로 내부통제 기준 미준수에 대한 대응인데, 장애가 반복되면서도 제재가 약한 이유는 증권사들의 책임을 강하게 묻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용자 보호 관점에서 사고 예방 역량에 대한 강한 인센티브와 투자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국회 정무위 소속 강민국 의원은 “금감원은 반복적으로 사고를 일으킨 증권사에 대한 IT 실태 점검을 강화하고 강력한 제재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산 사고 발생 시 금융당국이 실시간으로 공시를 의무화하고, 사고 원인 및 복구 소요 시간, 재발 방지 대책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현재 전산장애 민원 공시 역시 증권사 자율에 맡겨져 있어, 장애 발생 사실조차 투자자에게 실시간 공유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금융IT 전문가도 “단순한 트래픽 지연이나 접속 불량도 실시간 거래 플랫폼에서는 ‘재난’ 수준의 사안”이라며 “전산 인프라는 투자 신뢰의 핵심으로, 단순 운영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 리스크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5.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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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번"...새로운 티몬 약속한 오아시스 [다시 일어선 티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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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가 티몬의 서비스 재개를 앞두고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의 원인이 된 긴 정산주기 축소와 새벽배송 도입, 경영진 교체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티몬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첫발을 잘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완전히 다른 티몬 약속한 오아시스티몬은 최근 자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8월 서비스 재개 소식을 전했다. 티몬의 새로운 주인이 된 오아시스는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으로 신뢰를 회복해 조속한 정상화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업계 최저 수수료와 초고속 정산시스템을 셀러(판매자)에게 제공하기로 했다.티몬 입점 조건으로 오아시스 측이 제시한 판매 수수료율 3~5%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픈마켓 평균 수수료율이 12%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 한 관계자는 “오아시스가 신뢰도를 잃은 티몬 브랜드를 계속 끌고 가기로 한만큼 판매자들에게 보다 확실한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을 것”고 말했다.오아시스는 지난해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티몬의 긴 정산 주기(판매 후 정산까지 최대 70일)도 손본다. G마켓·11번가·네이버 등 주요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구매확정 후 익일 정산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 경우 최대 10일 정도면 정산이 완료된다.이커머스 시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배송 경쟁력도 한층 강화한다. 오아시스는 자사의 성장 기반이 된 새벽배송 서비스를 티몬에도 도입하기로 했다. 성남·의왕 등에 총 3개의 물류센터를 구축한 오아시스는 밤 11시까지 주문 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물건을 전달하고 있다. 현재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로 한정된 새벽배송 서비스는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최근 오아시스는 부산 지역에서도 새벽배송 테스트를 시작했다.오아시스는 체질 개선의 일환으로 새로운 경영진도 선임했다. 티몬은 지난달 안준형 오아시스 대표를 신규 선임하고 오아시스 창업주인 김영준 의장과 IT 사업부 본부장 강창훈 사장을 티몬 사내이사로 각각 선임한 바 있다.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추가 투자도 결정했다. 오아시스는 지난달 500억원의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추가 투자 비용을 포함하면 현재까지 오아시스가 티몬에 투자한 금액은 총 616억에 달한다. 투자금은 티몬의 새로운 물류센터 확보와 노후화된 시스템의 개편 작업 그리고 판매자 익일 정산을 위한 유동성 확보 목적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오아시스 관계자는 “전면적인 체질 개선과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서 빠른 시일 내에 새롭게 달라진 티몬을 소비자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 안착 중요...핵심은 판매자 확보경제전문가들은 티몬의 재기를 위한 필수 요소로 판매자 확보를 꼽는다. 