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이란 전쟁 이후…아세안, 글로벌 제조 심장으로 부상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 냉전식 '하드 블록' 저물고…공급망 안보 중심 다층적 경제 결속 가속화
베트남·싱가포르 등 물류·금융 분야에서 비용 절감과 효율성 극대화 입증
[김상수 Hanbridge 대표] 2026년 현재, 이란 전쟁이 촉발한 긴장은 전 세계를 명확한 진영 논리 대신 경제적 실리와 공급망 안보를 중심으로 유연하게 결합하는 ‘소프트 블록’(Soft Bloc)의 시대로 급격히 밀어 넣고 있다. 이 거대한 지정학적 파고 속에서 아세안(ASEAN)은 단순한 대안 시장을 넘어, 에너지 주권 강화와 첨단 제조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글로벌 산업의 심장부'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며, 투자 지형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2026년 현재 목격되는 글로벌 블록화의 특징은 과거 냉전 시대와는 판이하다. 과거의 ‘하드 블록’(Hard Bloc)이 명확한 이데올로기적 결속과 군사 동맹을 바탕으로 했다면, 현재의 소프트 블록은 경제적 이익과 공급망 안보를 중심으로 형성된 보다 유연하고 다층적인 구조를 띤다. 이러한 소프트 블록은 회원국 간의 경계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국가들이 필요에 따라 여러 블록에 중첩되어 활동하는 거래적 성격을 지닌다.
유연하게 뭉치는 소프트 블록 개막
아세안도 전쟁이 진정된 이후 역내 공급망 재편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석유화학 쪽에서도 인도네시아는 그레식 특별경제구역에 멜라민 공장을 건설하며 수직 계열화를 추진 중이고, 브루나이와 캄보디아 역시 대규모 정유 및 석유화학 단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등 석유화학 생산기지를 역내에 두려는 노력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시설도 적극적으로 유치할 것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등으로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려 했던 EU, 중국 등은 새로운 생산기지를 모색할 것이며, 아세안이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아세안 국가들 입장에서도 점점 잊혀 가던 코로나 19 상황에서 이번 전쟁으로 공급망 위기가 다시 부각되었다. 약한 제조업 기반에서 원재료는 수출하고 있으나 가공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경제체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박찰 것이다.
아세안에서 제조업이 성장하는데 있어 한가지 큰 걸림돌은 숙련된 노동자의 부족이다. 급격한 수요 증가를 인재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능력 격차(Capability Gap) 현상이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지니어링과 AI 분야의 숙련 노동자 부족으로 인해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이직률은 17~20%에 달하며 기업의 제조 원가 상승을 초래하고 있다. ASEAN 주요 6개국인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베트남에서 올해 숙련 기술자 부족 규모는 약 660만 명으로 추정된다.
‘사람 귀해진 아세안’…660만 인재 부족, 자동화 열풍 불러와
노동력 부족과 비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아세안 제조업체들은 공장 자동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PwC의 연구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 일자리의 34%가 자동화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로봇 도입의 강력한 동기가 되고 있다. 2026년의 자동화 트렌드는 단순히 사람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로봇 가격의 하락은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조차 자동화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특히 로봇을 소유하지 않고 구독 형태로 사용하는 'RaaS(Robotics-as-a-Service)' 모델의 부상은 아세안 전역에서 로봇 설치 대수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2026년은 대리인적 AI(Agent AI)가 제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원년이 될 것이다. 과거의 AI가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그쳤다면, 대리인적 AI는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업을 실행한다.
아세안의 스마트 팩토리들은 이러한 에이전트 기반 시스템을 통해 숙련된 작업자의 판단 기능을 자동화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물류 허브에서는 AI 에이전트가 구조화되지 않은 무역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의 경로를 설정하고, 운영 비용을 30% 이상 절감하고 있다. 베트남의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도 에이전트 기반 AI를 도입하여 처리 시간을 90% 단축하고 인건비를 33% 절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기술적 도약은 아세안이 단순 생산 기지를 넘어 고부가가치 기술 허브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란 전쟁 이후의 글로벌 질서 재편은 한국 경제에 위기인 동시에 거대한 기회다. 국내에서는 차세대 소재와 대리인적 AI 소프트웨어 등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아세안의 고질적인 숙련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한국형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AI 에이전트 + 협동 로봇 패키지)을 패키지화하여 수출해야 한다. 아세안의 인재 기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기술력을 활용한 소프트 파워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 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현지 노동자들에게 한국형 자동화 설비 운용 능력을 교육시켜야 한다. 이는 한국 기업의 현지 적응력을 높이는 동시에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아세안의 자원과 한국의 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전략적 이원화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결정지을 생존 전략이 될 것이다.
필자는 삼정 KPMG∙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벤처투자 등 23년이상 다양한 사업경험과 더불어 벤처캐피탈∙회계법인∙인프라∙스타트업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현재 싱가포르의 Hanbridge의 대표로 한국 중소∙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및 해외 자금 유치를 돕는 역할과 함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생태계를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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