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기업, 회생보다 파산 늘었다…“지금 구조조정은 속도전” [이코노 인터뷰]
- 김상규 로백스 구조조정 지원센터장 인터뷰
29년 법관 출신 전문가, 로백스 합류
“기금화된 위기, 선제 대응만이 살 길”
29년간 법관 생활을 마치고 지난 2월 수원회생법원장을 끝으로 퇴임한 뒤 법무법인 ‘로백스(LAWVAX)’에 합류한 김상규 로백스 구조조정 지원센터장은 현재 기업 시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법원에서 9년간 법인회생·파산 전담 재판장으로 활동하며 굵직한 구조조정 사건을 다뤄온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다.
실제 지표는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한다. 법인회생 사건은 2019년 1003건에서 코로나19 이후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며 2025년 1321건까지 늘었다. 그러나 더 주목할 지점은 법인파산이다. 2019년 931건 수준이던 파산 접수는 2023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2025년에는 2282건에 이르렀다.
기업들이 회생보다 파산을 선택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재무적 여력이 약화된 기업들이 한계 상황에 도달하고 있다”며 “대외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구조조정 압력이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특정 산업에 위기가 집중되는 국면도 아니다. 건설이나 2차전지 등 일부 업종 중심의 위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전 산업이 동시에 압박을 받는 구조다. 고금리, 에너지 비용 상승, 공급망 불안 등 복합적인 요인이 기업 전반의 재무 건전성과 사업 지속성을 흔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은 특정 업종이 아니라 ‘기업 체력’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라며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한 기업들은 업종과 관계없이 구조조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회생은 타이밍 싸움”…늦으면 선택지 사라진다
그가 현장에서 가장 안타깝게 보는 지점은 ‘타이밍’이다. 기업들이 회생 신청을 지나치게 늦게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회생은 늦게 할수록 선택지가 빠르게 사라진다”며 “이미 기업 가치가 훼손된 뒤에는 되돌리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적정 시점은 명확하다. 최소한의 운전자금이 유지되고, 핵심 사업과 인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때다. 이 시기를 넘어서면 회생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그는 회생절차를 더 이상 ‘마지막 수단’으로 보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회생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선제적으로 활용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STX조선해양, 삼부토건, 카페베네, 대우조선해양건설 등 다수의 대형 회생 사건을 담당하며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을 지켜봤다. 결론은 단순하다. 결국 핵심은 ‘사업 경쟁력’이다. 그는 “경영진 의지나 이해관계자 협조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경쟁력이 없으면 회생은 지속될 수 없다”며 “반대로 경쟁력이 유지되는 기업은 제도적 지원이 결합되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 보는 기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를 상회하는지 여부가 핵심 판단 기준이다. 다만 최근에는 인수합병(M&A) 가능성이나 자본 유입 여지 등도 함께 고려되면서 보다 현실적인 판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조조정 방식 변화...‘통제’→‘시장 기반 회복’
구조조정 접근 방식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법원이 절차를 강하게 통제하는 구조였다면, 최근에는 기업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대표적인 변화가 자율 구조조정 지원제도(ARS)와 포괄허가 확대다. 과거에는 회생절차 개시 이후 주요 거래마다 법원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최근에는 일정 범위 내에서 기업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그는 “구조조정의 중심이 ‘통제’에서 ‘시장 기반 회복’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법원은 채무조정 등 법적 절차를 담당하고, 경영은 기업이 맡는 구조로 역할이 명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는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STX조선해양 사례처럼 회생계획 인가 이후 절차를 조기에 종결하고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또한 그는 기업 부실의 근본 원인으로 외부 충격보다 ‘내부통제 실패’를 꼽았다. 실무적으로 보면 기업 위기는 외부 환경보다 내부 통제 취약성에서 먼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는 단 한 번의 사고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리스크 관리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투명하고 신속한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이 결국 기업의 신뢰를 유지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회생 가능성을 높이는 기반일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향후 2~3년을 구조조정 시장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그는 “앞으로는 선제적으로 대응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이라며 “대응이 늦어질수록 선택지가 빠르게 줄어드는 만큼 빠른 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삶이 담긴 공간”이라며 “도산절차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다. 위기는 피할 수 없지만, 대응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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