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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단독] 롯데이노베이트, 육아휴직자 진급 대상서 사실상 제외… “이래서 아이 낳겠나”

IT 일반

롯데그룹의 IT 계열사 롯데이노베이트가 육아휴직자를 진급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하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 김경엽 대표 체제 이후 처음 도입한 승진 제도에 앞날이 막힌 복직자들은 “회사가 저출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아이 낳고 왔더니 “진급 대상 아냐”업계에 따르면 롯데이노베이트는 올해 두 차례 직원 대상 설명회를 열어 GL(레벨 성장) 인증 절차 중 하나인 ‘셀프 노미네이션’ 도입을 알렸다.롯데이노베이트가 도입한 GL 인증 제도는 기존 연공서열 중심의 문화에서 탈피해 직무 기반의 수평적인 환경을 정착하고 직무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골자다. 이에 주요 업무와 프로젝트 수행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자기 추천서(셀프 노미네이션)를 작성해 올리면 평가와 면접을 거쳐 상위 레벨로 올라갈 수 있는지 평가받는다.셀프 노미네이션 접수는 지난 21일 마감했으며 11월 동료·보임자 리뷰와 12월 AI 영상 면접이 이어진다. 이후 내년 1월 경영진 및 HR 부서의 심의가 끝나면 2월 결과를 통보받는다. ▲직무 전문성 ▲문제 해결력 ▲성과 영향력이 핵심 심사 기준이며, 직무 가치와 성과가 임금 인상에 반영된다.문제는 GL 인증 조건에 붙은 ‘최근 2개년(2023~2024년 또는 2024~2025년(상반기)) 평가’다. 이전 진급 제도는 6년 재직 시 책임 진급 자격을 부여했는데, 이번에 직전 2개년 고과 AV(평균) 이상이라는 조건이 붙으면서 최근 복직해 해당 기간 평가 점수가 없는 육아휴직자들이 무더기로 대상에서 빠졌다.1년이 조금 넘게 육아휴직 사용 후 연초에 복귀한 롯데이노베이트 한 직원은 “계도 기간도 없이 복직하고 나서 곧장 통보를 받았다”며 “미리 알았더라면 감안했겠지만 회사 정책에 맞춰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상황도 쉽게 납득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이 직원은 또 “이전 인사팀은 휴직 전 평가로 진급 신청이 가능하다고 공지했었는데 이마저도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꿨다”며 “회사가 가족 친화 기업을 지향한다고는 하는데 이래서 아이를 낳겠나”라고 토로했다.같은 처지에 놓인 직원들은 고용노동부와 노무사 등에 문의도 했고, 6개월가량 육아휴직을 쓴 남직원이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도 확인됐다.롯데이노베이트는 올해 1월과 9월 두 차례 전 직원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바뀐 승진 제도를 안내했다. 작년 11월 지휘봉을 잡은 김경엽 대표의 급작스러운 제도 변경으로 직원들이 혼란에 빠진 셈이다.이와 관련해 회사 측은 ‘육아휴직자를 오히려 배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셀프 노미네이션의 2개년 평가를 육아휴직자에 한해 복귀 후 1개년으로 축소해 형평성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다만 휴직 전 업무 평가를 반영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직무 중심 평가 체계에 부합하지 않아 반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남녀 임금 격차 불가피동종 업계 톱인 삼성SDS는 상황이 다르다. 10개년 업무 평가의 평균을 점수화하는데, 육아휴직을 사용한 기간도 진급 대상에 포함한다. 다만 평가가 없는 휴직 기간은 계산에서 제외한다. 육아휴직을 1년 썼다면, 9개년의 평균으로 승진 심사를 받는 방식이다. 한 삼성SDS 직원은 “육아휴직자에 대한 특혜도, 불이익도 없다”고 말했다.롯데이노베이트의 새로운 승진 제도가 이대로 자리를 잡으면 회사 내 남녀 임금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2024년 육아휴직 사용 대상 여직원 30명 중 29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모든 대상 여직원이 육아휴직을 활용했다.이에 반해 지난해 남직원이 육아휴직을 쓴 사례는 대상자 49명 중 25명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회사의 책임급 이상 여성 관리자 비율이 2022년 18.9%에서 2023년 20.2%, 2024년 21.0%로 올랐는데, 육아휴직이 불가피한 여직원들이 진급 대상에서 대거 빠지면 이런 추세가 고꾸라지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그간 롯데이노베이트는 그룹의 가족 친화 경영 기조에 맞춰 여러 복리후생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임신기 근무 시간을 최대 2시간 단축하는 제도를 마련했고, 최대 2년의 육아휴직을 보장하면서 남직원도 1개월 의무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다자녀 가구의 차량 렌털은 물론 난임 치료·시술도 뒷받침했다.2013년부터는 여성가족부의 ‘가족 친화 기업’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가족 친화 사회 조성을 촉진하기 위해 법령에 따라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승진 소요 기간서 빠지는 육아휴직이런 노력도 육아휴직 기간을 근속 연수로 인정하지 않는 승진 제도로 인해 희석되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의 실태 조사 결과 육아휴직 기간을 승진 소요 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사업체의 비중은 2021년 38.9%에서 2023년 46.0%로 증가세를 띄었다.‘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사업주가 육아휴직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못하도록 하고, 육아휴직 기간을 근속 기간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사업장마다 승진 소요 연수와 관련한 다양한 인사 관행이 있을 수 있어 일률적으로 법 위반으로 단정 짓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이에 국회는 육아휴직 사용자의 성비 및 근속 현황 등을 포함하는 공시제 도입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성평등임금공시제5법’은 사업주가 제출하는 남녀 임금 공시 항목에 성별 승진 관련 현황과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의 성비 및 성별 근속 현황 등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투명한 공시로 기업들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이수진 의원은 “직종·직무·직급·근속 연수·육아휴직 사용 근로자 등 성별에 따른 공시가 기관과 기업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고,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며 “성평등한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5.10.29 11:26

