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AI 골든타임’...기술주권과 안보 위한 전략적 설계는 [스페셜리스트 뷰]
- 韓, AI 조직화 능력은 여전히 후발주자
AI 100조 시대...컨트롤 타워 중요성 확대
AI 정책, 무엇을 설계할 것인가 명확히 해야

여러 실패, 타산지석 삼아야
문제는 이제부터다. 인공지능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예산과 선언만으론 부족하다.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기준을 세우며,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설계와 전면적 제도화가 시급하다.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닌, 기술을 통해 국가 안보와 기술주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우리는 과거에도 여러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를 겪는 가운데 여러 실패 사례를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디지털 뉴딜' 정책의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는 2020년 이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데이터 댐, 클라우드 전환, 비대면 인프라 구축 등을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 민간 주도의 자율적 혁신 생태계 조성보다는 행정적 사업 위주로 흐르며 실질적 경제효과 창출에 미흡했다.
규제 개혁은 느렸고, 산업계와의 조율도 부족했다.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은 양은 많았으나 질적 관리와 연계 산업 육성이 따라주지 못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규모보다 '무엇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또 다른 사례로, 과거 정보보안 산업을 육성하려 했던 정부의 정책들도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이버 보안 위협이 현실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 보안 산업 육성 전략은 대부분 관 주도 중심으로 한정되었고, 민간 전문기업의 자생력 강화에는 실패했다.
당시 '보안인증제'와 같은 규범은 혁신을 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시장의 다양성을 위축시켰다. 이와 같은 과거의 실패사례들은 현재 추진하고자 하는 AI 정책에서 반드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더 이상 산업 생산성을 높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안보를 지키는 첨단 방패이자, 기술주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가 됐다.
미국은 정보기관, 국방부,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구글·오픈AI와 같은 민간 빅테크 기업이 삼각 편대를 구성해 국가 AI 전략을 집행한다. 이 과정에서 ‘AI 안전성 원칙’과 ‘인간 개입’(Human-in-the-Loop) 원칙을 제도화해, AI가 인간의 통제와 윤리적 경계 안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중국은 AI를 국방과 사회통제 전반에 깊숙이 이식해 ‘디지털 통제 국가’를 사실상 완성 단계로 끌어올렸다. 방대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 ‘디지털 실명제’를 강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 통합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함으로써 사회·경제 전 영역에서 AI의 전면적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AI법'(AI Act)을 제정해 위험도 기반의 규제 체계를 마련했다. AI의 윤리성, 투명성, 설명 가능성을 법률로 강제하는 세계 최초의 포괄적 입법으로, 단순한 기술 관리가 아닌 가치·인권 기반의 AI 거버넌스를 구현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민관 합동의 AI 전략회의를 통해 초거대 AI 모델 개발과 글로벌 표준 설정 참여를 병행하며,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자금·세제 지원 패키지를 별도로 마련했다.
이러한 정책은 기술 자립과 동시에 국제 무대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네이션’이라는 별명답게, AI를 국가 생존전략의 최전선에 배치하고 있다. 국방부, 모사드 등 정보기관, 그리고 방산·사이버 보안 분야 스타트업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국방·산업 일체형 AI 생태계를 운영한다.
특히 실전 환경에서 검증된 자율무기·드론·감시분석 AI 기술을 민간과 공유하는 '이중용도(Dual-Use) 전략’을 통해, 군사기술을 상업화하고 동시에 민간기술을 국방에 신속 반영한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와 통신 인프라, 뛰어난 AI 인재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략으로서 AI를 조직화하는 능력에서는 아직 후발주자다.
각자도생 AI...정부 역할 커져
AI 스타트업은 민간에서 각자도생하고 있는 상황이고, 정부 연구·개발(R&D)는 부처별로 분산돼 있으며,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산업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새로 취임한 인공지능 미래기획수석의 역할은 결코 상징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술은 민간에 있고, 권한은 정부에 있으며, 리스크는 결국 국가가 짊어져야 한다. 이 세가지 축을 아우르고 전략적으로 결집시킬 컨트롤 타워로서 대통령실이 제 역할을 하느냐에 향후 10년의 기술 주권이 달려 있다.
최근에 국가대표 AI 기업으로 5대 AI 파운데이션 모델 정예팀이 확정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임에는 분명하다. ▲옴니 파운데이션 모델 ▲글로벌 프런티어 파운데이션 모델 ▲트랜스포머 기반 초거대 모델 ▲멀티모달 생성용 파운데이션 모델 ▲프런티어 AI 모델 등 미국·중국 등에 맞설 수 있는 국가 AI 기술 내재화를 위한 핵심사업이다.
