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2834점 전부가 위작이었던 희대의 미술품 사기 사건 [백세희의 컬처&로(LAW)]
- 이중섭·박수근 그림 위작 사건으로 보는 미술품의 위조와 감정

미술품 구매자, 즉 콜렉터가 아니더라도 미술시장을 공부하거나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아마도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희대의 사기 사건이 있다. 2005년에 시작돼 무려 12년 동안이나 다툼이 이어지다가 2017년 여름, 대법원의 판결 선고로 종지부를 찍은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사건 초반에는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워낙 긴 시간에 걸쳐 공방이 이어지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이에 사람들은 결론이 나긴 났는지, 어떻게 났는지, 그 내용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번 칼럼에서는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의 전말을 훑어보고, 이를 배경으로 하여 작품의 진위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즉 미술품의 감정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이중섭 미발표작 전시회 추진...시작된 위작 재판
화가 이중섭의 50주기(2005년)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고서연구회의 K 명예회장은 2004년 방송사 SBS에 이중섭의 미발표작 전시회를 제안했다. 그는 일본 도쿄에서 표구점을 운영 중이던 이중섭의 차남 L을 찾아가 자신이 소장하던 이중섭의 그림을 보여줬고, L은 K 회장이 보유한 모든 그림이 진품이 맞다고 SBS에 확인해줬다.
몇 달 뒤, L은 이중섭의 유작이라며 그림 8점을 서울옥션 경매에 내놨는데, 이때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이들 그림이 모두 위작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L은 유족이 50년 동안 보관해왔다는 이중섭의 미발표작 20여 점도 새로 공개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4점이 K 회장이 SBS에 보여줬던 작품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 문제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L이 K 회장으로부터 위작을 넘겨받은 뒤에 이를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L은 위 감정협회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지리한 법적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감정 결과와 이에 대한 불복이 이어지는 와중에, K 회장은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을 추가로 공개했다. 그는 자신이 1970년대 초에 인사동 고서점에서 집 1채 값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 그림들을 묶음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이때 비로소 박수근의 그림도 등장해 이 사건의 통칭이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이 됐다.(이는 대법원의 판결문에서도 쓰인 명칭이다)
박수근의 아들 박 모 씨는 K 회장이 공개한 박수근의 그림이 위작이라며 K 회장을 고소했다. K 회장도 박 모 씨와 감정협회를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며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갔다.
검찰은 2005년 10월에 표본 작품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감정 의뢰했고, 이들 기관은 표본 작품들을 모두 위작으로 판단했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K 회장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결과 약 2800여 점에 달하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을 찾아냈다.
전문가들의 감정 끝에 압수한 2800여 점의 그림들은 전부 위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검찰은 2007년 10월 K 회장을 구속 기소하고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일본 국적의 L에게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법원이 이 사건의 그림 2800여 점 모두가 위작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사실인정은 법관의 전속적인 권한이지만 미술품 감정의 경우처럼 특별한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한 때도 종종 있다. 재건축 사건의 경우 보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시가 감정,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의 유사성 감정 등이 그 예이다.
이때 법원은 감정인을 위촉하여 그 판단을 구한다. 법관이 감정인의 판단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감정인의 감정 결과가 대부분 사실인정의 기초자료가 됐다. 그래서 법원은 소송의 양 당사자에 중립적인 감정인을 위촉하고자 노력한다. 각각의 당사자가 별개로 감정 신청을 하여 법관이 이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으로 돌아오자. 이 사건 판결문에서 법원은 “안목감정, 과학감정 및 자료감정에서 나타난 사항들을 면밀히 종합해 보면 가짜 그림이라고 봄이 타당하고, 피고인도 이를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미술품의 진위 여부에 대한 감정은 자료감정과 안목감정이 주를 이루고 작품의 상태에 비추어 가능할 경우 과학감정도 이뤄진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자료감정과 안목감정의 차이
자료감정은 다른 말로 ‘출처조사’라 한다. 말 그대로 해당 작품 소유권의 역사 등을 거래기록, 카탈로그 레조네 등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감정에서 작품의 소장 이력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과정이다. 출판 서적이나 관련 기사 등을 통해 작품에 대한 과거의 기록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 기록들과 작품 소유자의 소장 경위 등의 진술 사이에 서로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까지는 작가별로 작품 전체를 등록하는 카탈로그 레조네가 법제화돼 있지 않다. 따라서 판매 기록, 전시회와 경매 도록, 작가의 아카이브 등 여타 접근 가능한 기록들과 소장 이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료감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법원은 자료감정 결과를 진품 인정의 유일한 증거가 아닌 ‘유력한 증거 중 하나’로 다루곤 한다.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에서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출판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에 등장하는 두 팔로 물고기를 안고 있는 그림은 1952년 10월 한 잡지와 1955년 이중섭 개인전 포스터와 전시안내장에 사용됐다. 그런데 이 포스터와 안내장의 그림들은 K 회장의 그림과 좌우가 바뀌어 있다.