4분 소요
신한은행 가계대출 확대 한계 속…글로벌 진출로 돌파구

은행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취임 이후 시중은행 중 순이익을 최고로 끌어올리며 재무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로 국내 영업 확장이 쉽지 않은 국면을 맞았다. 이 가운데 해외법인들의 호실적이 수익 기반을 뒷받침하며, 외형 확장의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다. 강력한 정부 규제…국내 이자수익 한계 뚜렷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15일 수도권·규제지역에서 15억원이 넘는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의 한도를 축소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지난 10월 16일부터 15억원 초과 25억원 이하 주택은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으로 주담대 한도가 줄어들었다.이외에도 전세대출의 DSR 적용, 스트레스 DSR 상향(1.5%→3.0%), 은행에 적용하는 주담대 위험가중치(RWA) 하한 상향(15%→20%) 등의 규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이처럼 정부가 한층 강력한 부동산‧대출 규제에 나서면서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는 둔화될 전망이다. 내년에도 가계대출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 신한은행 역시 가계대출 확대로 이자수익을 늘리기는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신한은행, 글로벌 독주…美·中·日 법인 호실적신한은행은 해외법인에서 눈에 띄는 실적을 내고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해외법인에서 315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4% 증가한 실적이다. 같은 기간 다른 은행들의 해외법인 순이익을 살펴보면 ▲국민은행 727억원 ▲하나은행 449억원 ▲우리은행 325억원 등이다. 국내 주요은행 가운데 신한은행의 글로벌 실적이 압도적이다. 특히 중국·미국·일본 등 3개 국가 법인에서 실적이 개선되면서 전체 해외법인 실적 향상에 기여했다. 올해 상반기 중국 법인은 156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해 전년 대비 610%로 대폭 개선됐다. 2024년부터 추진해 온 비이자이익 확대 전략이 실적 성장에 주효했다.미국 법인의 상반기 순이익은 105억원으로 전년 대비 흑자 전환했다. 올해 3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제재 해제 이후, 5월 자본금 5000만 달러 증자를 통해 경영 정상화에 나선 결과다. 과거 신한은행 아메리카는 2017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FDIC의 제재를 받았다.일본 법인의 상반기 순이익은 8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6% 증가했다. 금리인상기 선제적 대응으로 변동금리 대출 중심 자산 확대, 조달 다변화, 안정적 대출 성장과 수익성 관리로 이자이익이 늘어난 영향이다. 반면 캐나다와 유럽 법인의 순익은 뒷걸음질 쳤다. 올해 상반기 캐나다법인 순이익은 13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유럽은 33억원으로 전년 대비 57% 줄었다. 추후 신한은행은 현지에 마련된 법인을 중심으로, 자본 효율성 중심의 차별화된 영업전략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25년 해외법인의 신한은행 이익기여도를 2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외교·정책 변경에 따라 금융시장 변동성이 지속될 수 있어 대응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국외점포의 전사적 자산·부채관리(ALM) 체계를 점검하고 있으며, 시장 변동에 맞춰 최적 자산·부채 포트폴리오를 운영할 수 있도록 유연한 관리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확대 지속…내부통제 강화는 과제정 행장의 지휘 아래 신한은행의 해외사업 확대 기조도 한층 강화됐다. 신규 법인 설립뿐 아니라 해외 기업 지분 투자까지 외연 확장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신한은행은 2024년 4월 인도 비은행 금융사이자 현지 학자금대출 1위 기업인 크레딜라(Credila)의 지분 10.93%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인도 시장 진출 계획을 공식화했다.당시 정 행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금융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통적 금융회사는 물론 디지털 기업 등 다양한 현지 기업과 협업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글로벌 1등 은행’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이어 신한은행은 9월 24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뉴욕 라이프 타워에서 현지법인 ‘멕시코신한은행’의 확장이전 기념식을 열었다. 최근 멕시코는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른 글로벌 기업 생산기지 이전 수혜국으로 부상하며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에 멕시코신한은행은 본점 확장이전을 계기로 한국계 기업의 현지 진출과 성장을 지원하고, 생산적 금융을 강화해 현지 진출 글로벌 기업에 폭넓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다만 해외에서의 외연 확장과 함께 내부통제 관리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베트남신한은행에서 발생한 직원 횡령 사고는 해외법인의 내부통제 중요성을 다시 일깨웠다. 신한은행은 지난 8월 베트남 현지법인에서 37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으며, 횡령 기간은 2023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2년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정 행장 또한 지난해 7월 ‘글로벌 콘퍼런스 위크’에서 “신한 글로벌이 흔들림 없는 성장을 이어가며, 세계 무대에서 오래도록 사랑 받기 위해서는 고객의 ‘굳건한 신뢰’가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 한다”며 “해외 현지 규정을 빈틈없이 준수하고 주변을 세심하게 점검하는 내부통제 문화를 공고히 해 고객과의 신뢰를 쌓는 일에 더욱 집중하자”고 강조했다.

