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고통이 미운데 스트레스가 안 미우랴? [이코노 헬스]
- 개인이 환경에 대응할 때 생기는 스트레스
문제를 변화하지 못하면 감정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해소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해결 용이

스트레스에도 용도가 있다는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개똥도 약에 쓴다고 하지만, 스트레스는 그만도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개똥이 스트레스처럼 불쑥불쑥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 갑자기 찾아와서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트레스 대처 이론(Stress Coping Theory)에서는 그 ‘힘듦’ 자체가 인간으로 하여금 환경에 적응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상호작용적(interactional) 혹은 거래적(transactional) 스트레스 모형이다.
라자루스와 포크만(Lazarus and Folkman, 1984)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개인이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상황이 개인 안녕을 위협한다고 여길 때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주장이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개인은 인지적 평가(cognitive appraisal)와 대처 전략(coping strategy)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한다. 인지 평가는 1차 평가(primary appraisal)와 2차 평가(secondary appraisal)로 나뉜다. 1차 평가는 상황에 대한 판단이다. 내가 이 상황을 스트레스가 아닌 도전(challenge)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는 위협(threat)으로 받아들일지 분류한다는 설명이다.
상황을 변화할 수 있다면 '도전'으로 받아들여
2차 평가는 내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지 대처 자원을 확인하는 단계다. 대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문제 중심 대처(problem-focused coping)다. 스트레스 요인 자체를 변화시키는 행동이다. 다른 하나는 감정 중심 대처(emotion-focused coping)다. 요인 자체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정서를 완화하기 위한 대응이다. 현실에서는 두 전략을 혼용하는 경우가 다수다. 그럼에도 개인은 상황이 변화 가능하다고 판단할 때(도전) 문제 중심 전략을, 변화가 어렵거나 변화 가능성이 떨어질 때 감정 중심 전략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두 학자의 발견이다.
20대 A씨는 직장에서 겪는 문제를 위협으로 인지한듯 했다. A씨는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직장 상사 탓이었다. 상사가 온갖 일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서 타박을 주니, 밤이 되면 속상한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바람을 쐬면서 기분 전환을 하거나 친구에게 속풀이를 하는 식으로 화를 삭이려 했다고 그는 말했다. 상사라는 문제 요인을 제거할 수 없으니, 화를 식이는 감정 중심 대처를 시도했던 셈이다.
이 설명에서 스트레스가 약이 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스트레스 여부가 나에게 닥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지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도전에 적절하게 응전하면 된다. 위협 상황이더라도 스트레스는 일정 부분 쓰임이 있다. 스트레스가 문제 중심 대처를 하는 자극제처럼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입에서는 쓰지만, 일정 부분 좋은 약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입에 쓴 약이 전부 명약(名藥)은 아니듯, 스트레스가 반드시 좋은 약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제에 기민하게 반응하더라도 반응 과정에서 생긴 고통마저 없던 게 되지 않는다. 만약 감정 중심 대처를 선택했다면 어려움은 한층 커진다. 상황 변화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상태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을 삭이는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 바꿀 수 없을 때 자신의 ‘화’ 삭이는 감정 중심으로 대처
A씨도 그랬다. 문제 중심 대처를 시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상사의 마음을 돌리려 자발적으로 철야를 하기도 하고, 회식 자리에서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화를 삭이고 나아질까 싶으면 상사가 여지없이 훈계와 잔소리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화를 삭이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었던 듯했다. 자신은 되도록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왔다”며 강력히 권유해서 내원을 선택했다고 그는 말했다. 혼자만의 대처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충분치 않았던 셈이다.
A씨와 같은 경우를 보다 보면 자연히 스트레스가 미워지곤 한다. 죄를 미워하는 데 사람을 어떻게 안 미워하느냐는 말이 떠오른다. 죄와 사람을 분리해서 볼 수 없듯,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게 스트레스인데 양자를 어떻게 분리해서 볼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실이야말로 스트레스 대처의 마지막 전선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람들이 문제·감정 중심 대처 속 고통을 이겨내고자 찾는 ‘분투 현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전선에 함께 선 입장에서 의사가 할 일도 정해져 있겠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날 때까지 고통을 덜고 줄여내서, 우리 모두가 스트레스를 다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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