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와 IP의 공진화...세계관을 영원하게 [스페셜리스트뷰]
- 생성형 AI가 촉발 시킨 IP 저작권 논란
굴지 글로벌 기업들은 AI 활용 적극적
IP 본래 정체성, 정서 훼손 우려도 나와

하필 그때 그가 본 AI 생성 콘텐츠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역겨운 것’에 관한 것이었더라도, ‘모욕’과 ‘불쾌’라는 표현이 내포한 의미를 미뤄볼 때, 당대 애니메이션 거장이 AI에 품은 인상은 단편적이고 결코 낙관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로부터 약 9년이 지난 지금, 생성형 AI 시대의 창작자들이 마주한 갈등이 또 시작됐다. 바로 ChatGPT-4o가 불러온 ‘지브리풍’ AI 열풍이다.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것이 상용화되는 기간이 급격히 단축되고 있다. 2024년부터 급속히 대중화된 생성형 AI는 그림, 음악, 소설, 영상에 이르기까지 창작의 영역을 넘나들며 콘텐츠 생산의 정의를 다시 쓰고 있다.
오픈AI의 ChatGPT를 필두로, 미드저니, 런웨이 등 수많은 AI 기반 툴들이 매일같이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는다. 사용자들은 몇 줄의 프롬프트로 '지브리풍의 소녀', '애니메이션 심슨 스타일의 자화상', '천재가 쓴 듯한 에세이'를 뚝딱 만들어낸다. 특히 올해 3월부터 전세계에 몰아친 '지브리풍' 생성형AI 이미지는 또 다시 'IP 저작권'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낸다.
디자인, 영상, 패션, 영화, 출판,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우리의 생활 속 깊숙한 곳까지 생성형AI가 점차 파고든다. 이 산업의 성장 동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노코드 AI 창작 툴'의 확산. 둘째, 콘텐츠 수요의 기하급수적 증가. 셋째, 기업의 비용 절감과 효율성 요구다. 콘텐츠 마케팅, 광고, 브랜드 디자인 등에서 AI는 빠르게 실무를 대체하거나 보조하며 새로운 산업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마케팅 분야에서 생성형 AI의 활용은 눈부시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조직의 65%가 생성형 AI를 마케팅에 도입했으며, 맥킨지에 따르면 AI는 마케팅 부문의 생산성을 평균 5~15% 높이고, 연간 약 4630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SurveyMonkey 조사에 따르면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 속도는 평균 3배 빨라졌고, 90% 이상의 마케터들이 의사결정 속도 또한 향상되었다고 밝혔다.

로레알(L'Oréal), 코카콜라(Coca-cola), 세일즈포스(Salesforce) 등 글로벌 기업들은 개인화 추천, 이미지 자동 생성, 실시간 카피라이팅 등에 생성형 AI를 도입해 캠페인의 ROI를 높이고 있다. 특히 코카콜라는 ChatGPT와 DALL·E를 활용해 참여형 브랜드 캠페인을 성공시켰으며, HubSpot은 AI 기반 고객 응대 시스템 'Breeze'를 도입해 고객 경험을 자동화하고 있다.
국내에서 역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 뿐만 아니라 오비맥주, 헤이딜러, 젠틀몬스터, 올리브영, SM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생성형AI로 마케팅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제작해 활용하고 있다.
현재 생성형AI의 가장 주요한 이슈는 '공정 사용(fair use)’이다. 말하자면 '공익적 목적의 사용'이 아니면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고 학습을 시킨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무분별한 크롤링과 생성으로 인한 법적 분쟁이 늘고 있는 가운데, 제도권에서도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기존 생태계 보호에 애쓰는 모양새다.