여기에 지속적인 비용 투입과 차별화 콘텐츠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이종우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티몬이 재기에 성공하려면 상품 구성을 위한 판매자 확보가 필수”라며 “다만 티메프 사태의 피해 보상 규모가 워낙 작았기 때문에 티몬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판매자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티몬의 경우 초반 흥행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판매자 확보와 이용자를 끌어오기 위한 프로모션 비용이 반드시 준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중장기적인 전략도 중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시장에 성공적으로 재진입한다고 해도 지속 가능성이 없으면 과거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 있어서다.이 교수는 “첫 단추를 잘 채웠어도 풀필먼트센터 확보와 멤버십 구축 등을 위한 추가 투자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물론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상위 사업자가 이용자를 대거 흡수하는 형국이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초기 안착을 위해 판매자 확보 등이 중요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티몬이 서비스를 재개하는 것은 업계에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도 “판매자와 충성고객 확보 전략 그리고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수”라고 조언했다.이어 “쿠팡·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이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티몬은 새롭게 시장으로 뛰어드는 후발주자의 위치에 있다"며 "틈새 시장의 적극적인 공략과 타겟형 프로모션 시행 그리고 판매자 인센티브 강화 등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김 교수는 또 “티몬이 그동안 잘했던 것이 타임커머스(시간별 특가 상품 판매), 즉시 할인 중심의 가격·속도 기반 쇼핑 경험이었다”며 “이를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라이브커머스, 지역 중소상공인 특화 플랫폼 등으로 진화한다면 충분히 재도약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2025.08.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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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사태 1년...오아시스 만난 티몬 [다시 일어선 티몬]①

유통

극심한 경영난으로 기업회생절차를 밟은 티몬이 새로운 주인 오아시스의 품에 안겼다. 지난해 1조원 이상의 피해를 양산한 정산금 미지급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여 만이다. 신선식품 직매입이 주력인 오아시스가 오픈마켓인 티몬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티메프 사태 1년...티몬만 살았다지난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을 충격에 빠뜨린 '티메프 사태'가 불거진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티메프 사태는 지난해 7월께 불거진 이커머스 플랫폼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정산금 미지급 사고를 말한다. 수년간 적자를 이어오던 큐텐그룹 산하의 티몬과 위메프는 급격한 자금경색으로 경영 위기에 빠졌다. 결국 두 회사는 셀러(판매자)들에게 정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로 인한 피해는 1조원을 훌쩍 넘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티메프 사태의 미정산액 규모는 1조3000억원 이상이다. 해당 사태로 소비자 47만명, 판매자 약 6만명, 기업 4만8000여개가 피해를 입었다. 특히 티몬의 총채권 규모는 1조2083억원에 달한다.티메프 사태는 큐텐그룹 산하의 또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 인터파크커머스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티몬과 위메프가 휘청이면서 인터파크커머스의 판매자와 고객도 연쇄적으로 이탈했다. 이는 심각한 자금난으로 이어졌고, 인터파크커머스 역시 판매대금을 정산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던 큐텐그룹 산하 플랫폼 기업인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기업회생절차를 밟는 것이 전부였다.상황은 녹록지 않다. 위메프는 지난 4월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제너시스BBQ그룹이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하면서 기대감을 높였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BBQ가 위메프에 대한 관심을 철회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지난달 초 위메프 인수 의향을 밝힌 기업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다만 실제 기업 인수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인터파크커머스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법원으로부터 회생 개시 결정을 받았지만, 이후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브랜드 사용권까지 만료돼 사명을 '바이즐'로 변경했다.청산 위기라는 벼랑 끝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은 것은 현재까지 티몬 단 한 곳뿐이다. 