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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고령화 가속…연금 시스템 전면 재설계 시급” [스페셜리스트뷰]
- 세계 3위 국민연금도 15년 뒤면 바닥
공적연금 못 믿는 시대…사적연금, 이제는 생존 전략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가 경탄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단순히 근면성이나 투지와 같은 내재적 요인뿐만 아니라, 후발주자(Late Mover)로서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학습하고, 이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며 발전시켜 나간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한국이 선발주자(First Mover)로 주목받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인구고령화(Aging Population)다.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의 비중이 7%에 도달하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에 도달하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에 도달하면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라고 부른다.
주요 선진국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뒤 초고령사회에 도달하기까지 100여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일본은 이 기간을 36년으로 단축했고,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됐다.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은 2024년 12월 24일 기준으로 노인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늙어버렸다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앞으로 25년 후인 2050년에는 노인인구의 비중이 40%를 상회하고, 2070년에는 두 명 중 한 명이 노인이 된다. 이러한 예상조차도 상당히 긍정적인 가정에 기반한 것이다.
한국의 인구고령화 속도는 빠르게 증가하는 기대수명과 세계에서 가장 낮은 저출산이 동시에 맞물려 나타난 결과다. 전 세계가 인구고령화에서 만큼은 한국을 선발주자로 지목하고, 이러한 위기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대처하고, 그 결과 성공하는지 또는 실패하는지를 학습 중이다. 이미 해외 연구자 및 언론은 “한국은 중세 유럽의 흑사병 때보다 빠른 인구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멸종하는 민족이 될 것이다”라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인구고령화는 경제·사회를 구성하는 면면에 악영향을 끼치지만,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대상은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험이다. 사회보험의 재정방식은 크게 부과방식(Pay-As-You-Go)과 적립방식(Funded System)으로 구분되는데, 사회보험 중에서도 건강보험제도는 대부분 부과방식이지만, 연금제도는 둘 중 하나의 재정방식을 채택하거나 두 재정방식을 혼용하기도 한다. 연금제도에서 부과방식은 현재 경제활동인구(젊은 세대)가 납부한 보험료나 세금으로 현재의 연금수급자(은퇴 세대)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적립방식은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개별 계정에 적립하여 운용하고, 은퇴 시점에 본인이 적립한 금액과 운용수익을 바탕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부과방식은 노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의 재정을 젊은 사람이 부담하고, 적립방식은 본인이 젊었을 때 축적한 돈을 노인이 되어 연금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의 재정방식은 수정적립방식(Partial Funding System)이다. 연금 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당장 모든 필요한 기금을 완전하게 적립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미래의 연금지급을 위해 일정 수준의 적립금을 쌓게 되는데, 이때는 수입(보험료)이 지출(연금)보다 많기 때문에 기금이 불어난다. 이후 시간이 지나 수급자가 늘어나고 인구고령화가 심화하면, 거둬들이는 보험료만으로는 당해 연도의 연금 지급액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급기야 적립금이 모두 소진되어 그 해에 거둔 보험료로 그 해의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된다.
국민연금기금은 1213조원으로 일본(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 노르웨이(Norwegian 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연기금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앞으로도 지속해서 증가해 2040년에는 175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23년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은 2055년에 고갈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국민이 수십 년 동안 누적·성장시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기금이 2040년에 최고점을 찍지만, 불과 15년 만에 완벽히 사라진다니 인구고령화의 공포감이 실감된다. 국민연금개혁이 추진 중이지만, 고갈시점을 몇 년 늦출뿐 기금이 고갈되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된다고 연금을 못 받는 것은 아닐 테지만, 기금이 고갈된 뒤에는 젊은 세대가 지급해야 할 보험료만 소득의 35%가 넘게 된다. 소득세와 건강보험료까지 지급하고 나면 과연 월급 중 절반, 아니 30%라도 손에 쥘 수 있을까?