2025.10.27 14:00

4분 소요
‘안정과 혁신 동시에’…신한은행장 ‘리딩뱅크’ 수성이 숙제

은행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안정과 혁신’을 동시에 이끄는 리더로 평가받는다. 전임 행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난 뒤 갑작스럽게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혼란기 속에서도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취임 직후부터 리딩뱅크 수성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며, 빠른 시간 안에 리더십을 입증했다.재무성과 : ‘리딩뱅크’ 상반기 순익 2조2668억원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2025년 상반기 2조2668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전년 동기 대비 10.4% 성장했다. 이로써 KB국민은행을 제치고 리딩뱅크 자리를 지켜냈다. 앞서 정상혁 행장이 취임한 지 1년 만인 2024년, 신한은행은 KB국민은행을 추월하며 2018년 이후 6년 만에 리딩뱅크 왕좌를 탈환했다.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금리 인하 기조와 가계대출 규제 등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리 하락기에도 마진 방어에 성공하며 이자이익을 지켰고, 수수료이익과 유가증권 관련 이익이 늘어나 전체 실적을 견인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상반기 말 기준 1.55%를 유지했다.다만 하반기 성과가 리딩뱅크 경쟁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상반기 기준으로 신한·KB국민·하나은행 등 상위 3개 은행의 순이익 격차는 크지 않다. 신한은행이 2조2668억원으로 선두를 지킨 가운데, KB국민은행(2조1876억원)과 하나은행(2조851억원)이 뒤를 이어 하반기 실적에 따라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전략 : ‘슈퍼앱’ 중심의 디지털 전환 가속정 행장이 주목하는 키워드는 ‘디지털 전환’이다. 신한금융그룹은 2023년 말 계열사 통합 슈퍼앱 ‘슈퍼 SOL’을 선보였으며, 신한은행도 이에 발맞춰 ‘신한 슈퍼SOL통장’을 출시하며 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이 외에도 신한은행은 배달앱 ‘땡겨요’와 학사관리 앱 ‘헤이영 캠퍼스’ 등 비금융 앱을 통해서도 디지털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땡겨요’는 2025년 7월 기준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238만 명에 달하며, 신한의 대표 비금융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정 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앞으로 금융 플랫폼 확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땡겨요’와 ‘헤이영캠퍼스’ 등 내부 플랫폼의 솔루션 차별화를 통해 고객 접점을 강화하고 외부 플랫폼에 신한금융 서비스를 탑재하는 등 신규고객 유입 창구 다변화에 힘쓰겠다”고 말했다.지난 5월에는 차세대 디지털뱅킹 시스템 ‘더 넥스트’(THE NEXT) 구축을 완료했다. 이 프로젝트는 소비자가 채널과 상관없이 일관된 서비스를 경험하도록 ▲영업점 ▲신한 쏠(SOL) 앱 ▲고객상담센터 등 모든 채널의 데이터와 마케팅 정보 등을 통합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됐다. 프로젝트 추진 결과 ▲신한 SOL 응답속도 6배 향상 ▲영업점 창구 업무 처리 속도 개선 ▲고객 개인 맞춤 서비스 제공 기반 마련 ▲디지털 전용 뱅킹시스템 구축 등의 성과가 확인됐다. 정 행장이 강조해온 ‘디지털 전환’에 한 발 더 다가선 셈이다.혁신 : ‘AI 내재화’로 업무 전반 혁신정 행장은 디지털 전환을 넘어 ‘AI 내재화’를 통한 근본적인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챗봇이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영업·리스크·상담·기획 등 전사 업무 전반에 통합하는 것이 목표다.이를 위해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서소문에 AI 기술을 적용한 미래형 영업점 ‘AI 브랜치’를 열었다. 아직 완전한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미완성의 AI 은행원을 고객에게 직접 선보이며 ‘정면 돌파’에 나선 것이다. 신한은행 AI 브랜치는 다양한 디지털금융 서비스에 AI 기술을 결합해 구현한 미래형 영업점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또한 올해 5월 개설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지점에는 ‘AI 창구’가 마련됐다. 입출금 고객이 많은 지점의 특성을 반영해 ▲디지털데스크 ▲AI 창구 ▲환전·현금 자동입출금기(ATM)를 유기적으로 연계했다. 또한 AI 전담 컨시어지가 처음 방문한 고객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신한은행은 임은택 디지털혁신단 단장(상무)을 중심으로 AI 전담 조직도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혁신단은 AI 유닛·AI연구소·데이터기획 유닛 등으로 꾸려져 있다. 이와 함께 직원 대상으로 AI 관련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해 내부 인재 교육에도 힘쓴다. 정 행장은 지난 7월 경기 용인 블루캠퍼스에서 열린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도 AI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외부 연사를 초청해 ‘AI 에이전트 시대의 금융의 모습’을 주제로 강연을 열고, AI 내재화 전략의 추진 상황을 임직원들과 공유했다.당시 정 행장은 “신기술의 금융업 침투가 빨라지고 고객 유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며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활용법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외 평판 및 소통 : ‘현장형 리더’이자 ‘열린 소통’ 눈길정 행장은 1990년 신한은행에 입행해 기업금융·리테일·디지털 부문을 두루 거친 ‘정통 신한맨’이다. 30년 넘게 한 조직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리더십은 신한은행의 안정적 조직문화와 지속 성장의 기반으로 평가된다.이후 정 행장은 2024년 말 연임에 성공했다. 특히 첫 임기 2년 종료 후 1년 단위로 연장하던 기존 ‘2+1년’ 관행을 깨고, 2년의 추가 임기를 부여받으며 지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입증했다.그는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7월 서울 중구 본점에서 고객 간담회를 열고, 신한은행 앱 ‘신한쏠(SOL)뱅크’를 활발히 이용하는 고객과 자문위원 등 6명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정 행장은 고객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누며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고객들은 ▲가계여신 정보에 대한 알 권리 보장 ▲모바일을 통한 각종 증명서 발급 서비스 확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알림 서비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맞춤형 상품 제공 등을 요청했다.정 행장은 “고객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그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며 “모든 일의 출발점을 고객으로 삼고, 경계를 넘는 협업을 통해 고객 삶의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2025.10.27 13:00

5분 소요
IPO 준비하는 창업가…미국에서 홀로 ‘보부상’ 자처한 이유는 [이코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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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2번 출구 계단 옆 통로로 들어가면 강의장이 있을 것이다. 그곳이 화상 인터뷰 장소다.”미국 지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와의 인터뷰는 한국 본사에서 진행하고 싶었다. 회사 관계자가 본지 기자에게 알려준 사무실 위치다. 서울 강남역 지하에 있는 사무실은 교육장으로도 쓰이는데, 회의를 위해 잠깐 왔다는 본부장과 직원 2명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또 다른 강연장 겸 사무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100% 원격근무 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는 여전히 원격근무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 있는 110여 명의 임직원 중 서울 지역에 사는 임직원이 45%, 경기 지역 임직원이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 일하는 임직원이 15% 정도이고, 심지어 제주도에서 일하는 직원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5년 동안 원격근무를 고집하면서 소통의 해법을 찾았고, 업무 내용은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탄탄하게 운영되는 원격근무의 힘을 믿고 그는 “당분간 미국은 혼자 책임지겠다”며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보부상’처럼 미국 전역을 돌고 있다. 주인공은 임성수 그렙(grepp) 대표다. 임 대표는 "원격 근무 제도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고, 이제는 충분히 효율적으로 일하며 원활히 소통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그렙은 임 대표가 2015년 창업한 코들리와 2014년 이확영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창업한 8쿠르즈를 모태로 두 회사가 합병해서 탄생했다. 개발자 역량 평가 온라인 테스트 서비스 ‘프로그래머스’와 인공지능(AI) 기반 부정행위 방지 온라인 서비스 ‘모니토’를 양대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프로그래머스는 2만명 이상이 동시에 테스트를 해도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라인·토스 등 1300여 개 국내 IT 기업과 스타트업이 활용하고 있다. 2025년 9월 현재 누적 78만 명 이상의 개발자가 프로그래머스를 활용해 온라인 코딩 테스트를 치렀다. 모니토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온라인 시험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부정행위 방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속도로 확대됐다. 국가공인자격증 운영 기관을 비롯한 600개 이상의 국내외 기업 및 기관에서 모니토를 활용하고 있다. 매년 3000건 이상의 온라인 시험에서 모니토가 활용되면서 그렙의 인지도와 매출이 급상승하고 있다. 임 대표는 “팬데믹 시절 오프라인 시험이 불가능해지자, 밤을 새워가며 2개월 만에 모니토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면서 “남들은 위기였을 때 우리는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면서 웃었다.임 대표는 개발자 출신의 교수로 유명하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과에서 학·석·박사를 마치고 스타트업에서 CTO를 지내다 2004년부터 국민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일했다. 2000년 스타트업에서 CTO로 일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경험한 바 있다. 임 대표는 “처음 경험한 스타트업이 잘되지 않았지만, 이때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의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학생들이 꿈이 부족하고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2015년 교수직을 휴직하고 창업을 결심했고 처음부터 개발자들을 돕는 일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대학과 학과를 나온 이확영 CTO를 만나 고민을 털어놨고 그 자리에서 바로 각자의 회사를 합병해 힘을 합치자고 의기투합했다. 이 CTO는 카카오톡 개발자 출신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렙은 탄생했다.프로그래머스로 시작해 모니토로 이어지면서 그렙의 성장세는 가팔랐다. 개발자 전성시대에 프로그래머스는 각광을 받았고, 오프라인 활동이 멈춘 시기에 온라인 테스트 시장에 필요한 부정 방지 서비스 모니토로 다시 한번 날갯짓을 했다. 한때 그렙은 170여명의 임직원이 일할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 시장 도전을 위해 현지 법인에 5명 이상을 채용하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그에게 창업가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 계기였다. 2023년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얼어붙었다. 2021년 10월 43억 원의 시리즈 A 라운드 투자 이후 후속 투자가 어려워졌다. 기업들에서 개발자 채용이 중단되면서 매출이 급전직하했다. 성사 단계에 있던 투자 유치도 무산됐다. 살아남으려면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70여 명의 임직원을 구조조정해야 했고, 원격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자를 만나려면 자택으로 직접 찾아가야만 했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다. 임 대표는 “이때의 경험이 창업자로서 실수를 반성하게 된 계기였지만,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면서 회사 조직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면서 “구조조정 바로 다음 달인 2023년 5월부터 회사가 다시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AI로 시험의 개념을 바꾼다"… IPO 자금으로 기술 초격차 확보"당분간 미국은 저 혼자 책임지겠다." 임 대표가 직원들에게 이렇게 선언한 이유는 조직의 효율화를 위해서다. 모든 것을 걸고 직접 보부상이 되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고 내년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계획할 정도로 순항하고 있다. 목표 기업가치는 현재 기업가치의 3배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부상 전략이 통한 것이다. 그는 직접 미국 전역을 발로 뛰며 AI 기반 온라인 시험 감독 솔루션 '모니토(Monito)'를 시연했고, 마침내 캘리포니아 소재 2개 대학과의 공급 계약을 확정하는 성과를 냈다. 그는 "내년 학기부터 그렙의 솔루션이 미국 대학의 온라인 학위 과정에 적용될 것"이라며 "이를 시작으로 미국 내 수많은 중소 규모 대학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이러한 안정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그렙은 글로벌 시험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국제 공인 영어 시험인 iTEP, G-TELP 등과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특히 iTEP의 경우 내년부터 전 세계 시험에 모니토 시스템을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임 대표는 "미국 시장에서 현지 고객들은 의사결정권자와 직접 소통하길 원한다"며 "솔루션과 시장을 가장 잘 아는 제가 직접 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현지 중심 경영의 이유를 설명했다.그렙은 IPO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AI 기술 고도화에 투입, 시장 내 초격차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내년까지 모든 서비스를 AI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프로그래머스는 AI가 응시자의 역량에 맞춰 실시간으로 다음 문제를 출제하는 '개인화된 적응형 평가’(어댑티브 러닝·Adaptive Learning)' 방식으로 진화한다. 임 대표는 "수년간 쌓아온 방대한 시험 영상 데이터를 익명화해 AI 모델 훈련에 활용하고 있다"며 "이는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독점적 강점"이라고 자신했다.

