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한미약품 경영권 갈등 재점화…주총 앞두고 ‘4자연합’ 균열 조짐도 [제약 경영권 분쟁] ①
- 오너가 분쟁 봉합 1년 만에 갈등 재점화
대주주 vs 전문경영인 충돌…대표 교체 속 지배구조 긴장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한미약품그룹이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 사후 이어져 온 오너 일가 경영권 분쟁을 봉합한 지 1년여 만에 다시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창업주 가족 간 분쟁이 아닌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간 충돌이라는 점에서 그룹 지배구조와 경영 체제의 안정성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최근 대표 교체 수순까지 현실화되면서 주주총회를 앞둔 한미약품의 경영 구도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박재현 전 한미약품 대표 간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며 긴장이 고조됐다. 이번 갈등은 성추행 의혹 임원 징계 과정과 원료 의약품 변경 문제 등을 계기로 촉발됐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대화 녹취록 공개 등을 통해 대주주의 경영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팔탄공장 임원의 성추행 사건 조사 과정에서 대주주 측이 조사 사실을 누설하고 징계 절차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의 주요 품목인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의 원료를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으로 교체하라는 압박이 있었다며 “전문경영인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정면 반박에 나섰다. 그는 해당 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없으며, 오히려 경영진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한 대주주의 정당한 견제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원료 변경 논란 역시 원가 절감을 위한 경쟁 입찰 추진 과정에서 제기된 사안일 뿐 경영 간섭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양측 갈등이 공개 충돌로 번지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파장이 커졌다. 최근 일부 한미약품 임직원들은 서울 본사 로비에서 신 회장을 비판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며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창업주 부인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역시 박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메시지를 내면서 갈등은 대주주 간 충돌 양상으로 확대됐다.
송 회장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대주주는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견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지지하며, 전문경영인은 부여된 권한과 책임 아래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전문경영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창업주가 생전에 강조해 온 전문경영 중심 경영 철학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모녀 vs 형제’에서 ‘모녀 vs 신동국’ 구도로
그러나 이후 신 회장이 모녀 측과 손잡고 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함께 이른바 ‘4자 연합’을 구성하면서 국면이 반전됐다. 지난해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서 임종훈 대표가 사임하고 송 회장이 대표로 복귀하면서 창업주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어 외부 영입 인사인 김재교 부회장이 지주사 대표이사로 선임되고, 한미약품도 박재현 대표가 이끄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되며 ‘뉴 한미’ 체제가 출범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간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안정적인 지배구조가 다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신동국 회장의 지분 영향력은 이번 분쟁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신 회장은 최근 한미사이언스 지분 6.45%를 장외에서 추가 매입해 본인과 한양정밀을 합친 지분율을 29.83%까지 높이며 개인 최대주주 지위를 강화했다. 창업주 일가인 ▲송영숙 회장(3.84%)과 ▲임주현 부회장(9.15%) ▲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9.81%)와 함께 이른바 '4자 연합'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4자 연합의 합산 지분은 약 52.63% 수준으로,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분쟁을 사실상 종결짓는 역할을 했다.
다만 신 회장 지분이 단일 최대 블록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연합 내부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릴 경우 4자 연합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총 변수…이사회 재편·새 대표 체제 촉각
시장 관심은 오는 정기 주주총회로 쏠리고 있다. 이달 임기가 만료되는 한미약품 이사 5명의 선임을 둘러싸고 이사회 주도권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이사회 직후 입장문을 통해 “이번 임기를 끝으로 한미약품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겠다”며 “대표로서의 마지막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PE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 후보로 내정했다. 황 대표는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최고투자책임자(CIO) ▲종근당홀딩스 대표이사 등을 지낸 투자 전문가다. 주주총회와 이사회 절차를 거쳐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며, 선임이 확정될 경우 한미약품 창사 이래 첫 외부 영입 대표이사가 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와 이사회 재편이 대주주와 경영진 간 갈등 이후 지배구조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연구개발 중심 산업인 제약·바이오 기업은 장기 전략의 일관성이 중요한데 경영권 갈등이 반복될 경우 투자자 신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특히 한미약품은 국내 대표 혁신형 제약사인 만큼 경영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대주주 견제와 경영 독립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관건”이라며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 재편과 새 대표 체제가 어떻게 자리 잡느냐에 따라 한미약품 지배구조 향방이 사실상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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