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시나요’ 1919년 최고 잘 나갔지만 역사적으로 묻힌 기업가 이야기
- 동화약품 설립자 민강 선생 평전 출간
기업인·독립운동가·교육자 ‘불굴의 족적’ 귀감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고, 옥고까지 치른 기업인은 누구일까요?’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단 1명. 그럼에도 정답을 알고 있는 이는 극소수다. 심지어 주인공의 친인척들조차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기업인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는 동화약품의 설립자 민강 선생의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실천의 선구자이기에 현시대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인·독립운동가·교육자 ‘불굴의 족적’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동화약품의 본사 1층 ‘1897 라운지’에서 민강 선생의 선한 영향력을 받은 후손들이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이날 평전 출판 기념회를 맞아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을 비롯해 서울대와 대한약학회 등의 약학계, 동성고·이화여고 등의 교육계, 저자인 고진숙 작가를 비롯한 사학계 및 출판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색적인 조합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모두 민강의 선한 영향력 덕분이다. 민강은 국내 제약업 태동을 이끈 기업가이자 소의학교(현 동성중·고등학교)와 조선약학교 설립에 참여하며 교육과 약학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기업인·독립운동가·교육자로서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민강에 대한 사료는 많지 않다. 그는 평생 일기나 저작을 남기지 않았다. 이에 다방면에서의 쌓은 업적에 비해 역사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졌다.
평전 출판으로 민강의 삶을 재조명하게 된 계기도 후손의 간절함 때문이었다. 평전의 저자인 고진숙 작가를 붙잡고 오열하면서 역사적으로 묻힌 ‘민강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게 출판으로 연결됐다.
민강의 친인척인 송지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몸까지 다쳐가며 기업 운영과 독립운동을 하신 분은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또 그런 분의 자취가 역사책에 전혀 남지 않아서 너무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고 작가는 민강을 “한 병의 약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한 뜻으로 조국의 독립을 꿈꾸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했다.
최초의 국산 신약으로 꼽히는 ‘활명수’는 민강의 업적에서 빼놓을 수 없다. 활명수는 구한말 급체와 토사곽란(吐瀉癨亂)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활명수는 국내 최초의 등록 상품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활명수는 왕명을 전달하는 연락관인 궁중 선전관 직책을 지낸 아버지 민병호와 민강이 개발한 소화제다. 궁궐에서 쓰인 소화불량 해소약과 양약을 섞어 최초의 국산 신약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활명수는 양약을 구하기 힘들었던 일제 강점기에 대히트를 쳤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활명수를 찾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한다. 하지만 민강은 이윤만을 좇지 않았다.
고 작가는 “1919년 당시 동화약방은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갔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부를 축적하기보다 활명수를 판매한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두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휴대해 현지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독립자금으로 활용할 정도로 지원해줬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책임 다한 ESG 경영의 시초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독립자금을 지원한 경영인은 있었지만, 독립운동으로 옥살이까지 경험한 인물은 민강이 유일하다.
민강은 1909년 항일 비밀결사단체 대동청년단을 결성했다.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1919년 동화약방 분점을 개점해 ‘3.1만세운동’의 연락사무소로 활용했다. 또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 거점인 경성연통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교육자로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1907년 소의학교와 1918년 조선약학교 설립에 참여하며 인재 양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조선약학교는 현재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으로 이어지며 한국 약학 교육의 산실로 자리하고 있다.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제약업계 기업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독립운동으로 인한 외압 속에 동화약품의 경영은 점차 어려워졌다. 그러다 1937년 민족기업가 윤창식 사장이 인수 후 동화약품의 역사와 ‘민강 정신’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민강이 진정한 ESG 경영을 펼쳤다는 점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활명수 판매로 얻었던 이윤을 대부분 독립자금으로 전달하는 등 기업 활동이 사회적 책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강 선생의 삶과 실천은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되묻게 하며, 이 정신은 오늘날 ESG 경영과 지속가능발전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평했다.
송지희 교수도 민강이 가족들에게 손수 보여준 사회적 가치를 주목했다. 그는 “민강 선생의 활동이 이윤이 목적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것, 교육시키는 것,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것 그 세 가지 사회적 가치에 있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가치들이 다 이뤄졌다. 큰 가치를 두고 모든 것을 다 바치셨던 분이라 더욱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평전에는 친척들도 잘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 민금봉 선생의 생애도 담겼다. 민금봉의 손녀딸인 송지희 교수는 2019년 할머니가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독립운동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서대문 형무소에 할머니의 사진이 있는 것도 그때 알았다고.
민강의 친척인 민금봉은 동화약방에 거주했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서대문경찰서에 피검됐다. 이화여고보의 독립만세시위에 앞장선 그는 손수 80장의 태극기를 직접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1000만 관객을 모은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의 곁을 끝까지 지킨 ‘조용한 충신’ 엄흥도의 삶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활명수를 낳은 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 민강’ 평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유산을 남긴 역사적 인물인 민강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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