2025.10.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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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빠른 개인이 이긴다'...송길영 작가가 말하는 새로운 생존 공식 [이코노 인터뷰]

경제일반

“거대한 말은 결국 죽습니다(大馬必死). 무겁고 느리게 움직이는 조직은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합니다. 주주들은 이제 ‘그래서 직원 수가 몇 명입니까?’라고 묻고, 인당 시가총액이 기업 가치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효율이 무게를 대신하는 시대, 우리는 이미 ‘경량문명’에 들어섰습니다”송길영 작가는 와의 인터뷰에서 “거대함이 곧 안전이던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작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힘이 세상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축적과 확장을 통해 성장해온 산업 문명이 기술의 속도 앞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송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경량문명(輕量文明)’이라 정의했다. 기술이 개인의 역량을 증폭시키며, 규모보다 속도와 효율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질서가 나타났다는 의미다. 그는 “조직의 무게보다 개인의 속도가 경쟁력을 결정짓는다”며 “문명은 이미 가벼워지고 있다”고 강조했다.최근 AI의 확산은 기업의 생존 공식을 바꾸고 있다. 송 작가는 “지난해까지 기업들이 ‘AI를 써도 될까’를 고민했다면, 올해는 ‘경쟁사가 하면 끝장’이라는 공포감에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효율이 무게를 대신하면서, 많은 인력을 고용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실제로 기업들은 ‘더 많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에서도 매출 확대보다 비용 절감이 기업가치를 좌우하고, 의사결정 속도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송 작가는 이를 “효율이 곧 생존과 직결되는 시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작고 빠른 개인이 이긴다…한 명이 한 팀 역할”특히 송 작가는 조직보다 개인이 더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가 열렸다고 봤다. 그는 “개인의 의사결정 속도는 조직이 절대 따라올 수 없다”며 “역량이 같다면 개인이 무거운 조직보다 훨씬 빠르다”고 설명했다.이러한 변화 속에서 개인과 조직의 관계는 전례 없이 느슨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직함이 곧 정체성이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조직의 부속품’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기술이 개인에게 도구와 판단력을 동시에 쥐여주면서, 더 이상 거대한 조직의 보호막 없이도 생존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실제로 AI는 개인을 하나의 ‘소형 조직’으로 만들고 있다. 송 작가는 “AI를 통해 개인이 증강되면 더 이상 큰 조직에 속하지 않아도 경쟁할 수 있다”며 “작고 빠르게 움직이는 개인이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의 변화는 산업 전반에서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과거 대행사나 외주에 맡기던 업무를 내부에서 AI로 직접 처리하기 시작했고, 콘텐츠와 영화 산업에서는 수백억원이 들던 특수효과나 편집을 한 사람이 완성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생산의 단위가 작아지고 협업의 방식이 경량화되면서 ‘조직’이라는 울타리의 의미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모습이다.협력의 방식도 바뀌고 있다. 더 이상 한 공간에 모여 일하지 않아도 AI를 매개로 시공간을 초월한 협업이 가능해졌다. 송 작가는 “과거엔 사람을 모아 조직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필요할 때만 연결되는 느슨한 네트워크가 새로운 협력의 형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일의 경계를 허물면서, 노동이 더 빠르고 가볍게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조직은 더 이상 개인의 성장을 책임지지 않는다. 송 작가는 “기업은 이제 인재를 길러내기보다 이미 완성된 사람만을 찾고 있다”며 “‘경력 같은 신입’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그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인은 스스로 깊어져야 한다”며 “특정 도메인을 정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전문가가 되어야 살아남는다”고 조언했다.“배운 것 잊고 새 질서 수용하는 것이 생존의 조건”그렇다면 개인은 이 거대한 문명 전환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야 할까. 송 작가는 무엇보다 ‘관성의 저주’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경험을 쌓아온 분들일수록 배운 것을 잊고 빠르게 새 질서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적응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익숙한 관행과 구조가 사라지는 현실 앞에서,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규칙을 학습하는 유연함이 생존의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개인의 끊임없는 ‘자기 증강’ 노력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송 작가는 “개인은 이제 조직에 기대 성장할 수 없다”며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를 정하고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수월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송길영 작가는 지난 3년간 ‘시대예보’ 3부작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추적해왔다. 그는 사회적 규범이 해체된 이후 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탐색했다. 이어 기술이 인간의 역량을 증폭시키며 새로운 질서와 역할을 만들어가는 흐름을 포착했다. 이러한 변화를 그는 ‘핵개인’에서 ‘호명사회’, 그리고 ‘경량문명’으로 이어지는 세 단계로 정리했다.특히 그는 이번 작업을 자신의 ‘성장기’로 표현했다. “처음에는 주체적 개인,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핵개인’이라 정의했고,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관계망을 ‘호명사회’라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경량문명’에서는 개인과 조직의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는 과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2025.10.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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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 배호 대표 "보안 합성데이터 솔루션으로 자국민 보호 최전선 역할"

