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이커머스 플랫폼 수확기 도래…동남아 셀러들은 왜 남는 게 없나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 소상공인 마진 소멸이 불러온 아세안 디지털 경제의 그늘
플랫폼 폭리화에 현지 셀러의 생존 투쟁 벌어져
[김상수 Hanbridge 대표] 이번에는 수백만 현지 소상공인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동남아 이커머스 플랫폼 생태계로 시선을 돌리려 한다. 쇼피(Shopee)와 틱톡샵(TikTok Shop), 이 두 거대 플랫폼이 아세안 이커머스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아세안 디지털 경제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드러난다.
2025년부터 동남아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일제히 수수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쇼피는 지난해 1월 필리핀을 시작으로 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까지 순차적으로 인상했고, 올해 2월에는 4개 시장에 기술지원비 명목으로 5%를 추가했다.
틱톡샵도 뒤지지 않는다. 베트남의 경우 지난해 초 2~3%였던 수수료가 올해 3월 기준 마켓플레이스 셀러 12.5%, 몰 셀러는 14.5%로 인상했다. 지난 5월에는 추가 조정까지 예고했다. 플랫폼 업계에서는 이를 ‘수확기’라 부른다. 수조 원의 보조금을 뿌리며 셀러와 소비자를 끌어모은 성장기가 끝나고, 적자를 감수하며 쌓아올린 시장 지배력을 이제 현금화하는 단계다.
현지 셀러들의 불만은 수수료 숫자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구조다. 플랫폼에 100에 등록한 상품이 각종 프로모션을 거쳐 90에 팔리고, 고객은 쿠폰을 써서 70에 산다. 6.6, 7.7 같은 더블데이가 월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에서 실질 부담은 45~50%에 달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구매자가 배송비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플랫폼이 커버하고 그 비용을 판매자에게 전가한다. 물류비도 소액처럼 보이지만 물건값 대비 만만치 않다. 100에 판 상품에서 셀러 손에 쥐어지는 것은 5에 불과하다.
틱톡샵은 여기에 또 하나의 층위를 얹는다. 숏폼과 라이브영상이 소비의 주류가 된 지금, 인플루언서 생태계 없이는 성장이 어렵다. 셀러가 인플루언서에게 설정하는 어필리에이트 수수료 하한선은 10%이며, 샘플 제공과 부킹피까지 더해지면 보이지 않는 비용이 또 쌓인다. 심지어 틱톡샵은 셀러에게 사전 통보 없이 상품에 할인을 적용하기도 한다. 원하지 않으면 셀러가 직접 수동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이렇게 플랫폼 수수료에 잡히지 않는 비용들을 전부 합산하면 셀러 마진은 사실상 소멸에 가깝다.
경쟁인 줄 알았는데 담합이었다
쇼피와 틱톡샵이 경쟁하는 동안 셀러들은 잠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양상이 바뀌었다. 한 플랫폼이 수수료를 올리면 다른 플랫폼이 따라 올리는, 마치 담합한 것 같은 흐름이 반복됐다.
동남아 이커머스 시장의 80% 이상을 쥔 두 플랫폼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셀러에게 실질적인 선택지는 없다. 셀러 마진이 줄면 결국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다. 상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전가하거나, 품질과 다양성을 줄여 플랫폼의 매력도 자체를 낮추거나. 어느 쪽이든 소비자도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지난 6월 베트남 정부가 수수료 투명성을 공개 촉구하고 베트남에서는 페이스북·잘로(Zalo) ·자사몰로 눈을 돌리는 탈플랫폼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지만, 쇼피가 SPayLater·SeaBank 등 핀테크 생태계로 구축해놓은 금융 락인(lock-in) 구조 앞에서 이탈은 말처럼 쉽지 않다. 쇼피를 떠나는 것은 판매 채널 하나가 아니라 결제·대출·금융 서비스 전체를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원래 약속은 단순했다. 정보를 정리하고, 좋은 제품을 찾아주고, 사기를 막고, 배송을 보장하는 것. 그러나 그 기능들은 이제 사회적 기능이 됐고, 플랫폼은 통제와 조작의 단계로 넘어갔다.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좋은 상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비를 낸 상품이 노출되고 할인 행사가 구매를 유도한다.
셀러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제품을 만들 때의 공식이 '원가율 20%에 마케팅을 잘하자'가 됐는데, 그 마케팅의 실질이 결국 소비자를 속이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자조 섞인 고백이 현장에서 나온다. 한때 백화점 수수료 30%를 욕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의 플랫폼은 그것보다 더 많이 가져가면서, 셀러와 소비자 간의 직접 소통마저 알고리즘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조가 영원할 것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AI에게 조건을 주고 상품을 찾아달라는 방식이 일반화되면, 소비자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올 이유가 줄어든다. 광고비를 낸 상품만 우선 노출하는 구도는 AI 기반 검색 앞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자체 팬덤을 기반으로 플랫폼 종속 없이 판매하는 인플루언서 모델도 균열을 만들고 있다. 다만 이 흐름이 기존 플랫폼을 단기에 대체하기는 어렵다. 당분간 동남아 이커머스는 플랫폼의 수확과 셀러의 저항이 교차하는 긴장 국면을 유지할 것이다.
소규모 현지 셀러들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이탈하면, 디지털 경제의 과실은 대형 브랜드와 플랫폼에만 집중된다. 오늘도 동남아의 수백만 소상공인들이 셀러센터 대시보드를 들여다보며 수수료를 계산하고 있다. 처음으로 온라인 장사를 시작한 베트남 어머니, 핸드메이드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꿈꾸는 인도네시아 청년이 그 화면 앞에 있다. 플랫폼의 수확이 이들의 몫을 계속 잠식한다면, 아세안 디지털 경제의 성장 스토리는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삼정 KPMG∙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벤처투자 등 23년이상 다양한 사업경험과 더불어 벤처캐피탈∙회계법인∙인프라∙스타트업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현재 싱가포르의 Hanbridge의 대표로 한국 중소∙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및 해외 자금 유치를 돕는 역할과 함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생태계를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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