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
‘국가대표 펀드’ 뜬다…부동산 자금, 첨단산업으로 ‘금융 대전환’ 엔진 점화
- [국민성장펀드, 산업 지도 재편]①
시중은행 ‘조 단위’ 출자…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AI 등 10대 전략산업 투입
저리 대출·지분 투자로 기업 활로…국민도 ‘성장 과실’ 공유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와 민간 금융권이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150조원(약 1120억달러)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본격 가동한다. 이 펀드는 단순히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넘어 부동산이나 이자 수익에 쏠린 시중 자금을 생산적 영역으로 돌리는 ‘금융 대전환’의 핵심 마중물 역할을 할 전망이다.
150조원 민관 합작… 첨단 산업에 ‘금융 고속도로’ 깐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는 당초 100조원 규모로 계획했던 국민성장펀드를 150조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한국산업은행이 운용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민간 금융사·연기금·국민 참여 자금 75조원으로 구성된다. 주요 투자처는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인공지능(AI) ▲원자력 ▲해상풍력 등 10대 첨단 전략 산업이다. 정부는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AI 분야에 별도 지원 한도를 설정하고 AI 데이터센터 및 에너지 고속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 자금을 집중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자금은 초저금리 대출과 지분 투자 방식으로 기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선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중견·대기업에는 2~3%대 대출을 지원한다. 현재 시중 금리가 4~5%대인 점을 고려하면 이자 부담이 절반 이상 줄어들어 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금융 대전환을 통해 경제 대도약으로 가는 큰길을 열어가겠다”며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삼성전자 평택 5공장(P5) 등 7개 분야에 5년간 3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실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은 삼성전자 경기 평택캠퍼스 5공장(P5) 건설 자금으로 5000억원을 대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출 자금은 각 은행이 5년간 10조원씩 출자하기로 한 국민성장펀드에서 마련될 전망이다. 산업은행이 국민성장펀드 첨단전략산업기금에서 2조원 수준의 저리 자금을 제공하면 5대 은행이 각각 1000억원씩 선순위 신디케이트론을 하는 방식으로 총 2조5000억원의 자금이 삼성전자에 제공되는 것이다.
기술력을 갖춘 벤처·중소기업에는 대출 대신 지분 투자 방식을 적용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리금 상환 부담 없이 장기적인 연구개발(R&D)에 몰두할 수 있고 정부와 금융권의 전문가 네트워크를 확보해 경영 컨설팅 등 무형의 자산을 얻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국민이 ‘성장의 과실’ 함께 나눈다
국민성장펀드의 또 다른 장점은 자금의 일부를 ‘국민참여형’으로 조성해 일반 국민도 국가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이 직접 투자할 경우 투자 금액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시중의 자금을 부동산에 묶어두지 않고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손영채 국민성장펀드추진단장 주재로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국민참여성장펀드)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이 같은 상품 구조와 운용 방안을 논의했다. 펀드 가입자는 투자 금액 구간에 따라 10%에서 최대 40%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3000만원 이하 구간은 40% ▲3000만원 초과~5000만원 이하 구간은 20% ▲5000만원 초과~7000만원 이하 구간은 10%의 공제율이 적용된다. 배당소득에도 9%의 저율 분리과세를 적용해 실질 수익률을 높였다.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재정 1200억원을 후순위로 보강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산업은행이 재정모펀드를 조성해 손실을 우선 흡수하고, 민간 자펀드에 국민 자금 5700억원과 첨단기금 300억원을 매칭해 투자하는 방식이다. 금융위는 매년 6000억원씩 향후 5년간 총 3조원 규모 펀드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당 상품은 오는 6월 전후로 출시될 전망이다.
펀드가 투자한 첨단 산업이나 에너지 인프라(해상풍력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배당 형태로 투자한 국민과 나누게 된다. 국가 산업 발전의 결실이 소수 자산가나 기관에 그치지 않고 서민의 자산 형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다.
5대 금융지주 ‘조 단위’ 출자 확정
정부의 드라이브에 민간 금융권도 화답하고 있다. KB·신한·우리·하나금융 등 주요 금융그룹은 각각 10조원 규모의 출자를 약속했다. 이들 은행은 단순 자금 지원을 넘어 ‘생산적 금융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부동산 대출보다는 기업 여신과 벤처 투자의 위험가중자산(RWA) 비중을 조절하는 등 내부 시스템까지 전면 개편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재정을 마중물 삼아 민간 자금의 물꼬를 튼 국민성장펀드는 대한민국 산업 지도를 재편하는 거대한 엔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투자를 확대하는 대신 펀드 형식을 택한 이유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선 정부 예산만으로는 150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민간 투자를 확보하면 투자 전문성과 효율성도 동시에 챙길 수 있게 된다. 펀드 형태는 전문 운용사(GP)나 금융기관이 수익성과 성장성을 꼼꼼히 따져 투자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국제 무역 규범(WTO)상 정부가 특정 기업에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것은 ‘불법 보조금’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이런 위험도 회피할 수 있다.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펀드를 통해 시장 가격으로 투자하거나 대출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국제 분쟁 리스크에서 자유롭다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이 기업과 전략 산업을 지원할 경우 공장 증설이나 설비 교체 등 산업 발전과 연구개발(R&D) 성과 등 다양한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주가만 높이는 ‘머니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만큼 저평가된 성장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밸류업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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