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로봇이 걸어 나온 날 피지컬 AI와 한국의 선택[피지컬 AI가 바꾸는 질서]⑦
- 김용희 선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한국 제조업 로봇 밀도는 1만명당 1012대로 세계 최고 수준
“피지컬 AI 승부는 성능이 아니라 신뢰에서 갈릴 것”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피지컬 AI’(Physical AI)는 ‘AI가 말만 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센서로 현실을 읽고(인지) ▲판단하고(추론·계획) ▲구동장치로 현실을 바꾸는(행동) 기술 스택 전체를 뜻한다. 휴머노이드만이 아니다. ▲자율주행차와 로봇택시 ▲창고의 AMR(자율이동로봇) ▲농업·점검·재난 대응 드론 ▲수술 로봇과 재활 외골격 ▲심지어 가전·빌딩 설비 제어까지. AI가 ‘몸’을 갖는 순간, 모두 같은 전선에 선다.
2026년 1월 CES는 그 전선을 한 장면에 압축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로보틱스의 챗GPT 모먼트”를 공식 선언하며 물리 인공지능(AI) 모델과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웠다. 현대차그룹 역시 CES 2026 미디어데이를 ‘AI 로보틱스’로 채우며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전면에 세웠다. “우리는 이제 자동차 회사만이 아니다”라는 재정의였다.
숫자가 바뀌면 산업이 바뀐다
시장 전망은 이미 산업의 언어로 바뀌었다.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전체 시장 규모를 2035년 380억 달러(약 55조5522억원)로 보고 기존 전망(60억 달러) 대비 6배 이상 상향했다. 모건스탠리는 휴머노이드 생태계가 2050년 5조 달러(약 7309조5000억원)까지 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휴머노이드만으로도 이 정도’라는 점이다. 자율주행 쪽만 떼어 봐도 맥킨지는 2035년 3000억~4000억 달러(약 438조 5700억원~584조6800억원)의 매출 기회를 전망한다. 피지컬 AI는 ‘로봇 산업’이 아니라 자동차·물류·의료·제조를 동시에 재편하는 운영 기술로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의 현실로 한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전망치보다 잔인한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먼저 현장에서 굴리느냐’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휴머노이드를 반복·고위험 작업에 투입하고 2030년엔 더 복잡한 공정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연 3만대 생산 목표의 로봇 공장 구상도 공개했다.
물류는 이미 ‘현장 데이터’가 굴러가는 곳이다. 아마존은 2025년 중반 기준 누적 100만대 로봇 배치를 공식 발표했고 로봇 이동 효율을 높이기 위한 생성형 AI 모델도 함께 공개했다.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웨이모는 유상 무인 호출 서비스를 확장하며 2026년 1월엔 샌프란시스코 공항(SFO) 승객 서비스를 공식 개시했다.
피지컬 AI의 확산은 휴머노이드 쇼가 아니라 도메인별 제품화로 진행된다. 의료는 오차가 곧 생명이라 ‘정밀·안전·책임’이라는 피지컬 AI의 본질을 가장 먼저 요구하는 영역이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2025년 말까지 다빈치 수술이 누적 2000만명 환자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CES 2026에서는 LEM Surgical이 엔비디아 키노트에서 수술용 피지컬 AI 로보틱스를 시연하며 이 흐름을 과시했다. 드론은 배송을 넘어 ▲농업 방제 ▲시설물 점검 ▲재난 구조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산간·도서 지역 드론 배송 실증이 확대되고 건설 현장의 자동 측량과 안전 점검에 드론이 투입되고 있다.
가정은 상대적으로 느리다. 하지만 ‘실제’로 내려왔다. 1X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네오(NEO)의 얼리 액세스(Early Access) 가격을 2만 달러(약 2900만원), 미국 배송을 2026년 시작으로 제시했다. LG는 CES 2026에서 홈로봇 클로이드(CLOiD)를 공개하며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을 전면 메시지로 내걸었다.
중국의 전략은 단순하고 강하다. 가격이다. 유니트리는 G1을 2024년 9만9000위안대(약 2083만원)에 내놓은 데 이어 2025년 R1을 3만9900위안(약 839만원)에 제시했다. 기술 격차가 있어도 원가 구조가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드론 시장에서 DJI가 세계를 장악한 패턴과 닮았다. 한국이 같은 게임을 할 수는 없다. 대신 한국이 잡아야 할 축은 ‘현장 운영의 산업화’다. 피지컬 AI는 모델의 화려함보다 현장에서 남는 로그가 자산이 된다. ▲넘어짐 ▲급정지 ▲경로 이탈 ▲촉각 오판 등의 기록이 표준화돼 시뮬레이션과 안전 검증으로 되돌아갈 때 기술이 산업이 된다.
기술보다 신뢰가 먼저다
디지털 AI의 오류는 문장으로 끝나지만, 피지컬 AI의 오류는 사고로 끝난다. 자율주행차의 오판은 인명 피해로 수술 로봇의 실수는 환자의 생명으로 직결된다. 그래서 승부는 성능이 아니라 신뢰에서 갈린다. ▲안전 인증 ▲책임 소재 ▲데이터 거버넌스가 늦어지면 상용화는 기술이 아니라 불신에서 멈춘다.
그래서 초기 시장은 뻔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물류창고의 피킹과 패킹 ▲공장의 반복 조립 ▲설비 순찰 ▲농업 방제 등 ‘사람이 하기 위험하고 지루한 일’부터다. 챗GPT가 AI를 연구실에서 일상으로 내렸듯 피지컬 AI도 신기한 쇼에서 현실 도구로 내려와야 한다. 안전하고 편리하고 실수가 없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산업의 몫이었고 더 안전한 이용을 위해서는 피지컬 AI에 대한 일반 이용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일, 즉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고 이는 정부의 몫이다.
한국은 출발선이 나쁘지 않다.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 로봇 밀도는 1만명당 1012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율주행 기술 ▲반도체 ▲배터리 역량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 하드웨어 저력이 ▲데이터 수집 ▲시뮬레이션 ▲안전 검증 ▲배포와 운영으로 연결되는 속도다. 2025년 10월 한국피지컬AI협회 출범이 테스트베드와 표준화와 인재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선택지는 선명하다. ‘로봇을 만들었다’에서 멈출 것인가, ‘피지컬 AI가 안전하게 일한다’까지 갈 것인가. 후자를 선택한다면 현장 실증을 프로젝트가 아니라 상시 인프라로 만들고 도메인을 가르는 규제 대신 통합 안전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로봇이 걸어 나온 날, 진짜 경쟁은 시작됐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 가진 제조 현장과 운영 역량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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