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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식 팔아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딜레마 [이병희의 연금술사]
- 목표 비중 상향에도 실제 보유량 30% 육박
수십조원 규모 잠재 매물 부담
시장 충격 우려에 발 묶인 연기금, 주가 급락 시 자산 동반 축소 위기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조절하는 자산 재조정(리밸런싱) 지연으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국내 증시가 급등할 때 팔지 못한 주식이 쌓이면서 앞으로 매도해야 하는 압박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대규모 매도 물량이 나와도 매수자들이 이를 받아낼 힘이 있지만 반대의 경우 주가 하락을 부채질할 수 있습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자연히 국민연금이 보유한 자산도 쪼그라들게 됩니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국내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쉽게 팔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셈입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지난 5월 중기 자산배분 계획을 통해 올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대폭 상향 조정했습니다.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 범위와 전술적 자산배분(TAA) 범위를 합산해 국내 주식 비중을 최대 28.8%까지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목표 비중과 실제 비중의 괴리를 좁혀 대규모 강제 매도로 인한 시장 충격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실제 비중과의 격차가 커 ‘매물 폭탄’에 대한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은 허용 범위를 넘어선 30% 수준까지 치솟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전체 자산 규모를 약 2000조원이라고 가정할 때 국내 주식 보유 규모는 약 600조원에 이릅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많게는 70조원을 웃도는 국내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문제는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코스피가 급락하는 등 변동성이 매우 높은 장세가 이어지자 국민연금은 리밸런싱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됐던 리밸런싱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서 7월부터는 재조정을 재개해야 하지만 선뜻 대규모 매도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6월 25일 코스피는 8930.30을 기록하면서 9000선을 바라봤지만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면서 7월 2일에는 7648.09까지 내려앉았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이 계속됐고 기관 투자자도 이에 동참했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순매수하며 매도 물량을 받아냈지만 떨어지는 코스피를 일으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주식시장이 가라앉으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 자산 가치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 그동안 주식을 매도하지 않아 장부상 자산이 늘어났던 성과가 주가 하락과 함께 사라지는 역효과를 맞게 됩니다. 반대로 비중을 낮추기 위해 기계적인 매도를 단행하면 코스피의 추가 폭락을 유도해 스스로 자산 가치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분산 매도를 하더라도 향후 수개월에서 1년에 걸쳐 대규모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것 자체가 증시 상단을 제약하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시장 안정과 수익률 확보라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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