CEO

인공지능(AI)이 가속화될수록 세계적으로 더 주목받는 유망 기업이 있다. 큐빅(Cubig)은 ‘Cure Big Data’의 약자를 사명으로 할 만큼 정체성이 뚜렷하다. 빅 데이터를 정제·치유하는 작업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의 효율성을 높이는 AI 혁신 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AI 시대’에서 개인정보 노출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면 큐빅의 진가는 더욱 빛날 전망이다. ‘바이러스 백신’처럼 개인정보 보호 최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배호 큐빅 대표는 주말 미국에서 열린 ‘스타트업 월드컵’ 참석차 출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스타트업 월드컵 2025’ 서울 본선에서 최종 우승팀으로 선정된 큐빅은 페가수스 테크 벤처스가 후원하는 글로벌 스타트업 피칭(기업 설명)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배 대표는 “총상금이 100만 달러일 정도로 굉장히 큰 스타트업 대회에 선발돼 피칭과 IR(투자설명회)을 진행하고 왔다”며 “2주 뒤에는 이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하는 EWC라는 월드컵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큐빅은 11월 초 사우디에서 열리는 ‘EWC 2025’에 한국 대표로 선정됐다. 이 행사는 글로벌 100개 안팎의 기업이 출전해 500만 달러의 총상금 두고 경쟁을 펼치는 스타트업들의 또 다른 월드컵이다. 큐빅은 세계적인 유망 기업으로 잠재력을 뽐내고 있다. 배 대표는 서울대에서 인공지능보안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곧바로 이화여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로 채용됐다. 지금은 이화여대에서 인공지능대학 부학장, 사이버보안 학과장을 맡을 정도로 보안분야에서 차세대 리더로 부각되고 있다. AI 보안과 시큐리티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서베이 논문을 작성했던 그는 함께 논문 작업을 했던 팀과 함께 지난 2021년 큐빅을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배 대표는 “굉장히 좋은 기술들을 가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많지만 이 기술을 상용화해서 서비스하는 부분은 또 다른 이야기”라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어떻게 보면 코어 AI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성장을 해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런 게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조금이라도 젊고, 에너지가 있을 때 ‘한 번은 시도를 해보자’라는 마음이 좀 컸다”며 창업 계기를 설명했다. 보안 AI 분야인 만큼 창업 계기부터 국가 발전을 생각할 정도로 남달랐다. 큐빅이 보유하고 있는 보안 합성데이터 솔루션은 기술적으로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AI 플랫폼에 ‘바이러스 백신’이나 방어벽 하나를 설치하는 것으로 쉽게 풀이할 수 있다.배 대표는 “원본 데이터를 외부 퍼블릭 LLM(거대언어모델)과 결합되거나 외부로 나가도 문제없게끔 변환할 수 있는 기술이 핵심”이라며 “일반 합성데이터가 아닌 보안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큐빅은 개인정보 노출을 독보적인 보안 기술로 막는 동시에 AI 플랫폼의 생성이 더욱 활발하게 이어질 수 있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생성형 AI 모델에 ‘보안’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생성이 잘 안되도록 계속 방해한다. 그러면 유틸리티가 일반적으로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두 가지를 만족시키면서 데이터를 생성하는 게 기술력인 건데 그 부분에 있어서 아시아 최고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큐빅은 미국의 정보기술 연구 및 자문 기업인 가트너가 선정한 하이퍼 합성데이터(Hyper Synthetic Data) 분야의 글로벌 주요 기술 벤더다. 아시아기업으로서 유일하게 등재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금융·의료·공공·국방·글로벌 기업서 주목 큐빅은 AI 분야에서 세계 100대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하이퍼 합성데이터 기술 분야에서 국내에는 경쟁기업이 없다. 글로벌에서도 경쟁사가 손꼽히기 때문에 성장성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하이퍼 합성데이터는 단순한 생성형 데이터가 아닌 도메인 특화 시뮬레이션, AI 분석,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이 통합된 차세대 데이터 기술이다. 2028년까지 AI에 활용되는 데이터의 80%가 합성데이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이퍼 합성데이터가 AI 플랫폼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AI 검색엔진에서는 전체 가용 데이터 중 각종 규제와 개인 민감 정보 등을 이유로 12%만 활용되고 있다. 차등정보보호전문가인 배 대표는 “AI의 핵심은 데이터이고, 이 데이터에 대한 가치 그리고 이 데이터를 누군가 어떻게 제공하는지에 따라서 이제 AI 발전이 좌지우지된다고 보면 된다. 챗GPT의 경우 AI 성능이 굉장히 좋았던 이유는 인터넷에 있는 데이터를 무단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라며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포함돼 있어 지금의 AI 모델들은 약 12%밖에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큐빅이 가진 기술을 통해서는 아래에 잠재돼 있던 데이터를 끄집어낼 수 있다. 추후에 미래 산업에 꼭 필요한 데이터를 해상 위로 끄집어낼 수 있는 기술”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차등정보보호 기술은 개인정보 노출 없이 통계와 의료, AI 학습용 데이터 등을 생성·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역이다. 특히 큐빅이 보유한 하이퍼 합성데이터 기술은 원본 데이터 접근 없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 의료, 공공, 국방 등 고위험 산업군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각각의 기업과 기관의 특성에 맞는 민감 키워드나 정보들을 보안 처리한 데이터를 제공하기에 파트너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배 대표는 “삼성, CJ, 네이버클라우드 등의 기업들을 비롯해 강남구청, IBK기업은행 등 공공기관과 금융,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15개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법인 설립 등 매년 10배 성장 큐빅의 합성데이터 생성기술인 DTS(Data Transform System) 등은 해외에서 더 주목을 끈다. 이에 큐빅은 영국 법인 설립을 진행하는 등 유럽과 북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배 대표는 “지난해 10월 솔루션 프로그램을 론칭했는데 그동안 국내만 대응하는데도 굉장히 버거웠다. 이제 해외로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영국 법인을 설립하고 있고, 2개월 안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큐빅은 해외 VC(벤처캐피탈)를 포함해 국내외에서 약 90억원을 투자받으며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그는 “해외 VC들이 바라보는 지표는 국내와 조금 다르다. 국내는 매출 등의 부분을 더 중요시한다고 보면 해외는 일단 성장성과 시장 규모 같은 부분들을 좀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큐빅은 시장성을 바탕으로 매년 10배씩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큐빅은 대한민국 자국민의 데이터 보호의 ‘최전선’이라는 사명감이 있다. 배 대표는 “사실 페이스북이나 오픈 AI 등을 쓸 때 개인정보 정책을 아무도 신경 써서 보지 않는다. 플랫폼에 포스팅하고 쓰는 글들이나 개인정보들을 그냥 다 가져가 그들 회사의 AI 모델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며 “이런 부분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의 데이터를 최전선에서 조금은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이 크다”며 당찬 의지를 드러냈다.김두용 기자 k2young@edaily.co.kr