이 회사는 티메프 사태의 중심에 선 큐텐그룹 산하 기업 중 유일하게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오아이스가 티몬 인수를 위해 투입한 자금은 총 181억원이다. 전체 인수대금 중 116억원은 티몬의 신주 인수에, 나머지 65억원은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 등 공익채권에 활용됐다.티몬의 정산금 미지급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1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피해 보상을 위한 재원은 116억원에 불과했다. 티몬의 회생채권 변제율이 0.75%에 불과했던 이유다. 이는 1억원의 손실을 본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돈은 고작 75만원이라는 뜻이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거부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라는 이유로 회생계획안을 강제로 인가했다. 티몬 새주인 오아시스는 어떤 곳?티몬을 인수한 오아시스는 지난 2011년 설립된 신선식품 특화기업이다. '품질감동·가격감동·서비스감동'이라는 슬로건 하에 365일 최저가를 추구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모두 보유 중이며, 품질 경쟁력을 갖춘 신선식품과 새벽배송 서비스가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회원 수와 인지도 등 객관적 지표 측면에서는 티몬과 비교 시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아시스는 올해 들어 회원 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2022년 100만 회원 달성 이후 3년 만에 두 배 규모까지 늘린 것이다. 티몬은 티메프 사태 이전 기준으로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400만~500만명을 유지했다.물론 오아시스가 티몬보다 앞서는 부분도 존재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13년 연속 영업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약 62억원의 영업이익을 실현했다. 이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이례적인 사례다. 11번가·G마켓·SSG닷컴 등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이 장기 적자로 허덕이는 것과 상반된다. 여기에 재무 안정성도 갖췄다. 오아시스의 올해 1분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1500억원, 부채비율은 41.6%에 불과하다.업계에서는 오아시스가 티몬 인수로 외연을 확장한 뒤 기업공개(IPO) 재추진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23년 오아시스는 코스닥 상장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IPO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수요 예측 결과가 기대치를 하회함에 따라 계획을 철회했다.업계 관계자는 “오아시스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끌어올리며 치열한 이커머스 시장에서 성장해온 알짜 기업으로 평가된다”며 “다만 상품군의 한계가 있어 지속 성장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티몬을 인수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2025.08.03 11:00

3분 소요
“연봉 2800억원?”...저커버그가 일으킨 AI 인재 영입 ‘돈의 전쟁’ [한세희 테크&라이프]

산업 일반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큰 연봉을 받은 스포츠 스타는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알나스르에서 뛰는 그는 2024년 2억6000만 달러를 받았다. 우리 돈 약 3500억원 정도다. 대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 외에 천문학적으로 큰 돈을 버는 사람은 주로 글로벌 스포츠 스타나 인기 연예인들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팬들의 관심과 지지를 끌어들일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과학자와 엔지니어 중에서 이런 슈퍼스타 부럽지 않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 분야다. 수년에 걸쳐 10억 달러(약 1조4000억)를 받는 조건으로 영입 제안을 받은 인공지는(AI) 연구자가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슈퍼 인재에 대한 보상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는 장본인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이다. 그는 얼마 전 회사에 초지능연구소(Meta Superintelligence Lab) 조직을 신설하고,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테슬라 ▲애플 등 경쟁사 초특급 AI 인재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영입 시도를 하고 있다.2억 달러로 영입한 루오밍팡 수석 엔지니어 메타는 연봉과 계약 보너스, 주식 등을 합쳐 2억 달러(약 2800억원)를 제시해 애플에서 초거대언어모델 개발을 주도한 루오밍 팡 수석 엔지니어를 영입했다. 이어 애플에서 멀티 모달 AI를 연구하던 핵심 연구원도 메타로 옮겼다. 