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밀린 숙제 끝낸 이통 3사, 이사회 체질 개선[밀실 벗어난 이사회]②
- ‘낙하산’ 대신 ‘전문가’...전문성 논란 극복 나서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지난 2025년은 대한민국 이동통신 역사상 가장 뼈아픈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고도화된 해킹 수법에 의한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결함을 넘어 기간통신사업자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인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이사회 역시 전문성 부족을 드러내며 ‘거수기’ 논란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6년 봄, 이동통신 3사의 이사회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실무형 전문가들을 전면에 배치한 ‘특화형 이사회’로의 전격적인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SKT, AI 전략 뒷받침할 기술 사령부 구축
최근 서울 을지로 SKT-T타워에서 열린 42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된 정재헌 SKT 사장은 AI기업으로 체질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기 주주총회 직후 취재진과 만난 정 CEO는 2023년 선제적으로 투자했던 AI 기업 앤트로픽의 지분 가치가 10배가량 폭등한 데 따른 향후 AI 투자 청사진도 언급했다. 정 CEO는 추가 투자 여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AI 사업 전반에 대해 다양한 검토를 진행 중이며, 단독으로 추진하기보다 선도 기업과 협력을 통해 추진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주총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오혜연 카이스트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이다. 오 교수는 국내 최고의 자연어 처리(NLP) 및 AI 윤리 전문가로 손꼽힌다. 1974년생인 오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수학과를 졸업한 후 카네기멜론대(CMU)에서 언어 및 정보기술 석사 학위를, MIT에서 컴퓨터과학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20년에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며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총괄했다. 지난해에는 국가 AI전략위원회 글로벌협력분과장을 맡았다.
아울러 SKT는 AI 법제·정보보호 분야 전문가인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와 임태섭 성균관대 SKK GSB 교수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교수는 ICT 법제 전문가로 유심 해킹 사태 이후 강화된 정보보호 거버넌스 고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임 교수는 골드만삭스·맥쿼리증권 CEO 출신으로 대규모 AI 투자에 따른 재무 리스크 관리와 주주가치 보호 역할을 맡는다.
KT도 최근 서울 서초구 태봉로 KT연구개발센터에서 제44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박윤영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박윤영 신임 대표이사는 1992년 한국통신(KT 전신)에 입사해 30여 년간 KT에서 근무한 ICT 분야 전문가로 기업사업부문장 사장, 미래사업개발단장 등을 역임하며 회사의 주요 사업과 기술 분야를 두루 경험해 왔다. 특히 기업사업부문장 재임 시 B2B 사업 성장을 주도하며 KT의 핵심 성장축을 B2B로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KT 측은 “박윤영 신임 대표이사의 AX 역량과 성장 전략,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경영 의지가 KT의 미래 성장을 견인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KT, ICT 전문가 대표 선임…사외이사에 기술 전문가 내세워
KT도 사외이사 선임에 있어 기술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외이사로는 네트워크 전문가인 김영한(현 숭실대학교 전자정보공학부 교수) 이사가 선임됐으며,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는 권명숙(전 인텔코리아 대표이사), 서진석(현 OCI홀딩스·부광약품 비상근 고문) 이사가 선임됐다.
LG유플러스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남형두 사외이사를 차기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LG유플러스가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유플러스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 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지배구조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는 “사외이사 출신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기능은 강화되고 경영의 투명성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특히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음으로써 객관적인 시각에서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주주와 이해관계자의 권익 보호를 우선시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남형두 이사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법무법인 광장 파트너 변호사,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률 전문가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앞서 2022년부터 LG유플러스의 사외이사 및 내부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계열사 간 거래의 공정성과 내부통제 강화에 기여해 왔다.
LG유플러스는 남 이사가 보유한 법률적 전문성과 방송통신·미디어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전반적인 컴플라이언스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지배구조 개선 LG유플, 남형두 사외이사 차기 이사회 의장 선임
이통 3사의 이번 이사회 재편은 단순히 인물을 바꾸는 것을 넘어 통신 산업의 패러다임이 ‘규제 대응’에서 ‘기술 혁신’으로 완전히 넘어왔음을 의미한다. 과거 통신사는 규제 산업 특성상 대정부 관계가 중요했기에 관료나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AI ▲클라우드 ▲보안이 핵심 경쟁력인 시대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과 관련해 이통 3사의 신성장 동력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AI와 같은 첨단 분야는 경영진의 의지만큼이나 이사회의 전문적인 지지가 중요하다. 이사회가 기술적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있을 때, 과감한 투자와 전략 수정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변화는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통신주를 기피했던 이유 중 하나는 불투명한 거버넌스와 이사회의 전문성 결여였다. 하지만 올해 이통 3사가 보여준 이사회 선임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이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며 “국내 이통사들이 이제야 글로벌 흐름에 발을 맞추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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