좌우가 바뀐 그림은 이중섭의 작고 이후 발간된 화집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가 100인 선집』에 수록된 것과 일치하는데, 위 선집에서 좌우가 바뀐 그림이 사용된 이유는 원작을 촬영할 때 제작진이 실수로 원화를 촬영한 도판의 필름을 뒤집어 인쇄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위작 화가는 위 선집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발표된 출판 서적을 종합하여 판단한 것으로서 자료감정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지금까지 밝혀진 진품의 숫자도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작가들의 작업일지 등을 조사했으며, “진품 수에 비해 피고인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의 수가 너무 많은 점”도 그림들이 가짜로 보이는 근거로 들었다.
안목감정은 미술 전문가의 지식, 경험, 직관에 기초한 판단이다. 진품 여부를 결정하는 매우 결정적이고 중요한 감정 방법이지만 주관적인 평가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판사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전문가가 ‘딱 봤을 때 너무 조악합니다. 아닙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걸 어떻게 판결문에 옮길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안목감정은 스타일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검토한다. ▲예술적인 스타일 ▲품질 ▲색채의 사용 ▲화풍 ▲주제와 소재 ▲물감의 종류 ▲물감의 터치 등등을 종합적으로 전문가의 눈으로 보아 판단하는 것이다.
이중섭·박수근 사건에서도 감정협회는 ‘감정 목적물은 선의 필치에서 이중섭 특유의 표현과 속도감이 나타나지 않고, 인체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해 조악하게 복제되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재판부도 20~30년간 두 작가의 작품을 접해온 전문가가 평가하는 안목감정 결과를 활용했다.
과학감정은 과학자들에 의해 객관적인 절차를 거치는 방법이다. 작품의 상태가 여러 과학실험 과정을 거칠 수 있을 때 실시한다. 비교적 오래된 작품의 경우에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세라믹이나 점토로 이뤄진 작품(조각이나 골동품)에 적용 가능한 열발광 분석 ▲유화를 사용한 그림에 화가 특유의 필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X선 투사 ▲수정하거나 덧칠한 부분 등을 알 수 있는 자외선과 적외선 사용법 ▲재료를 화학적으로 분석해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시대와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재료 분석 등이 주된 방법이다.
이중섭·박수근 사건의 경우 감정협회는 “이중섭의 그림에는 펄 물감이 사용된 적이 없는데 위작은 펄 물감으로 채색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이중섭·박수근의 생전에는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물감이 칠해져 있는 것도 있다”고 판시하며, 박수근 화백이 사망한 1965년 이후인 1984년부터 미술용 물감에 들어간 티타늄과 규소 성분을 찾아낸 X선 형광 분석기 확인 결과, 현미경 관찰, 적외선 촬영 등을 활용한 과학감정 결과를 받아들였다.

미술진흥법 시행에 따른 미술품 감정 제도 변화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은 작품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국내의 다른 사건들에 비하면 비교적 깔끔하게 끝난 편이다.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한 편의 드라마로서 그 결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작품 공개 → 가짜인가? → 감정 → 전부 가짜’라는 단순한 서사 때문에 적어도 우리에게는 단순명료한 결말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중섭의 차남인 L에 대한 처분은 최종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뭔가 미심쩍은 것들이 완전히 규명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위작 사건은 작가 본인에게 엄청난 심리적·경제적 타격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적 문화 인식 수준을 의심받을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내에는 미술품의 감정평가가 공신력 있는 특정 기관이 아닌 여러 화랑 혹은 사설 기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점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작가별로 작품 전체를 등록하는 카탈로그 레조네가 법제화된 다른 국가들과 달리 우리의 경우 객관성이 떨어지고 각 기관마다 진위 판정이 서로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국가가 개입하여 특정 기관을 감정연구센터로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실제 법률의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2024년「미술진흥법」이 제정됐다. 위 법은 미술품 감정업을 하는 자에게 미술품 잠정을 의뢰한 자나 다른 미술 서비스업자로부터 독립하여 공정하게 감정을 하도록 하는 등의 의무를 부여한다. 나아가 통합미술정보시스템의 구축과 운영의 권한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부여해 정부가 미술품 정보의 객관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미술진흥법」은 제정 후 시행된 지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법이 시장의 위작 문제를 얼마나 줄여줄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기존 사설 감정기관에 위반시 처벌 규정도 없는 의무 몇 개를 부여한 것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있고, 통합미술정보시스템이 실제로 언제 구축될지도 미지수라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길 바랄 수는 없다. 2834점이 모두 위작으로 판명난 이중섭·박수근 그림 위작 사건을 겪고도 수년 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던 과거를 돌이켜 보자. 이제야 첫 발을 뗀 미술진흥을 위한 국가의 노력을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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