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국적항공사와 국민 사이, 정부는 누구 편인가? [이근면의 시사라떼]
- 경쟁 사라진 하늘 길, ‘국민 선택권’ 지켜야
미국·유럽의 경고…독과점이 소비자 외면한 것 살펴봐야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상품의 영역이 사전, 사후 서비스와 리워드 프로그램까지 확장되고 경쟁력의 요소로 작동하는 시대이다.
항공사 선택에는 여러 요인 중 가격 외 서비스가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모 항공사의 아주 고마운 서비스에 감동한 기억이 있다. 방콕에서 귀국편 시간을 착각해 탑승을 못하게 된 적이 있는데 해당 항공사는 공항 내외의 안내 및, 재입국 출국 조치 그리고 숙박부터 익일 항공편 수배까지 넘치는 호의로 내 마음을 녹였다. 그 이후에 광저우행 항공편에서 기내에 맡겼던 상의 주머니에서 작은 불만의 보답으로 씹던 껌을 발견하고 경악했던 일이 있었다(참고로 나는 껌은 씹지 않는다). 천당과 지옥 같은 서비스를 체험했다. 나는 빠르게 변심하여 K사의 충성고객으로 바뀌었다. 항공사 선택권이 있기에 취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헌데 작금은 K항공과 A항공의 합병이 사실상 성사되면서 한국 항공업계는 단일 초대형 국적항공사 체제로 재편된다. 정부와 재계는 ‘국가 경쟁력 강화’라 설명하지만 이번 합병을 통해 정부는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기업의 이해인가, 아니면 소비자와 국민의 권익인가.
초대형 국적사 출범…소비자 피해 예고된다
세계 주요국의 사례는 경고음을 울린다. 유나이티드-컨티넨탈(2010), 델타-노스웨스트(2008), 아메리칸-US에어(2013)가 차례로 합병되며 빅3 체제가 고착되었다. 합병 기업들은 서비스 확대와 글로벌 경쟁력을 약속했지만 결과는 ▲수하물 유료화 ▲좌석 선택 유료화 ▲기내식 축소 ▲마일리지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미국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합병 이후 5년간 국제선 운임이 평균 15% 상승했다. 중소도시 노선은 대거 사라졌고 소비자는 사실상 선택권을 잃었다.
유럽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루프트한자가 스위스항공·오스트리아항공·브뤼셀항공 등을 흡수하면서 초대형 항공그룹이 완성됐다. 그러나 장거리 노선 요금은 10~20% 인상되었고, 저가항공과의 가격 격차는 오히려 커졌다. EU 집행위가 뒤늦게 경쟁사 슬롯 강제할당 등 사후 조치를 도입했지만 이미 피해는 누적된 상태였다.
일본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JAL 파산 이후 ANA-JAL 양강 체제로 정비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지방노선 유지의무를 강력히 법제화하고 운수권·슬롯 배분에도 적극 개입했다. 이로써 지방 공항 접근성과 공익노선이 일정 부분 유지될 수 있었다.
이 모든 해외 사례가 주는 핵심 교훈은 단 하나다. 독과점의 후유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 피해로 전환된다. 이제 한국도 동일한 길을 걷고 있다. 합병 초기에는 마일리지 통합, 환승 네트워크 확대 등이 강조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격 인상 ▲서비스 유료화 확대 ▲지방노선 축소 ▲마일리지 가치 하락 ▲선택권 제한이 순차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독과점은 기업이 가격과 서비스를 독점 조정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소비자는 ‘서서히 끓는 물’ 속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의 사전적·구조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토교통부가 공동으로 가격·서비스 감시기구를 설치하고 즉각 시정 명령권을 행사해야 한다. 둘째, 지방노선 유지의무를 법제화해 지역 간 교통격차 확대를 차단해야 한다. 셋째, 마일리지 소비자 보호법을 제정해 마일리지 가치 하락과 소멸을 방지해야 한다.
이 합병은 단순한 산업재편이 아니다. 국민 이동권과 소비자 선택권을 놓고 정부의 정책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정책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지금의 선택이 10년 후 국민의 권익을 결정할 것이다.
물론 경쟁력과 독과점은 동전의 양면이지만 독과점 체제 속에서도 소비자 권익을 방어하는 가장 확실한 해법은 ‘대안적 경쟁자’를 육성하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편에 서고자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선택권을 확보하는 시스템 구축에 착수해야 한다.

‘대안적 경쟁자’가 해법…하늘의 문 더 활짝 열어야
무엇보다 외국 항공사의 국내 진입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오픈스카이 협정 체결국은 20개국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은 100여 개국과 협정을 맺고 있다. 한국도 제3국 자유화 협정을 확대하고 인천공항 슬롯을 외항사에 적극 개방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적 항공사 외에도 실질적인 경쟁 구조가 유지될 수 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육성도 필수다.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은 LCC 계열사까지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독립적 LCC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슬롯 우선 배정, 지방공항 활성화, 재정지원 등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항공 외 대체 교통수단 확대도 병행돼야 한다. ▲수도권~지방 간 고속철도망 확충 ▲초고속철도 도입 ▲고속버스 국제노선 개발 등으로 항공 독과점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하여 관광 산업에 미치는 영향 또한 세심히 살펴야 한다. 여행 수지만 맞추어도 경제 성장율이 거의 1% 오른다고 한다. 그야말로 굴뚝 없는 공장이 수출기업이 되는 또 하나의 길이다.
국내외 항공 노선과 좌석 선점은 관광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요소이다. 독과점 사업으로 인한 가격, 서비스, 끼워팔기와 같은 악습이 공정하게 개선되도록 정책당국은 히든카드를 마련해 외국 관광객 증대와 국민의 여행 욕구에 적합한 길을 찾아야 한다.
소비자단체의 역할도 더 커져야 한다. 항공소비자권익감시단을 활성화하고 집단소송제 도입을 검토해 마일리지 정책 변경 등 소비자 피해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공공요금 비교 플랫폼을 구축해 소비자 스스로 가격·서비스 정보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K사와 A사의 합병은 기정사실화 되었지만 소비자 재앙이 될지 정상적 재편이 될지는 정부 정책에 달려 있다. 정부가 실질적 경쟁 기반 확대에 나선다면 독과점의 폐해를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결국 미국과 유럽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게 될 것이다. 항공사도 외국 항공사를 불러들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정부가 지켜야 할 것은 국적항공사의 시장 독점이 아니라 국민의 선택권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단독] 김지석♥이주명, 하와이 팔짱샷 포착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이데일리
이데일리
일간스포츠
[단독] 김지석♥이주명, 하와이 팔짱샷 포착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단독]박정훈 대령, 軍 최상위 수사기관 수장되나…장군 특진 가능성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단독]세금 0원에 150억 환차익 ‘잭팟’…유럽 빌딩 투자했더니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압타바이오, 급성신손상 예방약 내년 기술이전 자신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