내가 근로하면서 적립한 돈을 자신이 늙어서 연금으로 받는 적립방식은 인구고령화 하에서도 재정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에 주요국은 공적연금의 한계를 인정하고 적립방식의 사적연금을 활성화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사적연금의 규모가 GDP와 같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고령화를 경험하는 한국은 무슨 배짱인지 오히려 국민연금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소득대체율을 상향하는 개혁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이 아닌 적립방식으로 전환하든가, 아니면 현 국민연금의 재정방식을 유지하되 그 기능을 축소하는 대신 사적연금을 강화하는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노후준비에 대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본인의 은퇴 기간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필요하다. 한국인은 생각보다 빨리 은퇴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오래 생존한다. 1960년생의 기대수명은 당시 52.4세였으나, 1960년대생은 현재 65세로 대부분 생존해 있다. 1980년생의 기대수명은 당시 65.8세였는데, 현재 45세인 1980년생들이 과연 65.8세에 사망할까? 그동안 한국인은 2년마다 수명이 예상보다 1년씩 증가할 정도로 오래 생존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류는 돈으로 생명을 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 연금의 중요성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준비되지 않은 장수는 지옥이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생존하게 되는 것을 장수리스크(longevity risk)라고 한다. 75세에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자산을 준비했는데 85세까지 생존하면 지옥 같은 10년을 보내야 한다. 이러한 장수리스크를 해결하는 최고의 도구가 연금이다. 연금은 언제일지 모르는 사망시점까지 안정적인 소득흐름을 제공하기 때문에 경제주체가 가장 꺼리는 불확실성과 소비단절을 해결해준다.
셋째, 공적연금을 맹신하면 안 된다. 현재 국민연금의 평균 수령액은 67만원이다. 물론, 우리는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국민연금액을 받겠지만, 국민연금만으로 행복한 노후생활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재정이 갈수록 취약해지기 때문에 반복적인 개혁이 진행될 것이다. 인구고령화를 경험한 나라들에서 경험했듯이 사회보험의 개혁은 사회보험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더 많은 연금을 줄 수 있다는 사탕발림이 달콤하게 들리겠지만, 한국의 인구고령화를 고려하면 우리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일뿐더러, 혹여 시도하더라도 추후에 더 혹독한 부담을 피할 수 없다.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면 보험료가 35%가 넘어가기 때문에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해주면 된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를 주장하는 사기꾼들이 득세하고 있지만, 국민이 보험료 대신 세금을 더 내면 무엇이 달라질까?
넷째, 반드시 사적연금을 활용해 별도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적연금에는 퇴직연금, 개인연금, 그리고 주택연금이 있다. 이들 연금은 사적연금으로 분류만 될 뿐 가입조건이 있고, 세제 혜택이 적용되며, 해지에 페널티가 부여되는 등 공적인 성격이 강하다. 특히, 한국인은 자산 중 75% 이상을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택연금이 중요하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인구성장기에 경험했던 부동산 불패신화가 인구쇠퇴기에도 지속될 것이라 믿으면 안 된다. 현재 노년기에 접어들었으나 부동산 중심으로 자산이 축적되어 있다면 주택연금을 고려하라는 의미이지, 노후자산을 부동산으로 축적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다섯째, 노후준비를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준비하되, 반드시 시간선호(Time Preference)를 극복해야 한다. 시간선호는 ‘경제주체가 미래의 소비보다 현재의 소비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항상 정답을 알고 있지만, 바로 이 시간선호 때문에 실천하지 못한다. 즉, 누구든 젊었을 때 돈을 아껴 투자하고, 근로활동을 못하는 노년기에 연금으로 전환해 편안한 노후생활을 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인간은 돈이 있으면 나중에 연금으로 소비하지 않고 지금 소비해버린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연금에 가입하지 않는다. 연금에 가입하더라도 중도에 해지한다. 만기까지 유지했더라도, 적립금을 연금으로 전환하지 않고 일시금으로 받아서 조기에 소진해 버린다.