이번 '지브리 스타일' 이슈로 'AI 이미지 생성이 과연 합법인지'에 대한 논의 역시 일본 현지 정치권에서도 큰 이슈다. 최근 일본의 중의원 내각 위원회 회의에서 입헌민주당 의원인 기후현의 이마이 마사토 의원은 일본 문부과학성의 문부과학전략관인 나카하라 히로히코에게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이 불법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단순히 그 스타일로 이미지 생성을 한다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가 기존의 저작물과의 유사성에서 인정된다면 그건 저작권 침해라고 생각한다"라는 모호한 답변과 더불어 이 문제에 대한 공을 법원으로 넘겼다. 일본 입법부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법안 역시 곧 준비가 될 전망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떨까.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23년 12월, 생성형 AI와 관련된 저작권 이슈를 다룬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발간했다. 이 안내서는 AI 사업자, 저작권자, 이용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를 위한 지침을 제공하며, AI 산출물의 저작권 등록 가능성과 관련된 국내외 사례를 포함하고 있다.
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국제적으로 배포하였고, 이는 2025년 국제지식재산지수(IP Index)에서 한국이 저작권 분야 세계 7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디지털 기술 환경에 부합하는 저작권 법·제도를 마련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초상권 및 학습 데이터 무단 사용 등의 이슈를 예방하기 위한 AI 회사들의 기술적 접근도 활발해지고 있다. 런웨이(Runway)는 자체 3D 기반 아바타 라이브러리를 통해 AI 영상 학습을 진행하고 있으며, 픽스AI(PixAI)는 고유 3D 모델을 사용해 생성 이미지의 독창성을 유지한다. 이는 단지 법적 회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독립적 IP 확장의 전략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파프리카 주식회사는 자사 내부에서 진행하는 '블랑카 프로젝트'를 통해 키, 체형, 얼굴 구성, 포즈 등을 3D 모델링으로 직접 구현한 후 AI에 학습시킨다. 이렇게 하면 실제 사람을 참고하지 않고도 고품질 비주얼을 제작할 수 있어 저작권 이슈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AI 이미지 생산을 바라보는 창작자들
이처럼 빠르게 재편되는 환경 속에서 창작자들은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다. 빠르게 결과물을 얻고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는 자유는 달콤하지만, 자신만의 손맛과 사유, 스타일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창작의 과정이 효율성과 속도에 의해 단축되면서, 예술적 깊이나 인간의 감정은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AI의 창작 도구화를 통해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고 새로운 유저 풀을 만들어가지만, 저작권 이슈와 윤리적 문제에 대한 뚜렷한 기준은 아직 없다. 기술기업은 생성형 AI가 창작의 ‘보조자’이며, 인간의 창의성을 확장하는 도구라고 주장하지만, 기존의 창작 질서가 붕괴되는 것에 대한 대안은 아직 부족하다.
'재미'와 '효율성'에 매료된 수억의 이용자들이 소비하는 AI 창작물. 생성형 AI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에 대한 철학적 정의 자체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창작자들의 집단인 콘텐츠 IP 업계의 반응도 다양하다. 일본의 전통 애니메이션 유통사인 쇼프로(Shogakukan-Shueisha Productions)는 도라에몽, 명탐정 코난 등 자사의 클래식 IP를 보호하기 위해 AI 활용에 대해 극도로 보수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약 20년 간 쇼프로에 몸담고 있는 모 임원은 "AI로 인해 IP 본래의 정체성과 정서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사항"이라며 앞으로도 당분간 생성 콘텐츠에 대해 강경한 저작권 대응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필자에게 강조했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이들 역시 AI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 역시 밝혔다. 2025년판 '란마 ½' 같은 작품을 생성형 AI를 활용해 고도화하는 작업을 한다던지, AI 번역 스타트업인 Mantra와 협력하여 영어권 독자를 위한 라이트 노벨 앱을 개발한다던지 말이다.
자사 IP 활용에 의외로 보수적인 엔터 업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내 굴지의 엔터 그룹의 E그룹은 AI를 통해 2D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뮤직비디오에 활용하는가 하면, 현재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모 아이돌은 생성형AI를 활용해 AI 화보집을 제작한다.
