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에너지 시장에는 왜 ‘토스’가 없는가 [스페셜리스트뷰]
- 레몬 마켓에 머무는 태양광 시장
정보 비대칭, 불투명한 관행에 갇혀
반면 에너지 시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판매자만 품질을 알고 구매자는 모른 채 거래가 이뤄지는 낡은 구조에 머물러 있다. 경제학에는 ‘레몬 마켓’(정보 불균형 시장)이라는 개념이 있다. 19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가 정립한 이론이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 시장 전체를 저품질로 수렴시키는 구조를 뜻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의 중고차 시장이었다. 판매자는 결함을 알고 있지만 구매자는 알지 못한다. 결국 좋은 물건은 제값을 받지 못해 시장을 떠나고, 나쁜 물건만 남게 된다. 지금은 플랫폼이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 그러나 당시 중고차 시장이 겪었던 구조적 병폐는 오늘날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한국의 소규모 태양광 시장이 정확히 그런 구조다. 태양광은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억원이 오가는 엄연한 자산이다. 그런데 거래 방식은 기이할 정도로 불투명하다. 견적서는 제각각이고 가격 산출의 근거는 모호하다. 시공 기준은 현장 소장의 ‘감’에 의존한다. 소비자는 알음알음 소개받은 ‘아는 사람’에게 거금을 맡긴다. 정보는 감춰져 있고 리스크는 오롯이 구매자의 몫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국면인데도 현장의 체감이 이처럼 엇갈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장의 과실이 소비자에게 닿기 전에 시장의 불투명한 관행이 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장, 인프라 아닌 ‘이머징 마켓’
업계는 규제를 탓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이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에너지 시장을 인프라로 보는 오래된 시각이다.
인프라는 도로 공사와 비슷하다. 건설이 끝나면 운용 주체가 사실상 고정되고 참여자는 제한되며 구조는 경직된다. 시장 참여자들이 이 프레임을 내려놓지 않는 한 이 시장은 새로운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에너지 시장은 이제 인프라가 아니라 ‘이머징 마켓’(신흥 시장)이다. 석유 산업 초기만 봐도 그렇다. 매장량만 확보하면 충분하던 시장이 정제·유통·선물거래 금융으로 진화하면서 전혀 다른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재생에너지도 다르지 않다. 생산 자원은 이미 전국의 지붕 위에 티끌처럼 흩어져 있다. 그러나 그 티끌을 모으고 거래하는 ‘시장의 설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고속도로가 깔리며 물류 산업이 꽃을 피웠듯, 전력망 위에서도 새로운 커머스가 자랄 여지는 충분하다.
이 같은 관점의 전환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태양광 발전소는 완공이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해야 하는 장기 자산이다. 금융으로 치면 20년 만기 채권에 가깝다. 발행 시점의 조건보다 이후 20년 동안의 운영이 수익률을 좌우한다.
하지만 지금 시장 구조는 ‘한탕’에 맞춰져 있다. 영업사원은 수익률을 부풀리고 시공사는 이윤을 남긴 뒤 떠난다. 남는 것은 관리되지 않은 패널과 고장 난 인버터, 그리고 발전량이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는 막막한 사업자뿐이다.
시장에 팽배한 ‘태양광은 사기’라는 불신은 기술의 실패가 아니다. 판매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즉 운영 주체의 부재가 낳은 필연적 결과다.
동시에 거시 변수는 시장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kWh당 105.5원에서 2024년 185.5원으로 3년 사이 75.8% 급등했다. 반도체·철강·배터리 등 전력 소비가 집중된 첨단 전략산업에서는 이는 곧 생존 변수다.
여기에 RE100(재생에너지 100%) 이행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저렴하고 깨끗한 전기’에 대한 수요는 어느 때보다 절박해졌다. 수요는 폭발하고 있지만 공급자 측의 시장 구조는 아직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핀테크가 보수적인 금융 시장을 뒤흔든 비결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었다. 핵심은 ‘투명성’과 ‘표준화’였다. 토스가 등장하기 전 금융 정보는 기관마다 흩어져 있었다. 소비자가 자신의 전체 자산을 파악하려면 여러 앱을 오가야 했다. 각종 수수료 구조도 직관적이지 않았다. 토스는 이러한 불편을 하나의 화면으로 해소했다. 흩어진 자산을 한눈에 보여주고 수수료 체계를 단순화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수천만명이 가입한 국민 앱으로 자리 잡으며 금융 서비스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앞당겼다. 글로벌 사례는 더 풍부하다. 미국의 스트라이프(Stripe)는 복잡한 결제 API(전자 창구)를 표준화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몇 줄의 코드만으로 결제 기능을 붙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거 수개월이 걸리던 결제 시스템 구축은 며칠로 단축됐다. 영국의 몬조와 레볼루트는 ▲실시간 지출 내역 ▲외환 수수료 무료화 ▲예산 자동 분류 기능을 앞세워 기존 은행의 ‘정보 독점’을 해체했다.