그러나, 이 구상이 성공하려면 정치·행정적 간섭의 최소화, 성과중심의 관리, 글로벌 벤치 마크 등 인공지능 미래기획수석의 역할이 중요하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알고리즘과 컴퓨팅 파워에 더해 데이터의 양과 질이 AI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데이터의 대부분은 개인정보, 기업 기밀, 국가 기반시설 정보 등 민감한 성격을 띠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사이버보안에 있어선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공공기관의 클라우드 전환은 보안보다 속도가 우선시되고 있으며, 민간 플랫폼의 데이터 활용 기준도 제각각이다. 이 상황에서 AI 활용이 보다 확대된다면, 국가 정보망 전체가 해킹·유출·오남용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유럽은 유럽 일반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통해 데이터 주권을 명문화하고 있고, 미국은 ‘국가 AI 전략’의 핵심 축으로 데이터 보호를 설정했다.
한국도 이제는 기술 개발 단계를 넘어, 데이터 보호와 활용을 동시에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AI 데이터 주권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 미래기획수석실은 민간 클라우드 기업, 보안 기술사, 공공기관을 포함한 관련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민간의 민첩함과 정부의 권한을 함께 묶어내야 한다.
기술은 혁신이지만, 보안은 생존의 문제다. 기술 발전의 이면에 있는 위험 요소를 관리하지 못하면, 미래 산업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아울러, AI는 국방의 패러다임도 바꾸고 있다. 드론, 지상·해상 국방로봇, 지능형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등은 전장에서 사람을 대체하거나 보조하고 작전 결정을 지원하는 핵심 전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AI를 활용한 작전지휘결심의 속도는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수단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통제권은 반드시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미국은 AI를 국방 분야에 도입하되, '인간 통제권 유지'(Human-in-the-Loop) 원칙을 엄격히 고수한다. 어떤 경우에도 AI의 판단이 인간의 결정을 대체해서는 안되며, 인간이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기술이 통제 없는 속도로 확장될 경우, 터미네이터와 같은 자율살상무기(LAWS) 등의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국방 AI를 본격 운용하기 이전 단계에 있지만, 바로 지금이야말로 윤리·법적 기준을 설계할 최적의 시점이다. 인공지능 수석실은 국방부·과기정통부·인권위와 협력해, ‘군사 AI 윤리 원칙’과 운용 가이드라인 등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기술은 가속되지만, 윤리와 통제는 속도가 늦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AI는 국경 없는 기술이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을 개발해도, 국제 사회가 인정하는 윤리와 규범을 선도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난다. 특히 AI는 알고리즘 편향, 프라이버시 침해, 감시 도구화 등 부작용이 빠르게 드러나고 있다.
유럽은 AI법(AI Act)을 제정했고, 미국은 AI 안전성 검토와 기술 기준을 글로벌 기업과 함께 수립 중이다. 반면 한국은 아직 기술은 뛰어나지만 글로벌 규범 설정 과정에선 주변부에 머물고 있다.
이제 우리도 안보의 관점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국형 AI 윤리 기준과 기술 가이드라인을 정립하고, 이를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글로벌 규범 설정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핵 보유국과 미보유국의 레짐으로 나뉘는 것처럼, AI의 글로벌 규범 설정 과정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은 미래 우리 안보에 있어서 그 같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AI는 국민 생활과 직결된 영역에서도 이미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금융, 의료, 교육, 행정 등 일상 전반에 AI 서비스가 접목되면서, ‘편의’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알고리즘이 국민 개개인의 삶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따라서 AI가 생성하는 결정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며, 시민의 기본권을 어디까지 보장하는지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AI 책임소재와 피해구제 방안 마련, 알고리즘 설명 가능성과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 AI 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기술의 진보는 사람 중심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프라와 인재를 갖췄다. 하지만 AI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전략의 문제이자, 통제의 문제이며, 결국 국가 안보와 주권의 문제다. 기술은 쓰는 사람과 제도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무기가 될 수도,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의 100조원 규모의 AI 분야 투자, 그리고 인공지능 미래기획수석의 신설은 이 시대 흐름에 대한 대응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이 단지 ‘신기술을 챙기는 기회와 자리’로 그친다면 오히려 책임만 커지고 성과는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전략, 민관이 함께 책임지는 체계가 필요하다. 민간 기업의 창의성과 속도, 정부의 규제력과 책임성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대한민국 AI 정책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기술은 있지만 주권은 없는 ‘디지털 종속국’이 아니라 미래를 선도하는 ‘디지털 선도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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