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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역대급 실적, 누구는 구조조정’…양극화 심해지는 게임업계[서대문 오락실]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국내 게임업계가 전례 없는 양극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분기마다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생존을 위해 인력을 감축하고 사업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개별 기업의 경영 성과 차이를 넘어 산업 전체의 구조적 불균형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게임업계 맏형 격인 넥슨은 최근 발표한 실적에서 다시 한번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넥슨은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에서 역대 최대치를 달성하며 독보적인 1위 자리를 굳혔습니다. 넥슨이 이처럼 흔들림 없는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에는 오랜기간 쌓아온 강력한 지식재산권, 즉 IP의 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FC 온라인과 같이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는 게임들이 버티고 있기에 넥슨은 매달 막대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본력은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대형 게임사들은 열개의 프로젝트 중 아홉개가 실패하더라도 단 하나의 대박이 터지면 나머지 손실을 모두 메우고도 남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데이브 더 다이버’와 같은 참신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도 결국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기존 흥행작들의 실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자본이 혁신을 낳고 그 혁신이 다시 자본을 불러오는 선순환 구조가 대형사들에게는 이미 정착된 모습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 중견 및 중소 게임사들을 살펴보면 상황은 전혀 딴판입니다. 한때 쿠키런 신화로 시가총액 1조원을 넘나들며 중견사의 저력을 보여줬던 데브시스터즈의 사례는 현재 업계가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데브시스터즈는 최근 신작들의 잇따른 흥행 실패와 기존 게임의 매출 하향 안정화로 인해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한 모습입니다. 결국 회사는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뼈아픈 선택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중견사들에게 있어 신작의 실패는 대형사와 달리 곧바로 회사의 존폐를 위협하는 직격탄이 됩니다. 이들은 대개 한두 개의 핵심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수년간 수백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한 신작이 시장에서 외면받을 경우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중견사들은 모험적인 시도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답습하거나 유행을 쫓는 양산형 게임 개발에 매몰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게임 시장의 판도가 글로벌 무한 경쟁 체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이제 국내 게임사들의 경쟁 상대는 옆 건물의 이웃 회사가 아니라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운 중국의 텐센트나 서구권의 거대 퍼블리셔들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용자들의 눈높이는 이미 AAA급 대작들에 맞춰져 있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결국 돈이 있는 곳에 우수한 인재가 몰리고 인재가 몰리는 곳에서 수준 높은 게임이 나오는 자본의 논리가 게임업계에도 철저히 적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대형사들은 고액 연봉과 복지를 앞세워 핵심 개발 인력을 흡수하고 있지만 중소 개발사들은 인건비 상승 부담을 이기지 못해 인재 유출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는 결국 기술 격차와 콘텐츠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지며 양극화의 벽을 더욱 높게 쌓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허리 계층의 실종이 장기적으로 한국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중소 및 중견 개발사들은 과거 한국 게임 산업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요람이었습니다. 특히 모바일 시장 초창기에는 여러 참신한 게임으로 전 세계 게임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험적인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라진다면 산업 전체가 천편일률적인 상업적 게임에만 치중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매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 전반의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넘어 중소 개발사들이 독창적인 IP를 확보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대형 게임사들 역시 중소 개발사와의 상생을 위해 유망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거나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등 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K게임이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덩치 큰 맏형의 활약만큼이나 허리를 지탱하는 중견사들의 부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양극화의 늪에 빠져 창의성이 고사하기 전에 산업 전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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