이런 식으로 애플에서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던 팀에서 4명이 메타로 이동했다. ‘애플 인텔리전스’를 구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시장 불신이 쌓여가는 애플로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성형 AI 시장을 개척한 오픈AI 인력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10명 이상의 오픈AI 연구진이 메타 초지능연구소로 적을 옮긴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초지능연구소 40여 명 인원 중 오픈AI 출신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샘 알트먼 오픈AI CEO가 “메타가 1억 달러(약 1400억원) 규모의 보상을 제시하며 인재를 빼내려 한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낼 정도다. 메타 초지능 연구소는 28살의 알렉산더 왕이 이끈다.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를 다니던 중 AI 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정제해 AI 개발사에 제공하는 스케일AI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10만여 명의 계약 직원을 두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주요 AI 개발사와 협력한다. 일반적 의미의 연구자는 아니지만, AI 업계 정보와 인맥의 허브라는 평을 듣는다. 메타는 왕을 영입하기 위해 지난 6월 스케일AI에 140억 달러(약 19조원)를 투자해 스케일AI의 지분 49%를 취득했다. 스케일AI는 독립된 회사로 운영되고, 왕은 스케일AI 이사 자리도 유지한다. 140억 달러는 왕을 메타 초지능 연구소로 데려오는 값인 셈이다. 이사회가 알트먼 CEO를 몰아내려 했던 ‘오픈AI의 난’ 때 알트먼과 갈등을 겪은 미라 무라티 당시 최고기술관리자(CTO)가 창업한 AI 스타트업 싱킹머머신랩(Thinking Machines Lab) 인력들도 대거 메타 헤드헌터의 목표가 됐다. 보통 4년 간 2억~5억 달러 수준의 보상을 제안받았고, 최고 10억 달러까지 몸값이 책정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인력이 대략 호날두만큼 번다는 이야기다.초지능 구현 핵심은 슈퍼 인재이는 호날두나 메시가 마케팅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이들 슈퍼 인재가 AI 분야에서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 일은 바로 초지능 개발이다. 메타는 초지능 개발에 진심임을 가장 눈에 잘 띄는 지표, 즉 돈으로 증명하려 하고 있다. 초지능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말한다. 오픈AI 설립 목적이기도 한 일반인공지능(AGI)과 비슷하지만, AGI가 사람처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범용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초지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의 성취에 방점이 있다. 초지능이 실현된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초지능에 가장 먼저 도달한 기업이나 국가는 다른 누구도 갖지 못한 강한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자산이 될지, 무기가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메타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로선 AI 학습과 운영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 발전 시설 등 인프라 측면에서 경쟁자가 따라오기 힘든 해자를 쌓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혁신적 돌파구를 뚫어낼 인재들이다. 최근 선보인 오픈소스 방식 초거대 언어모델 '라마'(LLaMA) 최신 버전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 등 AI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메타로서는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선도 주자를 따라잡기 위해서 인력을 공격적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메타가 일으킨 AI 인재 영입 전쟁을 바라보는 후발 주자들은 마음이 복잡하다. 빅테크들이 GPU를 쓸어가 버려 우리나라는 추경 예산을 편성해 가며 따로 구매해야 했다. 이들에 맞먹는 인프라를 만들기도 어려운 판에, 인력에 대한 처우까지 상상 못할 수준으로 차이가 나면 인재 유출을 피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할 한 가지 방법은 중국 딥시크가 했듯, 환경의 제약을 뚫고 혁신을 만들어낼 창의적 접근을 가능케 할 환경을 만드는 일일 터다. 또는 연구자를 가슴 뛰게 할 비전을 제시하는 방법도 있다. 자체 AI 개발과 외부 협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길을 잃은 애플은 핵심 인력을 메타에 빼앗겼지만, 오픈AI 경험을 토대로 AI 기술 개발 방식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 한 싱킹머신랩에선 아무도 이탈하지 않았다. 심지어 저커버그 역시 회사 블로그에 “초지능을 통해 각 개인 역량에 날개를 달고, 스마트 안경 같은 새로운 컴퓨팅 기기로 초지능을 생활화한다”는 글을 올리며 자신들의 작업을 비전으로 포장하고 있다. 우수 인재가 공대를 안 가고 의대만 간다며 꾸짖기 전에, 사람들이 환경의 제약을 뚫고 성취할 수 있도록, 가슴 뛰는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보상 등 시스템을 개선하고 과학적 상상력을 북돋는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이건 인프라와 돈이 있다고 자동으로 이뤄질 일은 아니다.

2025.08.03 10:30

4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