2025.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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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딜보다 충돌 관리”… 경주 APEC서 새 외교 실험 펼칠 美中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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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주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주 앉는다. 2019년 오사카 회담 이후 6년 만의 재회다. 그러나 이번 만남의 무게중심은 ‘새로운 무역협상’이 아니라 ‘관계의 안정화’에 있다. 양국이 더 이상 '합의'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미·중은 싸움을 멈추려는 게 아니라, 싸우는 법을 다시 짜고 있다.트럼프 낙관론 펼쳤지만… ‘통제 가능한 경쟁’ 원하는 미·중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환상적인 거래(fantastic deal)를 맺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백악관 내부의 계산은 훨씬 냉정하다. 미국은 대규모 합의나 관세 철회보다, 공급망 불안 완화와 시장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중국 역시 내수 둔화와 외자 유출 압박 속에서 정면충돌보다 관리 가능한 긴장 상태를 선호한다.이른바 ‘새 딜’의 가능성은 낮다. 대신 협상의 전선은 희토류·반도체·대두·펜타닐 등 전략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미국은 100%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며 맞섰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칩 리 연구원은 “희토류 수출 변동은 중국이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지렛대를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트럼프 행정부는 대응책을 마련하면서도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려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경주 회담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된다”며 “무역과 투자 구조 전반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새로운 수출 통제는 면밀히 평가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의 발언은 국내 정치용 퍼포먼스에 가깝다”는 냉소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의 낙관 메시지는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협상 준비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했다.브루킹스연구소의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차관보는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예측 불가능성을 무기로 하지만, 중국은 이미 그 패턴을 알고 있다”며 “결과보다 연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진단했다.“구조적 경쟁이지만 관리 가능”… 러드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킹”이 국면을 가장 정확히 짚은 인물이 케빈 러드 주미 호주대사다. 워싱턴 외교가의 대표적 중국통인 그는 최근 국제금융협회(IIF) 연례회의에서 “미·중 경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현실이지만, 여전히 관리 가능한 경쟁(Managed Competition)”이라고 말했다.그는 “양국이 완전한 탈동조(decoupling)로 가는 것은 아니며, 기술·안보 영역에서 위험 축소(de-risking)가 본격화됐다”고 덧붙였다.러드의 진단은 이번 회담의 성격을 압축한다. 싸움을 멈추지는 않되, 폭발을 피하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협상가로서의 복귀를, 시진핑은 체제 안정과 신뢰 회복을 노린다. 특히 시진핑은 최근 국유기업 중심의 통제 경제를 강화하면서도 과잉생산과 내수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중국은 경기 둔화를 상쇄하기 위해 수출 드라이브에 의존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태양광·배터리·전기차 분야의 과잉공급이 새로운 갈등을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경제 구조의 경직성이 높아질수록 시진핑에게는 ‘협상 공간’을 넓히기보다 ‘리스크 관리’가 절실해진다. 이번 회담의 의제는 무역을 넘어 반도체 공급망, 인공지능(AI) 규제, 기후 협력, 남중국해 긴장 완화 등으로 확장시키 수 있지만, 양국이 광범위한 의제에 합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번 회담은 협상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자리이며, 결과보다 대화의 지속 자체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두 정상이 마주 앉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안도할 것”이라며 “대화의 재개가 불확실성을 줄이는 경제적 완충 장치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협상의 불씨만 살아 있어도 공급망과 시장 불안이 일정 부분 진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결국 이번 회담의 의미는 ‘결론’보다 ‘지속 가능성’에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회담은 새로운 선언보다 위기 관리의 리허설이 될 것”이라며 “경주가 향후 미·중 경제 분리의 속도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주가 시험대… 이재명 균형 외교·글로벌 파장 주목한국 입장에서도 이번 회담은 외교적 의미가 작지 않다. 세계 두 강대국이 한국에서 마주 앉는 그 자체가 외교의 메시지다. 경주는 단순한 개최지가 아니라, 미·중 경쟁이 ‘충돌의 외교’에서 ‘관리의 외교’로 넘어가는 시험무대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균형외교의 실질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이 중간 조정자 역할을 얼마나 해낼지가 미·중 모두의 관심사”라고 전했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경주 회담이 미·중 갈등의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한국 외교의 존재감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이 미·중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보여준다면, 향후 동북아 질서에서 발언권은 한층 커질 것이다. 회담의 결과가 대타협이든 상징적 악수로 그치든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이번 APEC 경주 회담은 ‘새로운 합의’의 출발선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정치’의 무대다.트럼프는 계산된 강경함으로, 시진핑은 절제된 현실감각으로 이 회담에 임한다. 결국 미·중은 싸움을 끝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두 경쟁자처럼, 서로를 겨누면서도 거울을 보는 중이다. 이번 경주는 그 거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를 결정짓는 자리다.싸움의 규칙이 바뀌면 세상의 흐름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첫 장면이 이번 주 한국 경주에서 펼쳐진다.

