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맛있는 건 오래 살아남은 것"…후포 왕돌초의 ‘박달’을 만나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 ‘대게의 고향’ 왕돌초 해역 인근 경북 울진 후포항
대게는 2월 말에서 3월 초가 절정
경북 울진 후포항에서 왕돌회수산을 지키는 임효철 사장은 박달대게 이야기가 나오자 손을 멈춘다. 대게 한 마리를 집어 들고는 크기를 재지 않는다. 저울도 찾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배 쪽을 눌러보고 다리와 몸통이 만나는 관절을 짚는다. “여기가 돌처럼 단단해야 해요. 속이 꽉 찼다는 신호거든요.”
후포의 미식기행은 식탁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오전 8시 30분 무렵, 후포항 위판장 바닥에서 시작한다. 붉은 대게들이 줄지어 뒤집혀 있다. 움직이지 못하게 배를 위로 향한 채다. 경매사의 호루라기가 울리면 중매인들의 손이 빨라진다. 다리 하나라도 떨어지면 값이 달라진다.
대게는 항구 가까이에서 잡히지 않는다. 후포에서 동쪽으로 23㎞ 떨어진 왕돌초가 대게의 고향이다. 수중 봉우리가 맞닿은 암초지대. 임 사장은 그곳을 바닷속 산맥이라고 부른다. “먹이가 모이니까 대게도 모이죠. 오래 버틴 놈일수록 껍질이 단단해요. 싸워서 이긴 놈들이에요.” 그래서 그는 크기보다 무게를 본다. 박달대게가 귀한 이유는 그 싸움의 시간 때문이다.
울진에서 말하는 박달대게는 단순히 큰 대게가 아니다.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게 살이 찬 대게를 가리키는 현장 용어다. “대게도 바다에서 싸웁니다. 탈피를 여러 번 하면서 살아남은 놈이 박달이 되는 거예요. 껍질이 단단하고 다리가 잘 안 떨어져요.” 같은 크기라도 묵직하고 만졌을 때 물렁거림이 없다. 수족관에 넣어도 오래 산다. 한마리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이유다.
찜통 앞에 서면 말수가 더 줄어든다. “대게는 물에 담그면 안 됩니다.” 배가 위로 향하게 솥에 올린다. 증기로 15분. 찌는 동안 내장이 흐르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김이 오르자 후포의 겨울 냄새가 퍼진다. “집에서 드실 거면 살아 있는 것보다 잘 쪄서 받는 게 안전해요. 선도는 거리에서 떨어집니다.”
다리를 꺾어 당기면 하얀 살이 통째로 빠져나온다. 별다른 양념은 필요 없다. “대게는 살의 함량이 맛이에요.” 그래서 울진 어민들은 속 빈 물게를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 암컷과 몸통 세로 9㎝ 이하 대게는 바다로 돌려보낸다. “지금 먹는 것보다 다음을 남겨야죠.”
박달대게의 맛은 단정하다. 살이 조밀하고 단맛이 또렷하다. 씹을수록 고소함이 올라오고 끝맛이 깔끔하다. “박달은 게딱지 내장도 짜지 않아요.” 밥을 비벼도 텁텁하지 않다.
이에 비해 홍게, 정확히는 붉은대게는 성격이 다르다. 껍질 전체가 짙은 주홍빛이다. 서식지도 다르다. 대게가 왕돌초 일대 수심 40~60m 암초에서 자라는 반면, 홍게는 200~300m 심해에서 잡힌다. 수압이 높은 환경에서 살아 껍질이 더 단단하고 맛은 짠 편이다. “홍게는 솔직합니다. 첫맛이 확 와요.” 향이 강하고 바다 맛이 직설적이다. 살은 덜 차지만 감칠맛이 진하다. “배에서 라면 끓일 때는 홍게 한 마리 넣으면 끝이에요. 국물이 다 해줍니다.”
가격 차이도 뚜렷하다. 홍게는 대게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렇다고 아랫급은 아니다. “역할이 달라요. 홍게는 겨울 바다 맛을 제일 빨리 알려주는 놈이에요.” 늦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봄까지도 제맛을 낸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울진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래서 후포의 주문법은 조금 특별하다. “배를 채우려면 섞어 드세요.” 박달대게 한두 마리로 확실한 맛을 보고, 홍게로 양과 국물의 깊이를 더한다. 큰 한 마리보다 작아도 살 찬 두 마리를 권한다. “크기 믿고 샀다가 실망하는 경우 많아요.” 기준은 단순하다. 무게, 단단함, 그리고 계절. 대게는 2월 말에서 3월 초가 절정이다. 이때 박달대게 비율이 가장 높다.
대게와 홍게의 차이는 결국 바다의 깊이 차이다. 얕은 암초에서 자라 단맛을 키운 대게와, 깊은 심해에서 자라 짠맛을 품은 홍게. “대게는 씹는 맛이고, 홍게는 우러나는 맛이에요.” 후포에서 대게를 먹는다는 건 그 깊이를 함께 맛보는 일이다. 왕돌초의 지형이 만들고, 바다가 기른 시간을 식탁 위에서 확인하는 과정이다. “분명한 것은 맛있는 놈은 오래 버틴 놈이라는 겁니다.” 겨울 바다를 견뎌낸 대게처럼, 후포의 겨울은 그렇게 완성된다..
(박스) 먹고 보고 즐기고… 후포에서 하루를 완성하다
후포 여행의 장점은 접근성이다. ▲대게를 먹고 ▲항구를 걷고 ▲등대에 오르고 ▲스카이워크를 건너는 데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미식으로 시작해 풍경으로 마무리되는 구조. 후포에서는 대게가 여행의 끝이 아니라 하루를 완성하는 출발점인 셈이다.
출발점은 후포항이다. 대게철 아침이면 위판장이 열리고, 낮에는 어판장과 수산물 식당들이 항구의 일상을 만든다. 식사를 마친 뒤 방파제를 따라 걷다 보면 항구가 단순한 먹거리 공간이 아니라 삶의 현장임을 느끼게 된다. 배와 바다, 사람의 동선이 겹치는 자리다.
항구 뒤편으로 시선을 올리면 후포등기산공원이 이어진다. 나무데크를 따라 오르는 짧은 오르막 끝에서 후포항과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공원 정상에 자리한 후포등대는 1968년부터 불을 밝혀온 항해의 표식이다. 지금도 10초마다 흰빛을 보내며 바다의 리듬을 지킨다. 난간에 서면 왜 이 자리가 예부터 깃발과 봉화의 자리였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등기산공원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다 위로 길이 이어진다. 등기산 스카이워크다. 길이 135m 가운데 일부는 강화유리로, 발 아래로 푸른 동해가 그대로 드러난다. 갓바위에 부딪힌 파도가 하얀 포말을 만들고,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감각이 이어진다. 바람이 강한 날이나 월요일은 운영하지 않으니 일정 확인은 필요하다.
여유가 남는다면 바다를 바라보는 방식 하나쯤 더해도 좋다. 후포항 일대에서는 요트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직접 타지 않더라도, 항구에서 바라보는 흰 돛단배의 움직임만으로도 풍경은 달라진다. 대게의 여운이 시각적 경험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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