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변화에 주목해야…편익 잡고 불확실성 해결해야 [스페셜리스트 뷰]
- 안정성 높은 자산이지만…신용 창출 저해해 실물경제 위축 우려
대기업 진출·금산분리 원칙·정책 유효성…입법 과정 핵심 쟁점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상임이사] 지난 7월 미국에서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통과됐다. 그 법에서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유럽과 일본에서는 암호자산(Crypto-asset)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상화폐, 가상통화라고 부르다가 암호화폐, 암호자산을 거쳐 지금은 ‘디지털 자산’으로 부르려고 한다. 참으로 혼란스럽다.
물론 지금 거론되는 디지털 자산은 블록체인기술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기술에 기반한 발명품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같이 계속 발행되는 것과 대체불가능토큰(NFT)과 같이 발행 물량이 고정된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스테이블코인이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와 같이 발행 물량이 신축적이되, 현존하는 법정화폐와 일대일 교환이 보장되는 것이다.
비트코인 열풍은 여전하고, NFT 열풍은 한물갔다.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기대와 관심은 작년부터 아주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관심과 성원을 아끼지 않은 때문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사흘 만에 헌법상의 권리를 이용해 대통령 긴급명령(제14178호)을 발동하기도 했다. 그 명령의 골자는 CBDC 발행을 준비하라던 전임자 바이든 대통령의 긴급명령을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대신 스테이블코인에 힘을 실어주었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조금 다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폐와 동전을 대체하는 수단이고,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은행에 맡긴 예금을 대체하는 수단이다. 물론 공통점이 훨씬 크다. 스테이블코인이나 CBDC이나 비트코인처럼 명목가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 1달러는 언제나 1달러다. 그러므로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자기앞수표나 당좌수표처럼 지급수단으로 활용될 때만 쓸모가 있다.
그렇다. 스테이블코인과 CBDC의 존재 이유는 지급을 편하게 돕는 데 있다. 하지만 전혀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인류는 장사와 무역을 시작한 이래 지급을 돕는 수단을 끊임없이 고안했고,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했다. 기원전 7세기경 동서양 양쪽에서 등장한 금속화폐가 대표적이다. 흑사병이 끝난 뒤 서양에서는 어음이 나타났고, 비슷한 무렵 중국 송나라에서는 교자(交子)라는 지급수단이 등장했다. 3%의 수수료를 내면 동전을 갖고 운반하지 않더라도 먼 곳으로 송금할 수 있는, 일종의 자기앞수표였다. 그것이 큰 인기를 얻자 1023년 송나라 조정은 그 사업을 국가가 독점했다. 오늘날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과 CBDC의 원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와 우려,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현재 한국의 국회에서 진행 중인 디지털 자산에 관한 법률 제정 과정에서도 시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활용방안 마련”을 약속했으므로 스테이블코인이 어떤 식으로든 제도권에 편입되겠지만,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불안하여 장차 금융시스템을 뒤흔들 위험 요소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이 늘어날수록 준비자산으로서 국채의 수요가 커지니까 국가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테이블코인의 잠재력이 커서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으므로 발행을 넉넉하게 허용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의 범람으로 인해 통화 주권이 잠식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 부분적 진실에 불과하다.

이론적으로 안전하지만…통화 정책 교란 우려
지금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99%를 USDT, USDC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2022년 테라-루나(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파산과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때 두 스테이블코인은 잠시나마 액면가치를 지키지 못했다(이를 디페깅이라고 한다). 불안해진 사람들이 투매와 인출 소동을 벌인 탓이다. 그런 현상은 대공황 때 뱅크런이나, 글로벌금융위기 때 펀드런과 다르지 않다.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주범이 될 가능성을 엿보인 것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와 장차 등장할 모든 발행업자는 대출과 투자를 포기하고 국채와 같은 안전한 자산만 보유한다. 만일 그런 기관이 파산할 정도라면, 다른 금융기관들은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 즉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는 기존의 어떤 은행보다도 안전하며, 금융 불안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일찍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학수고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위기는 은행의 신용 창출 행위(대출)가 통제되지 못해 자산시장에 버블을 키웠다가 그것이 터지는 현상이므로 그것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은행의 대출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은 국채나 중앙은행 지급준비금과 같은 초안전 자산만 보유하게 된다.
그런 은행을 내로우 은행(narrow bank)라고 한다. 애덤 스미스·어빙 피셔·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주류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영국의 프레드릭 소디와 같은 좌파 경제학자들도 열렬히 지지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경제학자들의 이상향이었던 내로우 은행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기존 상업은행의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대체되고 그 돈이 국채에 묶이면, 기존 은행들의 신용 창출이 위축된다. 대출이 줄어들면 시장금리가 오른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법정화폐의 양과 정책금리 수준은 그대로인데, 시장금리 상승으로 고용과 생산이 줄면 실물 경제가 위축된다. 통화정책의 교란이다.