2025.10.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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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정부가 민간 기업 CEO를 갈아치운 이유는?[한세희 테크&라이프]

전문가 칼럼

네덜란드에는 ‘비상 물자 공급법’(Goods Availability Act)이란 법이 있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가 기업 이사회 결정을 무효로 만드는 등 강력하게 개입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네덜란드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법을 실행할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데 냉전 시대 1952년 제정된 이 법이 70년만에 처음 실제 발동되는 일이 벌어졌다. 9월 말, 네덜란드 정부가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간 것이다. 중국인인 장쉐정 CEO도 해임하고 임시 CEO를 지명했다. 정부는 “넥스페리아 지배 구조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위급 상황에서 반도체 수급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70년만에 처음 발동된 비상 조치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본사를 둔 토종 기업이지만, 주인은 중국이다. 2019년 중국 휴대폰 위탁 제조사 윙텍이 인수했다. 자동차와 가전 제품에 들어가는 범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한다. 네덜란드 본사와 유럽 공장에선 설계와 전공정 제조를 담당하고, 중국 법인에서 패키징해 최종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전체 생산량의 80%가 중국에서 완성돼 출하된다. 넥스페리아는 중국 소유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최근 미국 정부의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미국 기업이 제재 리스트에 오른 기업과 거래하려면 미국 정부의 사전 허가를 얻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사실상 국제 시장 퇴출이다. 미국은 제재를 벗으려면 장쉐정 CEO를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장 CEO는 유럽 본사와 중국 법인을 분리해 유럽측 독립성을 유지하기 원하는 정부 방침을 거부하고 화사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는 시도를 해 왔다. 본사에선 넥스페리아 반도체 핵심 지적재산권(IP)이 유출되고, 생산 시설 역시 대거 중국으로 이전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이러한 갈등이 결국 비상 물자 공급법 실행이라는 결말로 이어졌다. 당연히 중국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중국 정부는 이 조치를 규탄하며 중국에서 생산되는 넥스페리아 최종 제품의 수출을 봉쇄했다. 넥스페리아 중국 법인은 “중국 자산의 안보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 현지 직원에게 네덜란드 본사 지시를 따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중국 법인은 중국 기업으로서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란 선언이다. 넥스페리아 본사는 장 CEO가 “중국 법인이 이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거나 “넥스페리아가 월급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와 같은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넥스페리아를 둘러싼 혼란에 세계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부품 수급난을 우려하고 있다. 넥스페리아는 일부 자동차용 범용 반도체 제품 시장에서 1~2위를 유지하고 있다.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 제품은 아니지만, 수급이 안 된다면 자동차 제조 라인을 멈춰 세울 수 있다. 범용 부품 제조와 유통이 막혀 전체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넥스페리아 사태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에 유럽이 동참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자유 무역에서 경제 안보로 유럽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덜란드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요충지에 있다. 최첨단 미세회로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기업 ASML이 네덜란드에 있다. 애플 아이폰 프로세서와 엔비디아 인공지능(AI) 학습 칩을 위탁 생산하는 TSMC, 세계 1위 메모리 기업 삼성전자, CPU 대표 기업인 인텔 등이 ASML의 장비를 필요로 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앞서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에 동참, ASML EUV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는 등 중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자국 대표 기업 ASML이 최대 시장 중국에서 입지가 약해지는 상황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다. 혁신에 뒤쳐진 대가넥스페리아 건은 70년 동안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법률을 꺼내 직접 민간 기업 활동에 개입했다는 점에서 더욱 명시적으로 이 싸움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냉전 시대에도 적용하지 않은 법을 지금 끄집어 낼 정도로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과 디지털 플랫폼을 둘러싼 미중 패권 경쟁이 과거 냉전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음을 보이는 징후이기도 하다. 글로벌 자유 무역과 분업, 공급망 의존을 통해 더 평화롭고 번영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고 있다. 앞서 영국도 안보를 이유로 웨일스 뉴포트에 있는 넥스페리아 생산 공장의 지분을 매각하게 한 바 있다. 프랑스도 중국 영향 아래 있는 반도체 기업에 비슷한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이런 조치는 중국 같은 전체주의 국가의 확장을 막고 자유 민주주의 블록을 지키려는 의도를 내세운다. 하지만 중국이 넥스페리아 통제를 강화하고 제품 수출을 막아 자동차 부품 공급망이 마비될 위험이 우려되는 것에서 보듯, 오히려 우려하던 공급망 안보 붕괴나 지적재산 유출을 더 빠르게 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고, 그 결과는 거대한 블록으로 분열된 세계일 수 있다. 애초에 넥스페리아가 중국 자본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현재 이런 문제를 피할 수도 있었을까?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 글로벌 전자 기업 필립스가 2006년 반도체 사업을 분리해 사모펀드에 매각하며 설립된 NXP에서 다시 2016년 분리돼 탄생한 회사다. NXP가 넥스페리아를 중국 정부 소유 기업이 낀 투자사에 넘겼고, 이를 다시 윙텍이 인수하며 중국 지배가 확고해졌다. 이를 되돌리기 위한 모험을 지금 네덜란드는 하고 있다.일찍이 1920년대 진공관을 생산했던 첨단 기업 필립스의 반도체 사업이 미국, 일본, 한국 등에 밀리면서 재무적 투자자에 넘어간 결과다. 혁신에 뒤쳐진 대가는 이런 식으로 치러진다.

2025.10.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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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의 스타트업 해외 진출 지원…부모 손 잡는 ’하향식 지원’ 지양해야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다 큰 성인이 부모 손을 붙잡고 해외로 여행을 간다면 얼마나 웃긴 일인가.”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전문가는 국내 스타트업이 기관 지원에 의존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을 그렇게 비유했다. 그는 이런 해외 진출 방식은 한국 스타트업이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글로벌 시장에 심어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한번 시장에 각인된 부정적 인상을 바꾸려면 한국은 미래에 더 많은 기회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타트업 글로벌 교류는 상향식으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경험한 해외 전문가들은 고질적 문제로 다단계 지원 구조를 꼽는다. 현 구조에서는 공적 영역과 같은 최상위 집단이 해외 진출 국가를 정하고 이에 맞추어 하위 관계 및 관련 조직들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하향식(top-down)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긴 시간과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한다.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에 자리 잡은 하향식 다단계 지원 구조는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에 알맞지 않다. 국내외 스타트업 생태계 전문가들은 대기업을 위한 생태계 구축 방식을 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적용하고 있는지 하나같이 의문을 보였다. 내부 체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 스타트업 지원 구조는 제조 대기업이 전유하고 있는 가치 사슬과 유사하다. 실제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지원 구조와 대기업의 가치 사슬 구조 모두 상하청 갑을 관계로 얽혀 있다. 그들은 현재 다단계 형태의 가치 사슬에 여러 스타트업 지원 조직들이 생존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고착화되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해외 진출은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창업자와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상향식(bottom-up) 해외 진출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 기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지원 부서일 뿐, 그들이 모든 것을 직접 운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는 상향식 지원을 통해 글로벌 교류의 성공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더 높은 기업 가치와 더 많은 투자금 회수 기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회사를 옮긴다. 유럽의 창업 선도국 에스토니아는 전자시민권(e-Residency)을 발급해서 디지털 노마드를 실현하려는 전 세계 창업자를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글로벌 금용 허브 싱가포르는 낮은 세금과 높은 글로벌 개방성을 앞세워 아시아와 유럽의 벤처 캐피털(VC) 기업과 창업자를 성공리에 유치했다. 이러한 해외 성공 사례들은 지원 기관에서는 제도적 유인책만을 제공하고, 스타트업 생태계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은 덕분에 나온 결과이다. 글로벌 교류를 추구하는 스타트업 행사 역시 창업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 슬러쉬(Slush)는 핀란드 대학 창업 동아리의 소규모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스페인어권 최대 스타트업 행사 사우스서밋(South Summit)은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의 한 여성 창업자에 의해 출범되었다. 인기를 얻고 규모가 글로벌로 커지면서 이제는 공공 영역의 지원과 도움을 받고 있지만, 출발은 모두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였다.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은 탐험가처럼일반 기업 생태계와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는 방식은 다르다. 해외 진출 전략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업은 수요가 충분한 해외 시장을 선정하고 그곳에 거점을 마련한다. 이는 목표를 정해서 행동하는 사냥꾼과 같다. 반면 스타트업은 탐험가와 같다. 해외 진출의 목적은 진출 국가의 시장 잠재성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현지 시장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스타트업은 재빠르게 다른 국가로 눈길을 돌린다. 기회와 가능성을 포착해야 비로소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정복을 시작한다. 이처럼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스타트업은 즉시 접근 가능한 자원을 찾아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와 같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스타트업 해외 진출 지원 기관의 역할은 베이스캠프 정도까지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대다수 한국 스타트업들은 해외 시장에 근거지를 차리고 자력으로 성장했다. 예를 들면 헬스케어 스타트업 눔, 채팅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센드버드, AI 애드테크 플랫폼 몰로코 등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 해외 시장에서 자생력을 보여주면서 유니콘으로 성장한 한국계 해외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에게 해외 진출 기회를 제공하고 채널을 확대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지원 사격은 그 정도까지가 적절하다. 굳이 그들의 손을 붙잡고 나라 밖으로 나아가 함께 사냥까지 할 필요는 없다. 붙잡은 손을 놓아도 스타트업들은 스스로 알아서 탐험을 시작할 것이다. 누군가는 탐험을 단기간에 마치고 빈손으로 돌아올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긴 탐험 끝에 양손 가득 무엇인가를 들고 올 것이다. 무엇을 가져올지도 결국은 그들이 정할 일이다.