보수적이었던 금융 데이터는 ‘오픈 뱅킹’을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다.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면서 금융의 주권은 공급자에서 수요자로 이동했다. 그 결과 글로벌 핀테크 시장은 전례 없는 폭발적 성장을 맞았다.
성공의 원리는 간결하다. 애컬로프가 정의한 레몬 마켓의 해결책, 즉 ‘신뢰할 수 있는 품질 보증 메커니즘’을 플랫폼이 대신 제공한 것이다. 보이지 않던 비용과 정보가 투명하게 드러나자, 소비자들은 비로소 안심하고 지갑을 열었다. 시장은 커졌고 참여자는 늘어났다.
에너지 시장에도 같은 처방이 필요하다. ▲발전소 구축 비용은 어떤 근거로 산출됐는지 ▲수익률은 왜 그 숫자로 제시됐는지 ▲운영·관리 비용과 인버터 교체 비용은 적정한지 등을 소비자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시장은 결국 투명한 시장뿐이다.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병목
에너지 시장에 표준화가 시급한 이유는 단순히 소비자 편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소규모 태양광 인허가 하나를 처리하려 해도 90종이 넘는 비정형 문서를 다뤄야 한다. 지자체마다 서식이 다르고 표기 방식도 제각각이다.
이를 처리할 전문 인력이 부족한 지역 시공사들은 대형 업체의 하청으로 전락하거나, 행정 부담을 견디지 못해 시장을 떠난다. 다단계 하청 구조가 굳어지는 이유다. 하청 단계가 깊어질수록 책임 소재는 흐려지고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정보 비대칭과 구조적 비효율이 맞물리면서 단가는 높아지고 품질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런 다단계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미 가능하다. 주소 하나만 입력하면 ▲지붕 설계부터 구조 진단 ▲발전량 예측 ▲인허가 서류까지 자동으로 생성된다. 대규모 언어모델(LLM) 기반의 설계 자동화가 이미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전기 설계는 더 이상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설계 허들이 사라지면 전국 20만 영세 전기공사업체가 직접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원청에 수수료를 지급하며 구조의 최하단에 머물던 시공업자들도 공사에 집중하면서 정당한 몫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운영 단계도 마찬가지다. 발전소는 설치보다 운영이 핵심이다. ▲패널 음영 ▲인버터 고장 ▲접속함 이상 등 여러 원인으로 발전량은 쉽게 저하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규모 발전소 운영자는 이를 감지할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설치가 끝나는 순간 책임자가 사라지는 구조에서 이런 공백은 당연히 발생한다. 태양광은 20년 이상 장기 발전이 가능한 자산이다. 하지만 초기 몇 년간의 운영 공백이 누적되면 회수 불가능한 수익 손실로 이어진다.
결국 에너지 시장의 ‘표준’이란 단순한 기술 규격만을 뜻하지 않는다. ▲설계 ▲인허가 ▲시공 ▲운영 정산까지 전 과정이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투명하게 작동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소비자가 발전소 상태를 앱으로 확인하고, 발전량과 예상 수익을 직접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런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에너지 시장은 레몬 마켓에서 벗어날 수 있다.
판은 이미 깔리고 있다
2024년 국내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3.15GW에 달했다. 2030년까지의 경우 매년 10~15GW 수준의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2024년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553~600GW에 이르렀고, 누적 설치 용량은 이미 2.26TW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 거대한 흐름의 수혜가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조용히 선점하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발전소 부지와 설비만이 아니다. 수많은 분산 자원을 제어하고 최적화하는 ‘운영 데이터’와 ‘플랫폼’이다. 구글과 애플이 모바일 OS(운영체계)로 스마트폰 생태계를 장악했듯, 에너지 시장 역시 결국 ‘에너지 OS’를 가진 자가 모든 부가가치를 흡수하게 될 것이다.
거대 자본이 대형 발전소에 집중할 때 기회는 다른 곳에 있다. 전국에 티끌처럼 흩어진 소규모 지붕들이다. 수만개의 파편화된 지붕을 일일이 계약하고 관리하는 일은 거대 자본의 효율성 구조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 ‘롱테일’ 자원이 데이터로 연결되고 플랫폼으로 묶이는 순간 ‘티핑 포인트’(극적 전환점)가 찾아온다.
그러나 한 기업의 성과만으로 시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전환은 결국 세 가지가 동시에 갖춰져야 가능하다. ▲발전소를 20년짜리 금융상품으로 바라보는 산업 인식의 전환 ▲설계부터 정산까지 전 과정을 표준화하는 플랫폼 인프라 ▲소액 투자자부터 대형 수요 기업·지역의 영세 시공업자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된 시장 구조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실현되는 순간, 에너지 시장은 비로소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 대중의 자산으로 편입될 수 있다. 에너지 시장의 ‘토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채우는 기업이 향후 10년의 에너지 패권을 쥘 것이다.
그 해답은 더 많은 발전소를 짓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있는 발전소를 더 똑똑하게 운영하는 데 있고, 더 많은 자본을 끌어모으는 데 있지 않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데 있다. 땅을 파고 패널을 까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신뢰를 깔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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