대출 포기한 내로우 은행…스테이블코인과 닮은꼴
그래서 미 연준(미국 중앙은행)은 대출을 포기한 은행의 영업을 금지했다. 2017년 더 내로우 은행(The Narrow Bank)라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되었는데, 그 은행은 경제학 논문에 있던 내로우 은행이 되는 것을 지향했다. 즉 고객의 돈을 받아서 송금 업무만 수행하고, 고객의 예금은 미 연준에 예치하는 것을 사업 모델로 삼았다(블록체인기술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미 연준은 한국은행과 달리 지급준비금에 대해서 연 4.25%의 두둑한 이자를 주는데, 그것으로 모든 운영비와 인건비를 뽑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출을 포기한 은행의 등장은 통화정책의 유효성과 확실성을 저해한다. 미 연준이 보기에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대출은 하지 않고 국채와 지급준비금에서 편안하게 이자 수입만 얻으려는 것은 불로소득을 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미 연준은 더 내로우 은행을 기존 금융시스템을 파괴하는 트로이의 목마로 간주하고, 지난해 12월 그 은행과 거래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안전하다고 여겼던 내로우 은행이 연준이 보기에는 위험 천만인 것이다. 이론과 현실의 차이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USDT, USDC와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들은 더 내로우 은행과 전혀 다르지 않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은행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의 자기앞수표를 디지털화한 것이므로 상관이 없다. 반면 비은행의 스테이블코인은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낮출지언정 통화정책을 중대하게 교란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늘면 국채 발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미신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은행법을 개정했다. 은행들이 국채를 매입한 만큼만 지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의무를 부과했다. 그럼으로써 국채 발행은 손쉬워졌지만, 기업 대출이 국채 매입으로 대체됨에 따라 시장금리는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연방정부의 국채이자 지급액도 줄지 않았다. 기업 대출과 국채 매입 간의 대체효과다.
금융적 시각에서 볼 때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는 내로우 은행이다. 블록체인기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은행업에 해당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금산분리 원칙이다.

‘금산분리’ 원칙,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변수
1956년 정부가 보유했던 ‘은행주 불하(입찰매각)’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산분리가 헌법처럼 단단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4대 은행을 민영화한 결과 삼성, 조선제분, 합동증권 등 당대 4대 재벌들이 하나씩 은행을 꿰찼다. 5.16 군사정부는 그때 국민들이 느꼈던 허탈감을 바탕으로 금산분리 원칙을 수립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이 고수되는 한 삼성, 현대, SK, GS는 은행업에 진출할 수 없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이유로 네이버와 두나무 등 IT 대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업에 진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을까? 그것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의 가장 큰 변수다.
IT 대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면, 삼성이나 현대도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협력업체에 대해 납품 대금을 지급할 때 어음이나 수표대신 자기 계열사 스테이블코인을 지급할 것이다. 그 코인은 어음이나 수표처럼 은행에 제시되어 이튿날 결제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지탱해 나가는 재벌별 생태계에서 계속 유통될 것이다. 지급수단의 춘추전국시대다. 비은행계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되었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이다.
물론 필자의 걱정이 기우일 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은행업이 아니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은행업은 수신과 여신의 결합 사업이다. 그중에서 여신만 담당하면, 은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신용카드회사와 대부업자가 그러한데, 그들의 사업은 여신전문업(여전업)일 뿐이다. 수신전문업(수전업)도 마찬가지다. 우체국은 예금을 받지만, 대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이 말하던 내로우 은행은 은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가할 때도 금산분리 원칙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소비임치 없는 스테이블코인…어떤 기준 제시해야
결국 은행이 무엇이냐는 아주 고전적이며 상식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21세기의 스테이블코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최종 질문이다.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을 대출로 소비한다. 그래서 예금계약을 법률적으로 소비임치(消費任置, 민법 제702조)라고 부른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는 소비하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을 매매할 뿐이다. 소비임치가 아닌 매매계약이 주된 업무라면, 은행이 아닌 증권사에 가깝다.
미국도 그런 점을 고민한다. 지니어스법 통과 이후 USDT와 USDC에게 은행 자격을 요구할 것인가, 증권사 자격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타협안에 따르면, 재무부, 연준, 통화감독청(OCC), 예금보험공사(FDIC) 등이 함께 발행 자격을 심사한다. 억지춘향에 가깝다.
지금 우리나라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점이다. 은행이 아닌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할 것인가? 어떤 명분과 기준을 제시할 것인가?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약해지는 가능성은 어떻게 대비할 것이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쉽게 전환되어 탈세, 자금세탁, 외화밀반출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포착하고, 단속할 것인가? 국회, 정부, 한국은행이 함께 고민해야 할 매우 중요한 숙제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변화는 분명하다. 외국으로 송금하는 일이 편리해지고,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세무와 외환당국의 감시를 벗어나기도 용이하다. 금융소비자가 누리는 편익이다. 하지만 거시경제적으로는 불확실성이 크다. 통화정책이 유효성이 약화되고, 외환관리의 어려움이 가중된다. 금산분리 원칙이라는 정치적 고려 사항도 있다. 국회의 입법과정에서는 이런 모든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야 한다. 그래야 이재명 정부가 바라는 ‘진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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