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도약패키지 선정 기업]⑧ 윤정현 블루시그넘 대표
하드웨어 한계 절감 후 멘탈 케어로 피봇 성공
일기 앱 ‘하루콩’·AI 상담 ‘AI’로 글로벌 시장 도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업도약패키지 지원사업’은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겪는 3~7년 사이의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이 사업에 선정된 스타트업 창업가의 생생한 이야기는 후배 창업가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윤정현 블루시그넘 대표가 서울 마포구 사옥에서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김민규 기자]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그는 학교를 입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 아닌, 많은 것을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공부 잘한다는 학생이 많은 외대부고에서도 그는 입시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에 도전한 보기 드문 학생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폐광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바라기 심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련 굿즈를 만들어 판매도 해봤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로 입학한 후에도 삶에 대한 관찰과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경영학과 기계공학·로봇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그는 전공과 관계없는 사진·IT 및 컴퓨터·영화 제작·디자인 등의 수업을 들으러 넓은 캠퍼스를 뛰어다녔다. 그의 관심사는 캠퍼스가 아닌 사회와 인간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9년 학교 친구들과 함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1인 가구를 위한 반려 로봇’ 프로젝트를 위해 창업에 도전했다. 자신도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1인 가구가 겪는 외로움과 소통의 부족을 잘 알고 있었다. ‘퐁퐁이’라는 이름의 펭귄 로봇은 당시 유행했던 스마트 스피커처럼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관계를 쌓아가도록 설계됐다. 쓰다듬고 말을 건네는 등의 반복적인 행위를 인지하면 주인으로 인식하고 진화하는 방식이다. 마치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과 같았다.
하지만 결론은 실패였다. 그는 “로봇을 만든다는 것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면서 “하드웨어에 도전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컸고 관리가 어렵다는 한계를 느껴 소프트웨어로 피봇(사업 전환)을 했다”며 웃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2021년 론칭해 글로벌 시장에서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감정 일기 애플리케이션(앱) ‘하루콩’이다. 여기에 더해 AI가 사용자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는 멘탈 케어 솔루션 ‘라임 AI’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업도약패키지 사업에 선정된 윤정현 블루시그넘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윤정현 블루시그넘 대표가 멘탈 케어 산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민규 기자] ‘펭귄 로봇’ 실패에서 ‘멘탈 케어’의 가능성을 찾다
윤 대표는 “창업 이후 바쁘고 사업을 챙기느라 자연스럽게 학교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서울대 졸업장이 아쉽지 않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창업 후 활동을 하면서 졸업장을 요구하는 곳이 없었고, 앞으로도 요구할 것 같지는 않다”면서 “일하느라 바빠서 학점을 채우려면 2년을 더 다녀야만 한다”고 웃어 넘겼다.
한국의 조그마한 스타트업 블루시그넘을 글로벌 시장에 알린 ‘하루콩’ (DailyBean)은 아이디어를 짜고 테스트 버전을 내놓는 데까지 1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디어를 내고 빠르게 실행하며 사용자의 반응을 보고 즉각 대응하는 스타트업의 본질을 잘 보여준 사례다.
하루콩은 ‘레드오션’이라고 불리는 일기 앱 시장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바로 ‘감정 기록’이다. 2021년 출시 당시 목표는 “다운로드 5000건만 달성해보자”였다. 결과는 대박이다. 텍스트 중심이 아닌 하루하루의 감정을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기록하고, 때가 되면 사용자의 감정 리포트를 제공하는 하루콩은 여타 일기 앱과 다른 시장을 열었다. 특별한 마케팅 없이 10대와 20대 여성 사용자들이 열광했다. 언어 대신 감정 이모티콘과 자신만의 탬플릿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무엇보다 사용자 90% 이상이 해외 유저다. 언어 지원이 되지 않았던 독일과 러시아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윤 대표는 “사람이 사는 모습과 고민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다”며 “인간관계와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국경을 초월한 공통된 주제”라고 설명했다.
하루콩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윤 대표는 ‘감정 라벨링’ 효과를 꼽았다. 그는 “우뇌가 감정을 담당하고 좌뇌가 언어를 담당하는데, 감정을 언어나 아이콘으로 규정(라벨링)하는 과정에서 좌뇌가 자극되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것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하루콩의 성공은 블루시그넘을 멘탈 케어를 주력으로 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 진화시켰다. 지난해 6월 윤 대표는 ‘라임 AI(Lime AI)’라는 솔루션을 선보였다. 사용자의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다. 사용자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AI가 맞춤형 대화를 건네고, 스트레스 원인을 분석해 리포트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면, AI는 상황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대화 기술이나 마인드셋 전략을 제시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라임 AI는 사용자의 고민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안한다. 심지어 라임 AI의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윤정현 블루시그넘 대표. [사진 김민규 기자] AI 상담부터 디지털 치료제까지 도전
윤 대표는 라임 AI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석학들과 손을 잡았다. 현재 하버드 의대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과 함께 AI 대화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고, 스탠퍼드대는 이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 유수대학과의 협업은 윤 대표의 ‘콜드 콜’(무작위 연락)로 성사됐다. 그는 “AI와의 대화가 우울·불안·스트레스를 얼마나 낮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지 검증하는 것이 목표”라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삼성서울병원 등의 기관과 협력하면서 서비스의 신뢰를 높이고 있다.
윤 대표는 요즘 ‘파노라’ (Panora) 라는 신규 서비스를 통해 스마트 워치 시장에도 도전하고 있다. 애플워치의 심박변이도(HRV) 데이터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시각화해 보여주는 앱이다. 윤 대표는 “스트레스는 눈에 보이지 않아 방치하기 쉬운데, 파노라는 이를 산 모양의 그래프로 시각화해 자신이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지 직관적으로 알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사용자는 스트레스가 높았던 순간에 ‘업무’, ‘미팅’ 등의 태그를 달아 자신의 스트레스 패턴을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다. 애플 앱스토어에 1분기 내에 공식적으로 론칭 할 계획이다.
디지털 치료제(DTx)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의 사회 인지 재활을 돕는 앱을 개발해 현재 탐색 임상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윤 대표는 “조현병 환자들은 타인의 표정을 읽거나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이를 앱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이라며 “3년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현재 블루시그넘의 구성원은 17명.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구성된 젊은 조직이다. 윤 대표는 수평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에게 ‘왜’(Why)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동기를 부여하는 데 집중한다.
블루시그넘은 지난해 약 1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누적 투자금은 약 21억원으로,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윤 대표의 올해 목표는 매출 2배 성장이다. 그는 “초기에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수익성을 증명하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창업도약패키지 선정 기업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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