2025.10.26 10:00

3분 소요
지금, 치킨 산업이 흔들린다 [승자 없는 치킨값 경쟁]④

유통

치킨 산업은 오랜 시간 한국 외식업을 대표하는 업종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메뉴인 데다 ▲계절이나 유행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안정적인 소비 패턴 ▲배달에 적합한 제품 특성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창업 환경 등은 치킨을 외식 산업의 중추 품목으로 만들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치킨 산업은 창업 시장에서 대표 종목으로 부상했다. 대중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한 드문 외식 업종으로도 평가받는다. 최근 산업 지표를 살펴보면 치킨 업종은 과거와는 다른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외식 경기 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치킨 산업 자체가 일정 부분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할 수 있다.치킨업, 외형 성장 정체…전환점 필요전통적으로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지녀온 이 업종이 최근에는 외부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성숙기를 넘어 하향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나이스지니데이타가 발표한 ‘2021~2024 외식업 카드 소비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치킨 업종의 카드 매출은 전년 대비 8.0% 줄었다. 외식업 전체 평균 감소율인 5.0%보다 높은 수치다. ▲피자·햄버거(–1.2%) ▲커피(–2.9%) ▲제과점(–4.6%)과 비교해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작년 하반기 기준 치킨 업종은 일식과 함께 유일하게 점포 수와 매출이 동시에 줄어든 업종으로 나타났다. 외식 체감경기 위축이 가장 먼저 반영된 업종으로 해석된다.치킨 업종의 점포 수는 지난 2022년을 정점으로 완만한 감소세로 전환했다. 같은 기간 피자·햄버거나 커피 업종은 점포 수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외형 성장 정체는 ▲공급 과잉 ▲브랜드 중복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 등 복합적인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 실제로 시장 내에서는 유사한 콘셉트와 메뉴를 내세우는 브랜드가 과도하게 난립하면서 차별화 없는 경쟁 구도가 심화하고 있다.공정거래위원회의 ‘가맹사업정보공개서 등록 현황’에 따르면 치킨 가맹점 수는 지난 2020년 2만6017개에서 지난해 2만9626개로 꾸준히 증가했다. 같은 기간 브랜드 수는 지난 2021년 654개를 정점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가맹본부 수도 지난 2020년 4255개에서 작년 4423개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브랜드 수 증가가 일정 수준에서 포화 상태에 도달했고, 소수 가맹본부가 복수 브랜드를 운영하는 구조가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공급자 중심의 브랜드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사 브랜드 간 경쟁이 심화하고, 가맹점 간 출혈 경쟁 역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수요 측면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명확하다. 과거에는 브랜드 인지도나 광고 노출이 소비자 선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품질 ▲가격 대비 만족도 ▲브랜드 철학 ▲지속가능성 등 정성적 요소가 구매 결정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이는 단순한 외형 확장 중심의 전략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뜻한다. 치킨 시장도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한 상황이다.나이스지니데이타의 분석에 따르면 점포 수가 늘었으나 전체 매출은 감소하는 추세다. 가맹점당 평균 매출과 수익성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는 의미다. 평균 매출 증가하는데…수익성은 내림세실제 경영 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치킨업은 여전히 창업자에게 인기 있는 업종지만, 시장은 이미 포화에 가까워진 상태다. 신규 진입자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가맹점당 평균 매출은 메뉴 단가 인상과 배달 수요 확대 등 외부 요인의 영향으로 일정 수준의 상승세를 유지해 왔다. 매출 증가가 실질적인 고객 수나 거래량 증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물가 상승과 운영비 증가를 반영한 단가 조정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는 제한적이다. ▲원재료비 ▲인건비 ▲배달 수수료 등 주요 비용 항목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명목상 매출 증가가 실질 수익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이 고착되고 있다.실제로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의 ‘프랜차이즈산업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치킨 가맹점의 평균 매출은 지난 2020년 36억8900만원에서 작년 60억4000만원으로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2020년 7.78% ▲2021년 8.58% ▲2022년 7.57% ▲2023년 8.64% ▲2024년 6.32%로 내림세를 보이며 하방 압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외형 성장과 실질 수익성 간의 괴리가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치킨 업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외식업 전반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업종별로 시기나 양상은 다르겠지만, 프랜차이즈 구조가 정착된 대중 업종에서 먼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킨 산업은 외식업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가늠하는 ‘선행 신호’로 해석 가능하다.이제 외식 산업은 단기적인 매출 확대나 단가 인상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산업 전반의 포트폴리오 재편 ▲소비자 중심의 제품 전략 ▲운영 효율성 제고 ▲브랜드 차별화 전략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프랜차이즈 본부는 양적 확장 중심의 기조에서 벗어나 내실 확보와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 구축이라는 본질적인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오랜 시간 외식업의 중심에 있었던 치킨 산업이 지금 뚜렷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변화를 얼마나 정확히 읽고 신속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외식업계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다.

2025.10.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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