공적연금만 믿다간 장수리스크에 무너진다
그러므로, 시간선호를 이겨내고 개인형퇴직연금(퇴직연금의 한 종류인 IRP)이나 연금저축(개인연금의 한 종류)에 가입하되, 빨리 가입할수록 복리의 마법을 크게 누릴 수 있다. 정부는 IRP와 연금저축을 합산해 납부금의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10~15%)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가입 순간부터 엄청난 수익이 발생한다. 그뿐만 아니라, 가입 동안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도 없고, 수령할 때 낮은 세율로 과세한다. 연간 900만원을 납부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75만원을 납부하면 되고, 이렇게 35년 동안 연 10%의 수익률을 달성하면 은퇴할 때 정확히 25억5000만원의 노후자금이 마련된다. 이 전략은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투자자로 알려진 워런 버핏이 권하는 ‘시간과 복리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다. 연간 수익률이 10%가 아니라 절반인 5%에 불과해도 최소한 8억원의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축적된 25억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둘 중 하나다. 첫째, 배당이 발생하는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이 투자는 위험하다며 저축을 권유한다. 한 나라의 이자율(금리)은 경제성장률과 연동되어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2%대에 불과하고, 불과 5년 뒤에는 1%대로 내려앉게 된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고령화 때문이다. 저성장은 저금리를 초래하기 때문에 저축으로는 인플레이션조차 헤지(hedge)하기 어렵다. 투자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투자하지 않는 것이 위험하다. 둘째, 종신연금에 가입하는 방법이다. 이론적으로 배당투자는 배당으로 매달 생활하면서 원금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때 인간의 시간선호가 계획을 망친다. 내 손아귀에 목돈이 있으면 쓰고 싶어지고, 돈 쓸 일이 생겨난다. 종신연금은 내 은퇴자금을 보험회사가 운용하고 내가 언제 사망하든지 죽을 때까지 매달 연금을 지급해주는 상품이면서 중도에 해지할 수 없어서 인간의 나약한 심리(시간선호)를 강제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문제는 시간선호를 이겨내는 경제주체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매달 75만원이 아닌 50만원만 납부해도 은퇴자금은 17억원이 되는데, 이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현실에서는 누구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는 더 많은 국민이 사적연금을 활용하도록 혜택을 확대하되, 가입 후에는 은퇴 전까지 적립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그리고 은퇴 시에는 적립금을 배당 투자하더라도 일부는 종신연금으로 수령하도록 해야 한다. 또 무능력한 금융기관을 연금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투자보다 저축이 위험한 세상인데, 한국은 여전히 투자가 더 위험한 세상이다. 정부가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2~3%에 불과한 수익률 개선이 우선이다.
국민이 시간선호를 이겨낼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지만, 필요에 따라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노후준비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비교적 늦게 노후자산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개인연금의 한 종류인 연금보험이다. 그런데 한국은 연금보험을 저축성 보험과 동일하게 규제하기 때문에 가입이 활성화되기 어렵고, 소비자를 위한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기도 어렵다.
종신연금은 소비자가 가입을 원해도 보험회사가 판매하기를 꺼릴 정도다. 가입자가 생각보다 오래 생존하면서 오히려 보험회사가 장수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톤틴연금(Tontine Pension)이 활용될 수 있다. 톤틴연금은 사망한 사람의 몫을 생존한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의 연금이기 때문에 가입자와 보험회사 모두 장수리스크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톤틴연금의 개발과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는 교수로서 사적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예상치 못한 프레임이 씌워지기도 한다. 필자는 사학연금(공적연금)을 받게 되는데, 그 금액은 국민연금 수령액보다 많다. 그럼에도 현재의 소비를 참고 매달 악착같이 IRP와 개인연금에 100만원을 납부한다.
이렇게 시간선호를 이겨내며 사적연금에 납부하는 이유는 사학연금도 국민연금과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선배들보다 더 많이 내고 있고 덜 받는 개혁을 경험했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학연금도 부과방식이기 때문에 조만간 기금이 고갈될 것이고, 다른 나라들처럼 반복적인 개혁을 통해 내가 받을 연금액은 더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만간 기금이 고갈될 공적연금을 믿어야 할까, 아니면 본인 계좌에서 매년 10%씩 눈덩이처럼 몸집을 키우고 있는 사적연금을 믿어야 할까.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에서 경제학 박사학위(2008년)를 취득했다. 이후 보험연구원 고령화실 실장, OECD 보험 및 사적연금위원회 정부대표단 등을 거쳐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한국연금학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여러 정부 기관과 기업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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