공연장이나 행사장에 걸리는 아티스트의 포스터 이미지 역시 아티스트들의 별도의 추가 촬영 없이 AI를 통해 움직이도록 해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딥페이크'로 초상권 사용에 강경하던 엔터 업계에서의 변화 역시 AI가 가져다준 편의성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활짝 열린 AI 시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당신은 '하츠네 미쿠'라는 캐릭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츠네 미쿠(初音ミク)'는 일본의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인 보컬로이드(VOCALOID)를 사용한 크립톤 퓨처 미디어사의 마스코트 캐릭터다. 2007년 8월 31일에 발매된 이 캐릭터는 2024년 8월 31일자로 17주년을 맞이했다. 여러 보컬로이드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이 IP가 AI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 독특하다.
하츠네 미쿠는 현대 일본 서브컬쳐의 상징들 중 하나로 세계적인 캐릭터 산업국인 일본에서도 이례적으로 성공한 케이스이다. 처음에는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음원으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청록색 눈과 트윈테일을 가진 이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관련 상품 판매와 TV 광고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유튜브에 다양한 콘텐츠를 업로드하며 팬들을 끌어모았고, 2025년 4월 기준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368만 명에 달해 '대형 아이돌'로 성장했다. 올해 4월에는 미국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인 코첼라(Coachella) 무대에 선 최초의 버추얼 가수가 되며 일본을 넘어 글로벌 스타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전환점에서 단순히 AI가 만드는 결과물의 정교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감정의 해석과 세계관의 설계'라고 믿는다. AI를 창작의 대체자가 아니라, 무한한 프로토타이핑과 반복을 가능케 하는 파트너로 바라본다면. 그래서 하나의 콘텐츠가 아니라, 하나의 감정을 설계하고, 그 감정을 다양한 형태로 파생시키는 방식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인간만이 줄 수 있는 해석력과 정서,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유기적 연결이야말로 우리가 AI 시대에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창작 방식이다. 우리는 콘텐츠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와 IP 홀더들이 AI를 통해 자신만의 감정을 증폭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이렇게 AI를 통해 증폭된 다채로운 감정선이 쌓이고 쌓여 작품을 넘어선 '감정 자산을 쌓는 IP'로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지금의 지브리 스튜디오나 BTS 서사를 만든 하이브와 같이 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된다. AI 시대를 막을 수는 없다. 그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기술을 경계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더 깊이 표현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이와 새, 죽음과 선택, 기억과 사랑에 대한 자서전 적인 이야기였다. 주인공 마히토는 상실의 아픔과 이질적인 세계를 통과하며, 결국 자신이 살아갈 현실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너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였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생성형 AI는 끝없이 새로운 창작물을 생산하고, 속도와 효율은 날로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더 빠르고 더 똑똑한 도구들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AI가 만든 완벽한 이미지, 정제된 문장, 무한한 조합들 속에서도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것은 ‘해석’, ‘감정’, 그리고 ‘의도’다. 우리는 모두 창작자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창작의 방향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가 결정할 것이다. 기술은 계속 진화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안에서 어떤 세계를 살아낼 것인가.

최원호 파프리카 부대표는_2014년부터 2024년까지, 대한민국 청와대, 조선일보를 거쳐 TV조선에서 몸담았다. VR, AI 챗봇, 웹툰 등 디지털 사업부터 마라톤, 팝업 스토어, 프렌차이즈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비즈니스를 기획하며 IP 사업의 인큐베이팅부터 확장까지를 경험했다. 경제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 팬덤 비즈니스와 IP 산업을 기술과 연결해 해석하고 구현하는 전략가로 활동 중이다. 콘텐츠의 창작부터 유통, 마케팅, 그리고 AI 기반 자동화까지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설계해내는 것을 목표로, 기술 기반 IP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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